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2072 |
---|---|
한자 | 慈川里同舍 |
이칭/별칭 | 곳집,상여집,상엿집,행상집,생이집,고새이집,고생이집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찬영 |
건립 시기/일시 | 1891년 2월 25일 - 자천리 동사 건립 |
---|---|
이전 시기/일시 | 2009년 3월 15일 - 자천리 동사 영천에서 경산으로 이전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0년 8월 30일 - 자천리 동사, 경산 상엿집 및 관련유물이란 이름으로, 중요민속문화재 제266호 지정 |
현 소재지 | 영천 자천리 동사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 1533 |
원소재지 | 경산 상엿집 및 관련 관련문서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대학리 산 144-10 |
성격 | 건물|상여집 |
양식 | 소로수장 장혀집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칸 |
소유자 | 조원경 |
관리자 | 국학연구 대구·경북지부 |
문화재 지정 번호 | 국가민속문화재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 산 1533번지에 있었던 마을 상엿집.
[개설]
상엿집은 지역에 따라 다양한 명칭으로 나타나는데, 경상북도 북부 지역에는 ‘곳집’, ‘상여집’, ‘상엿집’이라 부르고, 영천 자천리와 그 주변 마을은 ‘행상집’, ‘생이집’, ‘고새이집’, ‘고생이집’ 등 다양하게 부르고 있다. 상엿집은 마을 공동의 상여나 그 제구를 보관하는 건물로 주로 마을 외딴 산 밑에 있었다. 자천리 동사[상엿집]는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 산 1533번지에 마을 상여와 부속품을 보관하기 위해 1891년[상량문] 건립된 건물이다.
[위치]
경상북도 화북면 자천리[1·2·3리]는 영천시 북쪽에 있는 화북면소재지 마을이다. 상엿집은 각 마을마다 있었는데, 자천 1리 상엿집은 현 마을회관 건축 때 헐어 버렸고, 자천 2리 상엿집은 자천 1리와 2리의 경계인 자천리 1533번지의 복개 마을길인 자천3길 변에 있었고, 자천 3리 상엿집은 면내 농협 맞은편에 있었으나 마을사람이 매입해 집으로 개조해 사용하고 있다. 자천리 상엿집은 자천 2리의 상엿집을 가리킨다.
[변천]
자천리 상엿집은 대들보 밑 장여 바닥의 상량문에 따르면, 1891년 2월 25일 건립되었다. 그러나 주민 말로는 3번 정도 옮겼다고 하며, 내부에서 발견된 관련 문서에 상량 이전의 기록이 있어 건립연대는 더 앞선다고 할 수 있다.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 1533번지에 있던 상엿집은 2009년 3월 15일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대학리 산 144-10번지로 이전했다. 이전하게 된 이유는 자천리 주민이 예전 외딴 곳에 있던 상엿집이 마을의 확장으로 중심지가 되었고, 오랫동안 상여 등을 사용하지 않음에 따라 마을 공동의 상엿집을 철거하려고 계획했다. 그 뒤 현 소유자인 조원경이 우연히 이 사실을 알고 구입하여 현 위치로 이전한 것이다. 그 뒤 상엿집 1동, 상여 2습, 관련 문헌자료 14점 등이 건축 및 민속학적으로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 2010년 8월 30일 중요민속문화재 제266호로 지정되었다.
상엿집은 한국 전통의 상례 문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나 사회 구조의 변화로 대부분 소멸된 상태이다. 외딴 곳에 있던 자천리 동사도 마을 확장과 전통적 상례 문화가 사라짐에 따라 지역민의 이해 관계가 얽혀 다른 지역으로 매매되어 이전되는 변화를 겪었다. 다행히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체계적인 보존·관리가 이루어질 수 있게 됨이 다행이지만 다른 지역에 보존되고 있음은 아쉽다.
[형태]
자천리 상엿집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에 평면은 상여를 보관하는 2통 칸과 상여 부속품 및 제구를 보관하는 1칸 등 2개의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T자형 마을길의 모서리에 있는 상엿집은 북쪽 마을길을 배후로 삼고 남동향으로 배치되었다.
건물은 자연석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우협칸 전면에만 네모 기둥을 세우고 나머지는 두리 기둥을 세워 기단 상면에 바닥을 높여 누마루처럼 꾸미고, 창호와 판벽으로 구체부를 구성했다. 그리고 전면을 제외한 삼면의 고멕이에는 토석조로 막음하였다.
창호는 정면 어칸 및 좌협칸에 각기 상부에 통둔테, 하부에 선둔테를 설치해 판벽에 여닫이 띠장널문을 달아 출입하도록 했고, 우협칸은 어칸에서 들어 갈 수 있도록 판벽에 쌍여닫이 띠장널문으로 설치하여 실을 구분하였다. 어칸 및 좌협칸의 좌측 면과 후면 벽체는 하부에 판벽, 상부는 살창을 처리했다. 실내 바닥은 어칸 및 좌협칸은 우물 마루를 깔았으나 우협칸은 장마루이다. 장마루 역시 근대 장마루와는 달리 자귀로 치목한 흔적이 선명히 남아 있다.
주상부는 우주의 경우에 창방을 걸고 주두를 올리고 하부에 초각된 보아지를 설치한 반면, 평주는 주두를 생략하고 초각 없는 보아지를 직교로 결구시켰다. 각 주칸의 창방과 처마도리 받침 장혀사이에는 소로 3개씩을 끼웠다. 상부가구는 3량 가이다. 약간 만곡된 대량 위에 화반대공, 제형판대공의 2종류로 종도리를 받쳤다. 지붕은 홑처마 맞배지붕에 한식 기와를 이었고, 용마루 양단을 수키와를 세워 머거불로 장식했다. 건물 배면에는 상여에 사용되는 방틀을 보관하기 위한 거치대가 설치되어 있다.
[현황]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 1533번지에 있던 자천리 상엿집은 현 소유자인 조원경이 구입해 2009년 3월 15일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대학리 산 144-10번지로 이전해 복원했다. 이전 후에 상엿집 1동, 상여 2습, 관련 문헌자료 14점 등이 건축 및 민속학적으로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 ‘경산 상엿집 및 관련문서’란 이름으로 2010년 8월 30일 중요민속문화재 제266호로 지정되어 보존·관리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자천리 상엿집은 1891년 건립 이후 2009년 3월 타 지역으로 이전되는 변화를 겪었지만 누마루 형식의 목조, 맞배 기와집 형식은 전국적으로 산재하는 보편적인 상엿집과는 건축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아울러 건립 전·후시기의 상엿계 운영에 관한 구체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문서와 마을 공동체의 풍속, 촌락의 사회 경제 활동 등 당시 마을공동체의 현황을 엿볼 수 있는 동중문서(洞中文書)들이 함께 발견됨에 따라 건축학적·민속학적·학술적 가치 등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