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4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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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允洙 |
이칭/별칭 | 연정(燕亭)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전민욱 |
출생 시기/일시 | 1917년 9월 25일 - 임윤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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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81년 - 임윤수 대전시립연정국악원 초대원장에 취임 |
활동 시기/일시 | 1997년 - 임윤수 충남연정국악원 초대원장에 취임 |
몰년 시기/일시 | 2004년 8월 11일 - 임윤수 사망 |
출생지 | 임윤수 출생지 -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성리 384 |
묘소 | 임윤수 묘소 -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금암리 대전공원묘원 |
성격 | 예술인 |
성별 | 남 |
본관 | 나주 |
호 | 연정 |
대표 경력 | 대전시립연정국악원 초대원장|충남연정국악원 초대원장 |
[정의]
현대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예술인.
[가계]
임윤수(林允洙)의 본관은 나주. 호는 연정(燕亭)이며, 1917년 9월 25일 경북 영천시 신녕면 화성리 384에서 태어나 2004년 8월 11일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임재근(林在根)이며, 어머니는 손봉순(孫鳳順)으로 손진기(孫晋琪)의 딸이다. 부인은 김순이(金淳伊)이며 슬하에 1남 2녀를 두니 아들은 임동지(林東至), 딸은 임순자(林順子)와 임녹주(林綠珠)이다.
[활동 사항]
임윤수는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초등학교를 17회로 졸업하고, 경주 율객 최윤(崔潤)에게서 한학을, 신은휴(申恩休)에게 거문고를 수학하였으며, 광복 전에는 경남 사천에 있는 다솔사에서 효당(曉堂) 최범술(崔凡述)을 만나고,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 일석(逸石) 변영태(卞榮泰), 산강재(山康齋) 변영만(卞榮晩) 등의 영향으로 구국청년단 활동을 하였다.
정치보다 위에 있는 것이 음악이라는 ‘예악 사상’처럼 임윤수는 “나라 음악을 바로잡아 좋은 음악이 세상에 퍼지면 사회가 좋아지고, 사회가 좋아지면 그 사회의 음악이 훌륭하다. 그래서 그 사회의 음악을 보면 정치를 알 수 있다”고 하였다.
1981년에는 평생 동안 수집한 국악기 및 국악 관련 자료 2만 여점을 대전광역시에 기증하여 대전시립연정국악원을 설립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기증 자료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악학궤범』과 국내 유일본인 『졸장만록』, 500년 이상 된 거문고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임윤수는 생전에 국악의 조기 교육 필요성을 역설하였고 초등학교에 국악기를 제공하며 국악 발전에 힘썼다. 또한 대학에 국악과 설립을 적극 추진하는 등 국악 저변 확대에 커다란 공로를 세우고, 서울대학교·이화여자대학교 강사를 지냈다.
한국시조연합 고문,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충남지회 회장, 중도일보 기자·기획위원을 거쳐 1981년 대전시립연정국악원 초대원장, 1997년 충남연정국악원 초대원장을 맡아 국악 보존과 보급하였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는 『연정국악해설집』, 『연정단소보』, 『연정대금보』, 『연정시조보』, 『연정가야금보』, 『연정현금보』, 『연정무용보』, 『연정앙금보』 등이 있다.
[묘소]
임윤수의 묘소는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금암리 대전공원묘원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전광역시와 충청남도의 문화상을 비롯해서 1995년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수여 받았으며, 2001년 대전시민대상 개척장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