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봉 이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708
한자 牛峰 李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주포면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문광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미상 - 이승춘 출생
입향 시기/일시 1504년연표보기 - 이승춘 입향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미상 - 이승춘 사망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미상 - 이관 출생
입향 시기/일시 1722년연표보기 - 이관 입향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미상 - 이관 사망
입향지 우봉 이씨 입향지 -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지도보기|주포면지도보기
성씨 시조 이공정(李公靖)
입향 시조 이승춘(李承春)|이관(李綰)

[정의]

이승춘과 이관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의 이거 성씨.

[개설]

우봉 이씨(牛峰李氏)는 고려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이었던 이공정(李公靖)[?~?]을 시조로 하고, 이승춘(李承春)[?~?]과 이관(李綰)[?~?]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의 이거 성씨이다.

[연원]

우봉 이씨의 선계는 신라 때 공신이 된 이두창(李頭昌)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후 후손에 대한 기록이 없어져서 이공정을 시조로 삼고 있다. 이공정은 고려 명종 때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벽상삼한공신(壁上三韓功臣) 삼중대광(三重大匡)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잠성부원군(岑城府院君)에 녹훈되었으며, 잠성[우봉의 별칭] 등을 식읍으로 받아 이곳을 관향으로 삼았다. 이후 이승춘과 이관이 입향하게 되었다.

[입향 경위]

우봉 이씨의 입향은 두 명의 입향조를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이승춘은 연산군대 성균관(成均館) 대사성(大司成)으로 홍문관에서 시사(詩詞)를 논했다는 이유로 외직인 평안병사(平安兵使)로 나갔다가 바로 해직되었는데, 갑자사화(甲子士禍)로 집안이 피해를 입게 되면서 충청남도 보령 남포현 늑전리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후 가문은 한미해졌고, 출사한 인물도 많지 않았다. 이승춘의 후손들은 거의 보령을 떠났고 일부 후손들만 살고 있다.

이관은 이승춘과 같은 계열로 조선 후기 서인 중에서 노론의 중심 축이 되어 격변하는 정국 속에 있었다. 경종 시기 발생한 신임사화(辛壬士禍) 영향으로 보령현으로 입향하게 되었다. 이후 자손들은 모두 한직에 머물되었다가 이관의 7세손 이봉구(李鳳九)가 무과에 급제하여 충청수사(忠淸水使)가 되었다. 그 뒤 이 지역을 떠나 상자지향(桑梓之鄕)인 용인으로 돌아갔으며, 그의 아들 5형제 중에서 역사학자인 이병도(李丙燾)[1896~1989]가 나오기도 하였다.

[현황]

2015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충청남도 보령시에 거주하는 우봉 이씨는 119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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