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833
한자 李愚正
영어공식명칭 I Ujeong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영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0년 8월 28일연표보기 - 이우정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06년 - 이우정 법관양성소 입학
수학 시기/일시 1908년 11월 - 이우정 법관양성소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03년 11월 - 이우정 원산우체사 주사로 근무
활동 시기/일시 1908년 4월 - 이우정 교남교육회 회원으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09년 2월 - 이우정 대구공소원 서기로 임용
활동 시기/일시 1909년 10월 - 이우정 대구지방재판소 안동구재판소 판사로 승진
활동 시기/일시 1912년 4월 - 이우정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 판사로 재직
활동 시기/일시 1912년 8월 - 이우정 한국 병합 기념장 받음
활동 시기/일시 1915년 - 이우정 대정 즉위 기념 대례 기념장 받음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이우정 3.1 운동 참가자에게 보안법 위반 적용
활동 시기/일시 1928년 4월 - 이우정 변호사 개업
활동 시기/일시 1928년 11월 - 이우정 소화 즉위 기념 대례 기념장 받음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9년 - 『친일 인명 사전』(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2009)에 등재
출생지 이우정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월곡리 지도보기
활동지 이우정 활동지 - 서울특별시
활동지 이우정 활동지 - 경상북도 안동시
성격 법조인
성별
본관 벽진
대표 경력 교남교육회 회원|대구공소원 서기|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 판사

[정의]

일제 강점기 성주 출신의 법조인.

[가계]

본관은 벽진(碧珍). 완정(浣亭) 이언영(李彦英)[1568~1639]의 11세손이며, 아버지는 면와(勉窩) 이덕후(李德厚), 어머니는 진성 이씨(眞城李氏)이다. 이우원(李愚元)은 형이고, 이우필(李愚弼)은 동생이다.

[활동 사항]

이우정(李愚正)[1880~?]은 1880년 8월 28일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월곡리에서 삼 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성장하면서 한주학파(寒洲學派) 한계(韓溪) 이승희(李承熙)의 문하에서 수학했고, 1903년 11월부터 원산우체사 주사를 지냈다. 1906년 법관양성소에 입학해 1908년 11월 우등으로 졸업하였다. 법관양성소에서 신교육을 받던 1908년 4월 동생 이우필(李愚弼)과 함께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에 참가하여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교남교육회는 1908년 4월 서울에서 영남 출신 인사들이 조직했고, 참여 인사들은 비교적 선각적인 유생들이었다. 교육 진흥 활동을 통해 경상북도 지역에서 학교 설립을 촉진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우정·이우필 형제도 당시의 흥학(興學) 활동에 같이 참여하였다. 교남교육회 전체 회원 수는 약 600명이었고, 그중 경상북도 성주 출신은 이우정·이필우을 비롯하여 도헌모(都憲模)·이윤(李潤)·김우곤(金佑坤)·이우열(李愚烈)·오왕근(吳汪根)·이창호(李昌鎬)·이우중(李愚重)·배경기(裵景琪)·배상렴(裵相濂) 등 11명이었다.

이우정은 법관양성소를 졸업한 이듬해인 1909년 2월 대구공소원 서기로 임용되었고, 1909년 10월에는 대구지방재판소 안동구재판소 판사로 승진하였다. 일제 강점기인 1912년 4월 관제 개편으로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 판사로 직명이 개칭되었고, 8월에는 일제 정부로부터 한국 강제 병합 기념장(韓國倂合記念章)을 받았다. 1915년에는 다이쇼[大正] 일왕 즉위 기념 대례 기념장을 받았다.

1919년 3.1 운동 때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 판사로 재직하며 경상북도 안동군 일직면의 만세 운동에 참여한 이구덕(李九德)에게 3월 21일에 「보안법」 위반을 적용해 태형(笞刑) 90대를 선고하였다. 경상북도 안동군 임동면 편항 시장에서 만세 운동을 펼친 김은수(金銀守)에게는 6월 26일에 역시 「보안법」 위반을 적용해 징역 2년을 선고하였다. 1923년 4월에 경상북도 대구부, 지금의 대구광역시에서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고, 1928년 11월에는 쇼와[昭和] 일왕 즉위 기념 대례 기념장을 받았다.

이우정한계 이승희의 문인으로서 경상북도 성주 지역의 계몽 운동 전개 과정 당시에는 벽진 이씨(碧珍李氏)를 대표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는 법조인으로서 일본 정부로부터 세 차례나 기념장을 받았고, 2009년에 간행된 『친일 인명 사전』에 친일 인물로 수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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