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6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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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羅州 崔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문광균 |
입향 시기/일시 | 18세기 - 최만흥 입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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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나주 - 전라남도 나주시 |
입향지 | 나주 최씨 입향지 -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효자도 |
묘소|세장지 | 나주 최씨 묘역 - 충청남도 보령시 청소면 장곡리 |
성씨 시조 | 최택(崔澤) |
입향 시조 | 최만흥(崔萬興) |
[정의]
최택을 시조로 하고 최만흥과 최논금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의 이거 성씨.
[개설]
나주 최씨(羅州 崔氏)는 전라남도 나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조선 명종 대 진사(進士)였던 최택(崔澤)을 시조로 하고 최만흥(崔萬興)과 최논금(崔論金)을 입향조로 하는 보령 지역의 이거 성씨이다.
[연원]
나주 최씨는 크게 두 가지 계통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탐진 최씨(耽津 崔氏) 중 조선 세종 대 진의부위(進義副尉)를 지낸 최정원(崔井元)을 시조로 하는 청양파(靑陽派)와, 다른 하나는 진사 출신 최택을 시조로 하고 최택의 후손 중 최논금을 중시조로 하는 보령파(保寧派)이다. 하지만 최정원의 청양파가 다시 탐진 최씨로 합쳐지면서 자연스럽게 최택을 시조로 하는 나주 최씨만 남게 되었다. 최택의 아들인 최부(崔溥)[1454~1504]는 『표해록(漂海錄)』을 저술하였으며,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문인으로 홍문관(弘文館) 교리(校理)까지 올랐다.
[입향 경위]
보령 지역으로 입향한 나주 최씨는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류는 최논금을 중시조로 하는 보령파 계열이다. 보령파는 가선대부(嘉善大夫)까지 오른 최논금을 시조로 한다. 하지만 연대기 자료에서는 최논금의 자료를 확인할 수가 없어서 정확한 입향 시기는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다.
두 번째 부류는 보령군 효자도에 들어온 최만흥을 입향조로 하는 계열이다. 나주 최씨 가문에 전하는 이야기로는 최만흥이 관직 생활을 하던 중 역적으로 몰려서 도망친 후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청어(靑魚)를 잡으면서 오천면 효자도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정확한 입향 시기는 알 수 없지만, 현재 남은 후손의 8대조가 입향조 최만흥이라는 사실을 추론해 보면, 18세기에 입향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2015년 통계지리정보서비스 본관 인구 분포 조사에 따르면 충청남도 보령시에 거주하는 나주 최씨는 4,026명으로 파악된다.
[관련 유적]
입향조인 최만흥의 묘소는 현재 충청남도 보령시 청소면 장곡리에 조성되어 있으며, 최만흥 이후 조상들의 묘소도 함께 자리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