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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635
한자 李大田遺墟碑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대전동 618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정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397년 - 이보흠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457년 - 이보흠 사망
건립 시기/일시 1629년연표보기 - 이대전유허비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85년 8월 5일연표보기 - 이대전유허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4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이대전유허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현 소재지 이대전유허비 - 경상북도 영천시 대전동 618 지도보기
성격 비|비각
양식 겹처마|맞배지붕
관련 인물 단종|이보흠
재질 비각 : 목재|비 : 석재
크기(높이) 228㎝
너비 56㎝
두께 20㎝
소유자 영천 이씨 충장공파 종중
관리자 영천 이씨 충장공파 종중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문물|보호단위 등급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대전동에 있는 조선 시대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처형당한 이보흠(李甫欽)의 유허비.

[개설]

이보흠[1397~1457]의 본관은 영천, 자는 경부(敬夫), 호는 대전(大田)이다. 1429년 식년문과에 급제해 집현전박사(集賢殿博士)가 된 후 1457년 순흥 부사(順興府使)로 재임 중 순흥에 유배와 있던 금성 대군단종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었다. 평안도 박천 지역으로 유배간 후 그곳에서 죽임을 당하고 이보흠의 집안도 몰락했다.

1738년(영조 14)에 단종과 함께 사면되어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1791년 충장(忠莊)의 시호를 추증하고, 장릉의 충신단(忠臣壇)에 제향되었다. 이보흠이 저술한 『대전실기(大田實記)』가 전해진다.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죽곡리에 있다. 유허비에는 이보흠의 자취와 공적 등 그의 행적을 적고 있다.

[건립 경위]

이대전유허비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처형당한 이보흠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629년(인조 7) 그가 성장했던 곳인 대전동에 세웠다. 한편 유허비가 있는 곳에는 연못이 있는데 이보흠이 처형되던 날 연못물이 핏물처럼 붉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구전되고 있다.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위치]

이대전유허비경상북도 영천시 대전동하대전마을에 있다. 영천에서 군위로 이어지는 국도 28호선을 타고 신녕 방면으로 가다보면 화룡동대전동을 잇는 고현천 위에 놓인 화룡교[신화룡교]가 나온다. 이 다리를 지나면 우측으로 대전동으로 진입하는 시멘트 포장길이 있는데 이 길을 따라 들어가면 먼저 하대전마을이 나온다. 새마을회관과 마을 창고를 지나면 우측의 민가 사이에 유허비가 있다.

[형태]

이대전유허비는 단칸 규모의 겹처마 맞배지붕의 목조와가 비각 내부에 귀부·비신·이수로 구성한 비가 있다. 비각은 방형으로 둘러싼 토석 담장의 정면 가운데에 일각문을 통해 드나든다. 낮은 외벌대 기단을 다지고 덤벙 주초[자연석 주춧돌]를 앉힌 다음 원형 기둥을 세워 비각을 건립했다.

주 상부는 창방을 건너지르고 2단의 앙서를 조각해 맞춘 이익공 양식이다. 비각에는 별도의 문이 없고 하부를 흙으로 만든 고맥이로 처리하고 상부를 홍살벽으로 처리했다.

지붕은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한식기와를 올리고, 박공면에는 풍판을 달아 비바람에 대비했다. 전면 상부에 ‘충장공 대전 이선생 유허비각(忠莊公大田李先生遺墟碑閣)’이라는 현판이 걸려있고 내부 후면 상부에 기문이 걸려있다.

비각 내부에는 귀부 위에 비신을 꽂고 그 위에 화강석을 당초문으로 조각한 비갓을 씌웠다. 비신의 석재는 일반적인 비석 돌로 표면을 매끄럽게 만들고 글자를 새겼다.

[금석문]

이대전유허비 비각의 전면 상부에는 가로로 긴 방형의 목판에 ‘충장공 대전 이선생 유허비각(忠莊公大田李先生遺墟碑閣)’이라고 새긴 현판이 걸려있다. 글자의 순서는 상하 두 글자를 우측에서 좌측으로 읽도록 했다.

비각 내부 후면 상부에 기문이 걸려있다. 비각 내부의 비신[비몸] 전면에 비명과 비문을 새겼는데 상부에 가로로 긴 방형의 쪼아낸 흔적이 있다. 이것은 비명이 가로로 새겨져 있던 것을 후대에 인위적으로 쪼아낸 것으로 추측된다. 비명 아래에는 세로로 비문을 새겼다.

[현황]

이대전유허비의 비각이 있는 대전동이보흠의 생장지로 마을 동쪽에는 보현산에서 발원한 고현천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있고, 북쪽은 화산면과 경계를 이루는 낮은 구릉성 산지가 있어 배산임수형의 마을이다. 이보흠의 묘소는 화남면 죽곡리에 있으며, 묘소 아래 영모재(永慕齋)가 있다. 유허비 근처에 순흥연(順興淵)이 있으며, 임고면 덕연리에 대전정사(大田精舍)가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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