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9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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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花峴精舍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기관 단체/학교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화산동 화현마을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근대 |
집필자 | 정필준 |
최초 설립지 | 화현정사 - 충청남도 보령군 목충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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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초등교육기관 |
설립자 | 한양 조씨 문중 |
[정의]
근대 시기 충청남도 보령시 화산동에 있었던 서당.
[개설]
근대 교육이 자리 잡기 전에는 지역마다 크고 작은 서당이 운영되어 기초 교육을 담당하였다. 서당에서는 주로 한문 강독, 한자 연습, 시문 짓기 등의 교육을 주로 하였으며, 교재는 『천자문(千字文)』, 『동몽선습(童蒙先習)』, 『통감(通鑑)』, 『소학(小學)』 등이었다.
특별한 허가나 자격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으며, 훈장(訓長)과 접장(接長) 정도의 인원만 있으면 어느 곳이나 개설할 수 있었다. 서당은 운영 형태에 따라 성격을 규정할 수 있는데, 화현정사(花峴精舍)는 한양(漢陽) 조씨(趙氏) 문중이 화현마을에 설치하여 운영하는 서당이었다.
[변천]
화현정사는 한양 조씨 문중이 설치하여 약 100년간 유지되었다. 특히, 진사(進士) 조일원(趙一元)이 갑오개혁 이후 보령으로 낙향하여 교육에 전념하였다. 1930년대 서천군수를 역임한 신창섭(申昌燮)[1891~?], 일제 강점기 보령군 대천면의 유지였던 황오현(黃五顯), 신동우(申東禹), 최익, 조충원 등의 지역 인재를 다수 배출하였다. 화현정사는 인근의 보령향교(保寧鄕校), 화암서원(花巖書院) 등과 학문적 교류가 잦았다.
[현황]
화현정사는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 근대식 교육이 보급되면서 점차 쇠퇴하여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