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4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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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皇甫覲 |
이칭/별칭 | 원직(元直),황보명용(皇甫名容)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조인호 |
출생 시기/일시 | 1882년 11월 17일 - 황보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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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6년 3월 - 황보근 산남의진에 참가하여 영천·강구·흥해 등지에서 활약함 |
몰년 시기/일시 | 1963년 5월 3일 - 황보근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황보근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2003년 10월 - 황보근 추모비 건립 |
출생지 | 황보근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구전리 |
활동지 | 황보근 - 경상북도 일원[영천, 영일, 청송 등] |
소재지 | 추모비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오동공원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본관 | 영천 |
[정의]
한말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의병.
[가계]
황보근(皇甫覲)의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원직(元直)이며, 초명은 황보명용(皇甫名容)이다. 1882년 지금의 영천시 화남면 구전리에서 태어났으며 1963년 세상을 떠났다.
[활동 사항]
황보근(皇甫覲)은 고종황제의 밀명을 받은 정환직(鄭煥直)과 그의 아들 정용기(鄭鏞基)가 이한구(李韓久)·정순기(鄭純基)·손영각(孫永珏) 등과 더불어 1906년 3월 산남의진(山南義陣)을 결성하자 황보근은 권규섭(權奎燮)·성낙희(成樂熙)·성낙호(成樂皥)·이하수(李河秀)·양석용(梁錫容) 등과 함께 신녕 지역을 맡아 활동하였다.
그 후 영천·영덕·강구·흥해 등지에서 수차례 일본군과의 교전에 참전해 혁혁한 공을 세운 황보근은 1907년 8월 정용기 대장을 비롯한 산남의진 본진 100여명과 함께 죽장의 매현으로 들어가 9월 초 강릉으로 북상을 준비했다.
그러나 일본군 영천수비대의 역습을 받고 입암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다가 부상을 입고 귀향하여 치료하던 중 체포되었다. 황보근은 17차례에 걸쳐 고문을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였으며 석방된 후 은신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으며, 2003년 10월 영천항일운동선양사업회에서 영천시 화북면 오동공원에 추모비를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