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2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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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應時 |
이칭/별칭 | 경기(景期),모정(茅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전민욱 |
출생 시기/일시 | 1522년 - 김응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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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590년 2월 18일 - 김응시 사망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화남면 삼창리 한천 |
묘소|단소 | 김응시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공덕리 |
사당|배향지 | 모암정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삼창리 |
성격 | 문인 |
성별 | 남 |
본관 | 경주 |
[정의]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개설]
경주 김씨(慶州金氏)는 김알지(金閼智)를 시조로 하고 경순왕(敬順王)의 셋째 아들 영분공(永芬公) 김명종(金鳴鍾)을 1세조(世祖)로 하고 있다. 김응시(金應時)는 경주 김씨 18세(世) 김을초(金乙軺)를 파조(派祖)로 하는 규정공파(糾正公派)의 후손이며, 김을초의 장남 호연당(浩然堂) 김자양(金自養)이 김응시(金應時)의 고조로 영천 입향조이다.
[가계]
김응시의 본관은 경주이고, 자는 경기(景期), 호는 모정(茅亭)이다. 김응시의 증조는 청풍부사(淸風府使) 김계돈(金季敦), 조부는 직장(直長) 김장미(金長美)이다. 부친은 성균진사(成均進士) 영릉참봉(英陵參奉) 김준(金濬)이며, 모친은 한양 조씨(漢陽 趙氏)로 참봉(參奉) 조문경(趙文瓊)의 딸이다.
부인은 의인(宜人) 월성 이씨(月城 李氏)로 이적(李迪)의 딸이며,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다. 아들은 김낙(金洛)과 증(贈) 공조참판(工曹參判) 김익(金瀷)이며, 사위는 축산인(竺山人) 전웅(全雄)과 달성인(達城人) 서우평(徐禹平)이다.
[활동 사항]
김응시(金應時)는 1522년(중종 17)에 태어나 1590년(선조 23) 2월 18일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김응시는 학문이 깊고 행실이 두터웠으며, 형 김응생(金應生)이 자양서당(紫陽書堂)을 세울 때 크게 도왔다. 신녕(新寧)의 산수의 아름다움을 사랑하여 만년에 한천(漢川)으로 이주하여 모암정(茅巖亭)을 지어 자연을 즐겼다.
당시 신녕현감(新寧縣監)으로 와있던 황준량(黃俊良)과 더불어 백학서당(白鶴書堂)을 창건하였으며, 만년에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경기전 참봉(慶箕殿參奉)을 지냈다.
[묘소]
김응시의 묘소는 영천시 화북면(華北面) 공덕리(公德里) 탑곡(塔谷)에 있으며, 진성(眞城) 이가원(李家源)의 갈문(碣文)이 있다.
[상훈과 추모]
영천시 화남면(華南面) 삼창리(三昌里) 한천(漢川)마을에 모암정(茅巖亭)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