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7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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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寶城 吳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문광균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미상 - 오희(吳希)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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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 시기/일시 | 조선 연산군 대 - 오희(吳希) 입향 |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미상 - 오희(吳希) 사망 |
입향지 | 보성 오씨 입향지 -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 나원리 |
세거|집성지 | 보성 오씨 세거지 -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
성씨 시조 | 오현필(吳賢弼) |
입향 시조 | 오희(吳禧) |
[정의]
오현필을 시조로 하고, 오희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의 이거 성씨.
[연원]
보성 오씨(寶城吳氏)는 오현필(吳賢弼)을 시조로 한다. 1216년(고려 고종 3)에 거란군을 토평(討平)한 공으로 오현필의 큰형 오현보(吳賢輔)는 해주군(海州君)에 봉해지고, 둘째 형 오현좌(吳賢佐)는 동복군(同福君)에, 오현필은 보성군(寶城君)에 봉해져 3형제가 파를 형성하여 번창하기 시작하였다. 이로부터 후손들이 관향을 보성으로 하였다.
3세손 오한경(吳漢卿)[1242~1314]은 고려 원종 대에 감시(監試)에 장원 급제하여 동궁시학(東宮侍學)에 선발되었고, 충선왕 대에 삼사 우사를 거쳐 첨의 찬성사를 지냈고, 문온공(文溫公)에 봉해졌다. 6세손 오사충(吳思忠)[1327~1406]은 대사성과 좌상시를 지냈으며, 조선 개국 후 좌명개국 삼등공신으로 영성부원군(寧城府院君)에 추증되었고, 중추원 부사, 정당문학, 판사평부사(判司平府事)를 지내며 가문의 기틀을 다졌다.
[입향 경위]
13세손 오자경(吳子慶)[1414~1478]의 둘째 아들 오연찰(吳延札)은 남포파의 중시조이다. 오연찰의 장자 오희(吳禧)는 사옹원(司饔院) 직장(直長)으로 연산군 대 정치가 혼란함에 따라 더 이상 한양에서 생활한 상황이 되지 못함을 알고 자손을 보전하기 위해 보령군 청라면 나원리 월치(月峙)로 은거하면서 입향하게 되었다.
보령에서 3대가 음직(蔭職)으로 출사를 하면서 살아왔는데, 당시 권세가의 극성을 피하여 18세손 오영필(吳永弼)이 청라면을 떠나 보령 남포현 고읍면 신기리에 정착하여 가난한 사족으로 세거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후 23세손 오형(吳炯)은 황산찰방(黃山察訪)으로 수안파, 오헌(吳巘)이 외성파, 오영(吳詠)이 내성파, 오인(吳認)이 평장파를 형성하여 보령 남포현 지역에서 후손들이 번창하면서 가문의 위상이 달라지게 되었다.
[현황]
2015년 통계청에서 조사에 따르면, 충청남도 보령시에 거주하는 보성 오씨는 757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