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325 |
---|---|
한자 | 權穆 |
이칭/별칭 | 심중(深仲)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최미애 |
[정의]
조선 중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가계]
권목(權穆)의 본관은 안동. 자는 심중(深仲)으로 1643년 5월 21일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죽장면 입암리에서 태어났다. 고조는 통훈랑(通訓郞) 울산훈도(蔚山訓導) 권해(權楷)이며, 증조는 증(贈) 공조참판(工曹參判) 권극립(權克立), 조부는 수직(壽職) 절충호군(折衝護軍) 권봉(權崶)이다. 권목의 아버지는 권구민(權求敏), 어머니는 일직 손씨(一直孫氏) 진사(進士) 손항(孫沆)의 딸이다.
부인은 월성 이씨(月城李氏)로 이익길(李益吉)의 딸이며, 슬하에 2남 3녀를 두니 아들은 권득상(權得常)·권득주(權得冑)이며, 사위는 민응규(閔應奎)·이현징(李玄徵)·서지한(徐至澣)이다.
[활동 사항]
권목은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어머니를 봉양함에 한 치의 소홀함도 없었다. 맛있는 과일과 반찬이 어머니의 입맛에 맞는 것이 있으면 조심스럽게 싸와서 어머니에게 드리니 육적회귤(陸績懷橘)의 고사를 실천한 것이다.
나이 64세에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 예의에 어긋남이 없이 행하였으며, 1708년 집안에 갑자기 불이 나 불길이 가묘(家廟)와 영악(靈幄)[빈소에 쳐 둔 장막]에 옮겨 붙자 권목은 열기와 불꽃을 무릅쓰고 사당으로 뛰어 들어가 아버지의 신주를 받들고 나온 다음 다시 영악으로 뛰어가 어머니의 신주를 안았는데 미처 나오지 못하고 불에 타 죽었다.
집안사람들이 불을 끄고 시신을 찾으니 양 소매를 나란히 하여 안고 있는데, 옷은 모두 타버렸지만 나무로 만든 신주(神主)는 온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권목의 이야기를 들은 군수 이만직(李萬稷)이 경탄하여 즉시 조정에 보고하고 봉록을 털어 초상을 도왔으며, 안렴사(按廉使) 이태좌(李台佐) 또한 장계를 올려 1724년에 정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