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664
한자 張錫弘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정을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5년연표보기 - 장석홍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8년 - 장석홍 의병 활동
몰년 시기/일시 미상 - 장석홍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13년연표보기 - 장석홍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충청남도 남포군 웅천면 광암리
성격 의병
성별
대표 경력 의병장

[정의]

1900년대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지역 출신의 의병장.

[개설]

장석홍(張錫弘)[1875~?]은 충청남도 남포군 웅천면 광암리[현재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황교리] 출신으로 보령 지역이 중심이 된 의병을 조직하여 활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활동 사항]

장석홍은 1908년 2월부터 의병 30여 명을 거느리고 충청남도의 남포, 서산(瑞山), 태안(泰安) 등지에서 일본인을 처단하는 등 의병장 활동을 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구한말 일본은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을 강제로 체결하면서 대한제국의 내정을 장악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한제국의 군대인 진위대(鎭衛隊)와 시위대(侍衛隊)를 강제로 해산하여 무력화시켰다. 이러한 사실에 전국 각지에서 의병들이 봉기하였는데, 의병대에 해산 군인들이 많이 참여하면서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의병이 조직되었다.

[충청남도 의병으로써의 활동]

충청남도 지역에서는 을사늑약(乙巳勒約) 이후 의병 활동이 꾸준히 이어졌다. 1907년 8월 경기도 죽산에서 의병을 일으킨 당진 출신의 정주원(鄭周源)[1870~1908] 의병대와 경기도 수원 출신의 홍원식(洪元植)[1877~1919] 의병대가 당진의병의 추축을 이루어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의병장 정주원은 경기도 남부 지역과 충청남도 서산, 당진 일원에서 활동하다가 1908년 7월 해미에서 체포되었고, 홍원식은 당진군 소난지도(小蘭芝島)를 근거지로 활동하다가 1908년 3월 홍성경찰서 순사대의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는 등 충청남도 일대의 의병 활동은 매우 격렬하고 활발하였다.

일련의 상황에서 장석홍의 의병대는 분대를 나누어 해안선에 상륙하였고, 해안 지역의 마을들을 누비면서 활동하였으나 장석홍은 결국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장석홍은 1908년 9월 23일 소위 내란죄로 기소되어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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