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668 |
---|---|
한자 | 崔相集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소황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을경 |
출생 시기/일시 | 1849년 - 최상집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906년 - 최상집, 홍주의병 소모장(召募將) 활동 |
몰년 시기/일시 | 1909년 - 최상집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최상집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소황리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홍주의병 소모장(召募將) 활동 |
[정의]
일제 강점기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의병.
[개설]
최상집(崔相集)[1849-1909]은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소황리 출신으로 홍주의병에 참여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활동 사항]
최상집이 활동한 홍주의병은 1906년 안병찬(安炳瓚)[1854~1929]과 채광묵(蔡光默)[1850~1906] 등이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의병을 일으키면서 시작되었다. 안병찬과 채광묵은 충청남도 청양에 거주하고 있던 민종식(閔宗植)[1861~1917]을 총수로 추대한 후 1906년 3월 예산 광시에서 봉기하여 홍주성을 점령하였다. 이때 최상집은 민종식 의병대의 소모장(召募將) 역할을 맡아 충청남도 홍주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의병대의 대장이었던 민종식은 러일전쟁 직후 체결된 을사늑약으로 인하여 국망의 위기를 절감하였다. 따라서 민종식은 국권을 회복하겠다는 목표로 처음에는 충청남도 정산군 천장리를 거점으로 동지를 규합하였고, 군수품을 준비하는 등 의병 봉기를 준비하였다. 이후 1906년 4월 처남인 이용규(李容珪)와 이세영(李世永)·채광묵(蔡光默)·김광우(金光祐)·조희수(趙羲洙)·정재호(鄭在鎬)·황영수(黃英秀)[1855~1919]·이상구(李相龜) 등과 함께 충청남도 홍산에서 의병을 일으켰던 것이다.
[의병으로써의 활약]
최상집은 민종식과 함께 의병 소모장으로서 의병을 모으는 역할을 하였다. 최상집은 민종식 의병대에서 1906년 5월 19일 홍주성을 탈환할 때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일본군 수비대와 홍주성에서 10여 일 동안의 공방전을 전개하여 적군 300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는 등 큰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홍주의병은 화력 및 병력의 열세로 5월 31일 홍주성이 함락되었는데, 이때 최상집도 체포되었다. 결국 같은 해 6월에 대마도(對馬島)로 유배되는 형을 받고 고초를 겪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