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7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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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篁橋里 長水 黃氏 世居地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황교리 |
시대 | 조선/조선,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문광균 |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황교리에 있는 장수 황씨 세거지.
[개설]
황교리 장수 황씨 세거지(篁橋里 長水 黃氏 世居地)는 장수 황씨(長水 黃氏)가 보령 웅천읍 황교리(篁橋里)로 이주하면서 거주하게 된 세거지이다.
[명칭 유래]
황교리는 대황리(大篁里)와 주교리(舟橋里)의 명칭에서 한 글자씩 따서 만들었다. 장수 황씨가 세거하였던 광암(廣巖)은 ‘넓고 큰 바위’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입향경위]
입향조 황즙(黃葺)[1560~1613]이 호서 비인현에 입향한 것에서 시작된다. 황즙은 1592년에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났을 때 난을 피하여 호서의 비인현 저동[현재 충청남도 서천군 판교면 저산리]으로 낙향하였다.
황즙이 비인현 저동을 택한 까닭은 처가인 풍천 임씨가 이미 저동에 입향하여 정착하고 있었던 데서 비롯되었다. 조선 시대 거주지 이전의 전형적인 형태인 외가나 처갓집 근처로의 이동이었던 것이다. 황즙의 아들 황정직(黃廷直)[1582~1657]은 아버지의 묘소를 웅천읍 대창리에 정하고, 비인 저동을 떠나서 웅천읍 황교리 광암에 정착하였다. 입향 시기는 17세기 초로 추정된다.
[관련유적]
입향조 황즙과 아들 황정직의 묘소는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대창리에 자리하고 있다. 황정직과 황유업(黃有業)[1688~?]의 정려(旌閭)[충신, 효자, 열녀 등을 그 동네에 붉은 문을 세워 표창하던 일]는 원래 황교리 광암에 있었는데, 1992년에 공군사격장이 건설되면서 정려를 묘소 인근인 웅천읍 대창리로 이전하였다.
[현황]
장수 황씨는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황교리 광암에 대대로 거주하였으나, 1992년에 황교리 인근에 공군사격장이 건설되면서 지금은 모두 이주한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