항목 ID | GC088006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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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洪圭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주산면 증산리 659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을경 |
출생 시기/일시 | 1894년 - 이홍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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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 이홍규 주렴산 독립만세운동 주도 |
몰년 시기/일시 | 1956년 - 이홍규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3년 - 이홍규 대통령표창 추서 |
출생지 | 충청남도 보령군 주산면 증산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주렴산 독립만세운동 주도 |
[정의]
일제 강점기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이홍규(李洪圭)[1894~1956]는 충청남도 보령 출신으로 1919년 충청남도 보령군 주산면에서 전개된 3·1운동에 참가한 인물이다.
[활동 사항]
1919년 4월 17일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 일어난 주렴산 독립만세운동은 이홍규가 이철규(李哲圭)[1892~1965], 이철원(李哲源) 등과 함께 마을 사람들을 규합하여 주렴산에 올라가 국사봉을 비롯한 3개소에 태극기를 꽂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징을 치며 독립만세를 외친 운동이다.
주렴산 독립만세운동은 주산면 증산리 출신인 이철원이 학생전위대로 서울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중 3·1운동 이후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하여 고향으로 내려왔다가 동지들을 모아 고향에서 전개한 만세운동이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이홍규, 이철규, 이철원 등은 4월 16일에 만세운동을 꾀하였으나, 사전에 누설되어 결국 다음날인 4월 17일에 주렴산에 올라가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홍규 등이 참여한 만세운동은 마을 사람들이 만세 소리를 듣고 산으로 올라가 합세하면서 규모가 커졌고, 웅천면 시내로 시위행진을 벌이다가 주모자 18명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때 이홍규도 경찰에게 체포되어 보령경찰서에 구금되었다. 그리고 4월 20일 보령경찰서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60도(度)의 즉결 처분을 받았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