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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곤 처 월성 이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1355
한자 金台坤妻月城李氏
이칭/별칭 이자희(李慈喜)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대기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최미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6년 12월 9일연표보기 - 김태곤 처 월성 이씨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63년 8월 24일연표보기 - 김태곤 처 월성 이씨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7년 5월 21일 - 김태곤 처 월성 이씨 포열비 건립
묘소|단소 김태곤 처 월성 이씨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대기리
사당|배향지 포열각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대기리 지도보기
성격 열녀
성별
본관 월성

[정의]

근대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열녀.

[가계]

열녀 이자희(李慈喜)는 월성 이씨(月城李氏)로 이집원(李集元)과 의성 김씨(義城金氏) 사이에서 1886년(고종 23) 12월 19일에 태어나 1963년 8월 24일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남편은 김태곤(金台坤)으로, 아버지 종사랑(從仕郞) 김기호(金棋昊), 어머니 전주 이씨(全州李氏) 사이에서 1886년 5월 10일에 태어나 1939년 10월 26일 5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활동 사항]

열녀(烈女) 이씨(李氏)는 어려서부터 영민하고 천품이 인자하며, 자상함과 덕을 고루 갖추었다. 19세에 시집을 와서 시부모를 정성껏 모시고 형제간에 우애를 돈독히 하여 온 집안을 화합케 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일점혈육을 얻지 못하여, 남편이 둘째부인으로 파평 윤씨(坡平尹氏)를 맞이하여 7남매를 두니 생모 이상으로 귀여워하며 모두를 훌륭하게 길러냈다.

이씨는 부군이 병을 얻자 백방으로 약을 구하고 여러 의원을 전전하였으나 백약이 무효라 운명할 찰나 손가락을 문지방에 놓고 부엌의 식도로 약지를 한 마디 이상 베어 부군의 입에 수혈하여 잠시나마 연명케 하니 그 소식이 향당에 알려져 칭송이 자자하였다.

이에 신녕(新寧) 유림이 나서 영천군(永川郡)과 성균관(成均館)에 천거하여 포상을 받았고, 1987년 5월 21일 신녕유도회(新寧儒道會)의 결의로 포열비(褒烈碑)를 세우기에 이르렀다.

[묘소]

열녀 이씨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대기리에 쌍분(雙墳)으로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대기리에 포열각(褒烈閣)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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