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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994
한자 李安柔
이칭/별칭 이립(而立),서파(西坡)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순홍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405년 - 이안유 식년 문과에 급제
활동 시기/일시 1412년 - 이안유 정언에서 헌납으로 승진
활동 시기/일시 1418년 - 이안유 경상북도 경산으로 유배됨
거주|이주지 이안유 거주지 - 경상북도 영천시 쌍계동
묘소|단소 이안유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쌍계동
사당|배향지 구인사 - 경상북도 영천시 쌍계동
성격 문인
성별
본관 영천
대표 관직 예조 정랑

[정의]

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 문인.

[가계]

이안유(李安柔)의 본관은 영천, 자는 이립(而立), 호는 서파(西坡)이다. 고조는 보승호군(保勝護軍) 이문경(李文卿)이며, 증조는 판도판서(版圖判書) 이송현(李松賢), 조부는 경덕재생(經德齋生)으로 추봉(追封) 판도판서(版圖判書) 이흡(李洽)이다. 아버지는 판도판서(版圖判書) 이석지(李釋之)이며, 어머니는 정경부인(貞敬夫人) 연안 이씨(延安李氏)로 별장(別將) 이수창(李壽昌)의 딸이다.

부인은 숙인(淑人) 문화 유씨(文化柳氏)로 슬하에 2남 2녀를 두니 아들은 직장(直長) 이종근(李宗謹)과 현감(縣監) 이종양(李宗讓)이며, 사위는 생원(生員) 정수손(丁壽孫)과 김휘손(金徽孫)이다.

[활동 사항]

이안유는 경승부 승(敬承府丞)으로 있다가 1405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정언(正言)이 되고, 1412년에 헌납(獻納)으로 승진되었으며, 풍해도 경력(豊海道經歷), 이조와 예조 정랑(正郞)으로 승진되었다.

1418년(태종 18)에 강상인(姜尙仁)의 교무옥(矯誣獄)에 말이 연루되어 직첩이 몰수되고 경상북도 경산으로 귀양 갔다가 9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서파(西坡)마을[경상북도 영천시 쌍계동]에 자리잡고 살았다.

유방선(柳方善)이 시를 주어 말하기를 ‘백성의 뜻은 오래토록 왕안석 일어나길 생각하고, 임금의 맘은 응당 자네 돌아오길 생각하리라.’라고 하였다.

[묘소]

경상북도 영천시 쌍계동에 단소(壇所)가 있으며, 비명은 진성(眞城) 이원윤(李源胤)이 지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영천시 쌍계동의 구인사(求仁祠)에서 제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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