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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림사 대웅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671
한자 鳳林寺大雄殿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천문로 2149-368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찬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42년연표보기 - 봉림사 대웅전 창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857년 - 봉림사 대웅전 중창
현 소재지 봉림사 대웅전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천문로 2149-368[자천리 2372]지도보기
성격 불전
양식 다포계 맞배집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3칸
소유자 봉림사
관리자 봉림사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 2372번지 봉림사(鳳林寺)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전.

[개설]

봉림사 대웅전영천시 화북면 자천리 보현산 남쪽에 있는 조선 후기 다포계 주 불전이다. 봉림사 경내에는 현재 주 불전인 대웅전을 비롯해 최근에 건축된 산령각, 요사채가 있다.

[위치]

봉림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 말사이다. 위치는 경상북도 영천 시내에서 화룡 삼거리 또는 중앙 사거리[남문통]에서 경상북도 청송군 간 35번 국도[천문로]를 타고 17㎞ 가량 가면 자천 오리장림[천연기념물 제404호]이 나온다. 자천 오리장림에서 봉림교를 건너 북서쪽의 봉림골로 난 시멘트 포장길을 3.0㎞가량 올라간 계곡변 산비탈에 있다.

[변천]

『한국사찰전서』에 따르면, 봉림사는 “1742년(영조 18) 징월(澄月) 스님이 신라 문무왕 때에 의상이 창건한 청송 보현산의 법화사(法華寺)를 옮겨 지어 이 절을 창건했다고 전한다. 그 뒤 1857년(철종 8) 소월(韶月)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산신각, 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 안에는 「후불탱화」·「신중탱화」·「지장탱화」·「칠성탱화」 등이 봉안되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최근에 산령각과 요사채를 새로이 신축해 경내가 크게 일신되었다. 지정문화재로는 1724년(경종 4, 영조 1)에 제작된 보물 제1612호인 봉림사 영산회상도 및 복장 유물이 있다.

[형태]

봉림사는 좁은 능선 사이의 곡부를 관통하는 계곡 서안(西岸)을 따라 산 쪽으로 붙여 건물을 배치하였고, 주향은 동남향이다. 대지는 전방 계곡변의 산자락을 두 단으로 조성하고 여기에 석축을 쌓아 마련했다.

대웅전은 사역 중앙 쯤에 두 단으로 조성한 대지의 윗단에 뒷산의 석축에 바짝 붙여 동남향으로 배치했다. 건물은 외벌대의 자연석 기단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두리 기둥 12개를 세워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로 꾸몄다. 특히 전면 석축 중앙에는 돌계단을 두었고, 윗단 석축은 건물의 기단을 겸하고 있다.

구조는 다포계, 겹처마 맞배집이다. 주칸은 정·측면 모두 어칸이 양협칸보다 조금 넓게 설정되어 있다. 구체부는 창호와 벽체로 구성되어 있다. 창호는 정면 각 칸에, 양 측면은 전면 협칸에만 설치되어 있고, 후면은 어칸과 우협칸에 각기 설치되어 있다. 정면 창호는 어칸에 굽널세살 4분합들문, 양 협칸은 굽널세살 3분합들문이다. 양 측면의 전면 협칸에는 외여닫이 굽널세살문을 달아 신도 및 스님의 출입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후면 창호는 어칸에 외여닫이 굽널세살문, 우협칸에는 쌍여닫이 띠장널문을 달아 사용하고 있다. 주상부는 창방·평방을 결구하고, 공포는 외2출목, 내2출목의 다포계 공포로 꾸몄다. 양 측면의 평방은 단평방으로 타 건물처럼 내단을 측고주와 결구시키는 않았다.

공포는 주상포와 더불어 각 칸 공히 공간포 두 구씩을 배치했다. 제공 형태는 전·후면이 동일하다. 외단 형태는 전·후면 공히 2제공까지 앙서형이고, 3제공은 삼분두형, 4제공은 주상부에 량두, 공간포는 운공형으로 각기 장식했다.

내단은 2제공까지는 교두형, 3제공은 삼분두형, 4제공은 운공형으로 각기 꾸몄다. 내부 바닥은 후대 개조한 듯한 장마루가 깔려 있고, 내고주 사이에 후불벽을 마련하고 여기에 불단을 설치한 뒤 삼존불을 안치했다. 내고주는 양 측면 고주와 동일선상에 위치하도록 배열시킨 정치법(正置法)이 적용된 탓에 불단 앞 공간 이용면에서는 다소 불리해 보인다.

상부 가구는 양 측면에 전·후퇴 2고주 5량가, 내부는 후퇴 1고주 5량가이다. 대량은 전면으로 주상포의 3제공 위에, 후면은 내고주에 각기 결구하였다. 그리고 후불벽이 있는 내고주 상부에서 대량과 후퇴량을 합보로 결구시켰다.

종량은 대량 위에 초각형 판대공에 주두와 보아지를 결구해 지지했고, 종도리는 판대공으로 지지했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이은 맞배집이다. 지붕 양 측면으로는 방풍판을 달았고, 처마는 전면에만 겹처마이고 후면은 홑처마로 간단히 처리했다.

[현황]

현재 봉림사에는 대웅전을 비롯해 요사채, 산령각 등이 있다. 사역 초입의 남쪽에 요사채 두 동이 나란히 동남향하여 있고, 그 윗단에 대웅전이 위치한다. 대웅전 윗단의 별곽에는 산령각이 위치한다. 요사채와 산령각, 대웅전 등 각 영역은 최근에 와서 담장[기와조각+진흙]을 쌓아 각 영역을 설정하였다.

[의의와 평가]

봉림사는 임진왜란 이후 주 불전인 대웅전 한 동과 요사채 또는 승방 한 동으로 구성된 소규모 산지사찰로 시기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대웅전은 조선 후기에 건립된 다포계 맞배집의 일반적인 시기적 특성으로 여겨지는 공포 및 내부 가구부재의 섬세한 장식성 및 새로운 시도의 각종 가구법 등이 전혀 보이지 않는 매우 평범한 건축적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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