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건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1316
한자 尹建五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대천리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을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35년연표보기 - 윤건오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18년연표보기 - 윤건오 사망
출생지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거주|이주지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대천리 지도보기
묘소|단소 윤건오 묘소 - 충청남도 부여군 내산면 괴목리
성격 문인
성별
본관 파평(坡平)

[정의]

구한말 시기에 활동하였으며 충청남도 보령으로 이거 한 문인 .

[개설]

윤건오(尹建五)[1835~1918]는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에서 출생하였으며, 1890년 이후 재종질(再從姪)이었던 윤석봉(尹錫鳳)[1842~1910]과 함께 충청남도 보령군 웅천읍 대천리로 이주하여 활동한 인물이다.

[가계]

윤건오의 본관은 파평(坡平)으로 자는 성극(聖極)이며, 호는 화정(花汀)이다.

[활동 사항]

윤건오는 1896년에 단발령이 공포되자 자손들을 모아 놓고 머리를 자르면 오랑캐, 짐승과 구별이 안 된다고 하면서 단발을 금지할 것을 명령하였다. 1910년 한일병합의 소식이 전해지자, 국권 상실을 통곡하면서 식음을 전폐하였으며, 스스로 머리를 깎고 죄인임을 천명하였다. 윤건오는 철저한 성리학적 의리론자로써 임종 직전까지도 자손들에게 “금수와 오랑캐를 구분하라”라는 말을 남겼다.

[학문과 저술]

윤건오는 어렸을 적부터 사서삼경 등 경전을 독학하였다.

[묘소]

윤건오의 묘는 부여군 내산면 괴목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둘째 아들 윤석희가 찬한 묘비와 함께 자리잡고 있다.

[참고문헌]
  • 『보령시지』(보령시지편찬위원회, 2010)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s://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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