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2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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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時衎 |
이칭/별칭 | 열지(悅之),취성당(醉醒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민욱 |
[정의]
조선 중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가계]
정시간(鄭時衎)의 본관은 영일. 자는 열지(悅之), 호는 취성당(醉醒堂)이며, 1635년(인조 13) 5월 17일에 태어나 1690년(숙종 16) 12월 12일에 5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창릉참봉(昌陵參奉) 정윤량(鄭允良)이며, 증조는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강의(剛義)라는 시호를 받은 정세아(鄭世雅), 조부는 어모장군(禦侮將軍) 용양위부사과(龍驤衛副司果) 정안번(鄭安藩)이다.
아버지는 진주목사(晋州牧使) 정호인(鄭好仁)이며, 어머니는 월성 손씨(月城孫氏)로 손로(孫魯)의 딸이다. 부인은 밀양 박씨(密陽朴氏)로 박율(朴慄)의 딸이며, 슬하에 7남 2녀를 두니 아들은 정석기(鄭碩基)·정석지(鄭碩址)·정석재(鄭碩載)·정석견(鄭碩堅)·정석채(鄭碩埰)·정석규(鄭碩逵)·정석배(鄭碩培)이며, 사위는 팔거인(八莒人) 도만달(都萬達)과 창녕인(昌寧人) 조선경(曺善慶)이다.
[활동 사항]
정시간은 어릴 때부터 준걸하고 영특하였다. 아버지가 임소(任所)에서 돌아가시자 슬픔을 참지 못해 기절하였으나 깨어나서는 장례를 검소하게 치렀고, 후에는 어머니에게 정성으로 효도를 하였다.
1669년(현종 10)에 성균생원(成均生員)이 되었으나 자양(紫陽)의 구계산(龜溪山)에 은거하여 학문에 전념하였다. 그는 술을 무척 좋아하였는데, 아무리 많이 마셔도 절대 취하지 않았으므로 당호를 ‘취성당(醉醒堂)’이라 하였다.
[학문과 저술]
목판본인 2권 1책의 『취성당일고(醉醒堂逸稿)』가 있다.
[묘소]
정시간의 묘소는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인동리의 양좌산(良佐山)에 있으며, 족손(族孫) 정규일(鄭揆一)의 갈문(碣文)이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紫陽面) 신방리(新坊里)에 취성당(醉醒堂)이 있으며, 묘소 아래 묘재(墓齋)인 인동재(仁洞齋)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