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3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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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丁大杰 |
이칭/별칭 | 주서(周瑞),경와(敬窩)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대천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최미애 |
출생 시기/일시 | 1830년 - 정대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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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857년 5월 21일 - 정대걸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05년 8월 - 정대걸 정효각 건립 |
묘소|단소 | 정대걸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대기동 문동곡 |
사당|배향지 | 정효각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대천리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나주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가계]
정대걸의 본관은 나주, 자는 주서(周瑞), 호는 경와(敬窩)이며, 1830년(순조 30)에 태어나 1857년 5월 21일 2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정인태(丁麟泰)이며, 증조는 정덕열(丁德烈), 조부는 정사상(丁師尙), 아버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부호군(副護軍) 정성교(丁成敎)이며, 어머니는 숙부인(淑夫人) 제주 고씨(濟州高氏)로 가선대부(嘉善大夫) 고봉재(高奉才)의 딸이다.
부인은 숙부인(淑夫人) 의성 김씨(義城金氏)로 김달손(金達遜)의 딸이며, 슬하에 2남 1녀를 두니 아들은 통정대부(通政大夫) 정희섭(丁僖燮)과 정만섭(丁晩燮), 사위는 경주인(慶州人) 이규집(李圭執)이다.
[활동 사항]
정대걸은 어릴 때부터 지성으로 부모를 모셨고 어머니가 속병으로 오래 동안 앓고 있을 때 회를 잡수고자 원하시니 냇가에 나가 얼음을 깨고 낚시를 드리우고 눈물로써 기도를 드리니 고기가 잡혔다고 한다. 이는 공의 효성에 감동하여 하늘이 내린 선물일 것이다.
또한 어머니가 몹시 귀여워하던 두 살짜리 딸아이가 경기로 갑자기 죽자 어머니가 너무나 슬퍼하는 지라 아이를 어루만지며,“네가 살아나지 않으면 우리 어머니는 누구를 귀여워하시며 살겠느냐?”하니 아이가 갑자기 소생하여 어머니를 기쁘게 하였다고 한다.
[묘소]
정대걸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대기리 문동곡(問童谷) 해좌(亥坐)에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대천리에 1905년 8월 나라의 명으로 정효각을 세우고, 이듬해 군수 신승휴(申勝休)가 비문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