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749 |
---|---|
한자 | 愚溪亭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야사동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태훈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조선 후기 숙종 때 학자인 서행구(徐行矩)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정자.
[개설]
서행구[1625~1688]의 본관은 대구, 자는 여중(汝仲), 호는 우계(愚溪)이다. 조선 후기 효종 때인 1651년 생원시에 합격해 성균관 생원을 지냈다. 서행구는 세 번이나 암행어사에 천거되었지만 벼슬을 마다하고 은둔하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위치]
우계정(愚溪亭)은 행정구역으로 경상북도 영천시 야사동에 있다. 영천 시청오거리에서 포항 방면으로 약 600m 가면 우측으로 영천고등학교 진입로가 있다. 이 길로 들어서 영천고등학교 정문을 지나 좌측의 아파트 단지를 끼고 계속 가면 유성타워맨션 앞 강변에 우계정이 있다.
[변천]
우계정 기문에 따르면 우계정은 조선 후기 성균관 생원을 지냈던 서행구가 자신의 호를 우계로 정하고 시를 지었으나 정자가 없어 안타까워했다. 무자년(戊子年) 먼 후손들이 서행구의 뜻을 이어 정자를 짓고 기문을 남겼다. 기문은 경인년(庚寅年)에 안동인 권석찬(權錫瓚)이 썼다. 권석찬은 1916년에 재간한 『간송당문집(澗松堂文集)』 중 『사정문집(思亭文集)』의 발문을 기록한 자로 같은 인물이 우계정 기문을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기문 작성연대인 경인년은 1890년으로 추정되고 우계정 건립연도인 무자년은 1888년으로 추정된다.
[형태]
우계정은 가로로 길죽한 방형의 시멘트 블록 담장 내에 ‘一’자형의 정자가 남서향하여 독립 배치되어 있다. 도로변의 일각문을 통해 들어가면 정면 4칸, 측면 1.5칸의 팔작지붕 건물이 뒤의 아파트를 배경으로 어색하게 앉아 있다.
평면은 대청마루 방을 중심으로 좌측에 온돌방 한 칸, 우측에 온돌방 두 통칸으로 구성하며, 전면에 반 칸의 퇴를 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型)이다. 건물 측면과 대청 배면에는 쪽마루를 두어 동선의 편의를 도모했으며, 좌 측방 배면에는 벽장을 두었다. 퇴의 가장자리에는 계자각 난간을 두른 헌함을 두었고 하부로는 누하 공간으로 처리했다. 창호는 청방 간과 청퇴 간에 사분합문을 달아 공간 확장을 꾀했다. 방의 전면에는 쌍여닫이 세살창을 달았고, 측면에는 외여닫이 세살창을 달았다.
대청 배면에 계단을 두어 이곳으로 진입하는 배면 진입이다. 누 하부에는 장석주(長石柱)를 세워 비바람에 피해가 없도록 했다. 구조는 퇴칸에만 원주를 세우고 나머지에는 방주를 세웠는데 퇴칸의 기둥 상부는 허접한 초익공으로 처리해 삼량가의 가구를 완성했다. 지붕은 겹처마의 팔작지붕으로 한식기와와 일식기와를 혼용해 이엇다.
[현황]
우계정은 정자 우측으로는 관리사가 있으며, 정자 기단은 시멘트로 마감되어 있다. 지붕에는 근대 이후에 제작된 막새로 마감되어 있다. 현재 대구 서씨 봉사공파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정자 앞은 금호강변의 벼랑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이 바위는 탕건바위로 알려진 곳으로 전설이 전해진다. 정자 뒤로는 유성타워맨션 등 아파트 단지가 있고 앞은 금호강이 흐르고 있다.
[의의와 평가]
우계정은 이건되면서 19세기 말 건립 당시의 모습과 많이 변모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겹처마로 구성한 지붕과 허접한 익공 그리고 누하부의 팔각 장석주는 현대의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으로 건축적 가치는 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