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222 |
---|---|
한자 | 鄭四震 |
이칭/별칭 | 군섭(君燮),수암(守庵)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전민욱 |
[정의]
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문인.
[가계]
정사진(鄭四震)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군섭(君燮), 호는 수암(守庵)이며, 1567년(명종 22) 8월 20일에 현재의 경산시(慶山市) 자인면(慈仁面)에서 태어났고, 1616년(광해군 8) 6월 21일에 병으로 50세에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참봉(參奉) 정문영(鄭聞英), 증조는 훈도(訓導) 정세홍(鄭世弘), 조부는 생원(生員) 정거(鄭琚)이다. 아버지는 거창 현감(居昌縣監) 정삼변(鄭三變)이며, 어머니는 숙인(淑人) 성주 이씨(星州李氏)로 이기(李璣)의 딸이다. 부인은 월성 김씨(月城金氏)로 장사랑(將仕郞) 군자감 참봉(軍資監參奉) 김한(金澣)의 딸이며, 슬하에 3남 6녀를 두니 아들은 정전(鄭壂)·정학(鄭壆)·정○(鄭○)이며, 사위는 선산인(善山人) 박이경(朴㶊慶)·박회(朴繪)·박서(朴㥠), 광주인(廣州人) 안명한(安鳴漢), 경주인(慶州人) 최동량(崔東亮)·박성(朴垶)이다.·
[활동 사항]
정사진은 1591년(선조 24)에 향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을 접고 학문 연구에 전념하였다. 임진왜란 중에 거창에서 아버지 상을 당하였을 때 매우 어수선하였으나 장례를 치르고 제사를 거르지 않았다.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니 여헌이 동봉(東峯) 권극립(權克立)과 윤암(綸庵) 손우남(孫宇男), 형 우헌(愚軒) 정사상(鄭四象)과 더불어 “사군자(四君子)는 나와 도의(道義)의 계우(契友)”라며 사우로 지명하였으니 현재 여헌과 함께 입암서원(立巖書院)에 제향되었다.
1606년(선조 39)에 왕자사부(王子師傅)를 제수하고, 1611년(광해군 3)에 세마시직(洗馬侍直)을 내렸으나 모두 부임하지 않았다.
[학문과 저술]
목판본인 4권 2책의 『수암집(守庵集)』이 있다.
[묘소]
정사진의 묘소는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安康邑) 대동리(大洞里)에 있으며, 장현광(張顯光)의 갈문(碣文)이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죽장면 입암리의 입암서원(立巖書院)과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安康邑) 대동리(大洞里)의 직천서원(稷川書院)에서 제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