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2172 |
---|---|
한자 | 蓼島-山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집필자 | 김지숙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82년 - 영천시에서 발행한 『永川의 傳說』에 「요도(蓼島)와 무리미산」이라는 제목으로 수록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6년 - 영천시에서 발간한 『충효의 고장』에 「요도와 무리미산」으로 수록 |
관련 지명 | 도동 - 경상북도 영천시 도동 |
관련 지명 | 요도/무리미산 - 경상북도 영천시 도동 |
관련 지명 | 동강포(桐江浦) - 경상북도 영천시 도동 |
성격 | 설화|지명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구씨|구씨의 고명딸|청년|고을 사또 |
모티프 유형 | 가난|청혼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도동에 위치한 요도와 무리미산에 전해 오는 이야기
[개설]
「요도(蓼島)와 무리미산」은 상층민의 하층민에 대한 억압상이 그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하층민은 억압에 굴복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나 이 이야기에서는 하층민의 굴복하지 않는 곧은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1982년 영천시가 발행한 『영천(永川)의 전설』에 「요도(蓼島)와 무리미산」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고, 2006년 영천시가 발간한 『충효의 고장』에도 같은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내용]
영천에 구(具)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꽃처럼 예쁜 고명딸이 있었다. 당시의 풍습대로 그녀는 어릴 때 이미 인근의 건강한 청년과 정혼을 하였지만, 양가 모두 너무도 가난하여 정식으로 예식을 올리지 못하고 있는 처지였다.
젊은 청년과 규수는 안타깝게 그리워하면서도 만나지 못하고 가끔씩 먼발치에서 서로를 훔쳐보며 속으로 부모님들이 야속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저 혼례라도 올려 주면 두 사람이 합심하여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차마 자신들의 심정을 부모에게 말할 수 없었다. 남녀가 유별하고 도덕을 생명처럼 생각하는 부모님으로부터 무슨 날벼락이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구씨 처녀의 미모를 눈여겨 본 고을 사또가 관속을 앞세워 청혼을 해왔다. 가난한 살림이므로 논마지기라도 마련해 주면 쾌히 응낙하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또 혼자만의 생각일 뿐 당사자인 구씨는 한 마디로 거절을 하였다. 이미 정혼한 처지이므로 인륜을 져버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또는 무척이나 불쾌했고 감히 자기의 청을 거역하는 구씨를 못된 놈이라고 생각했다.
본디 성질이 난폭하여 걸핏하면 백성들을 중벌로 다스렸기에 모두가 두려워하는 사또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구씨는 영문도 모른 채 관아로 잡혀가 흠씬 매를 맞았다. 죄명은 역모를 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을 사람 누구도 그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남의 집 품팔이로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얼굴 한 번 찌푸리지 않고 착하게 살아가는 구씨가 역모를 했다는 것은 당치 않는 말이었다.
사또는 피투성이가 되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져 있는 구씨에게 “네 딸을 내게 보낸다면 죄를 불문에 부치고 식구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전답을 줄 것이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국법에 따라 참수하겠다”며 회유를 하였다.
그러나 구씨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가난한 형편에 전답을 준다니 큰 도움이 되겠지만 그렇다고 늙고 욕심 낳은 사또에게 어여쁜 딸을 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딸은 이미 정혼한 처지이므로 상대를 배신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사또는 자신의 요구를 한마디로 거절하는 구씨의 심경이 쉽게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하잘 것 없는 농부라지만 그를 없앴다는 사실이 조정에 알려지기라도 하면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사령 나졸들이 수군거려 이미 알 사람은 모두 알아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한 형편이라 사또는 구씨를 요도(蓼島)로 유배시키도록 했다.
요도는 남천과 북천 그리고 북안 쪽에서 흘러드는 호계천이 합류를 하는 도동에 있는 작은 삼각주를 가리킨다. 지금은 제방을 쌓아 마을과 연결하여 과수원으로 변하였지만, 옛날에 이곳은 영천 지방에서 중죄를 지은 사람을 가두어 두는 유배지였다.
사람이라고는 그림자도 없고 보이는 것은 푸른 강물뿐이고, 이따금 바람만 불어오는 외딴 섬에 갇힌 구씨는 고통 속에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모진 매를 맞아 몸이 뷸편한데다가 먹을 것도 없으니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한편 정혼한 딸과 청년은 멀리 강 건너 유봉산에 올라 요도를 바라보며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들은 끼니도 거르면서 아버지가 섬에서 풀려 나오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그러다가 밤이 되어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면 딸과 청년은 목이 터져라 아버지를 불렀다. 그 울부짖음은 메아리가 되어 온 산을 더듬고 벌판을 거슬러 인근 사람들의 가슴을 서럽게 적시었다.
죽음에 가까워진 아버지는 보일 듯 말 듯 딸이 있는 산마루를 쳐다보며 연신 손짓을 했다. 이제 자신은 살아날 가망이 없으니 너희라도 부디 돌아가 행복하게 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두 남녀에게 그러한 손짓이 보일 리 없었다. 결국 구씨는 허공을 휘젓다가 생을 하직하고 말았다.
그날 밤 난데없이 구름이 몰려오고 뇌성이 천지를 진동하는 괴변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억울하게 죽은 구씨의 사정을 안 하늘이 노하였다고 수군거렸다. 밤새도록 몰아친 비바람은 이튿날 먼동이 틀 무렵에야 개었다.
그런데 정말 괴이한 일은 밤사이에 벌어졌다. 구씨의 시신은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유봉산에서 아버지를 목 놓아 부르던 딸과 청년은 산 아래로 내려와 돌이 되어 나란히 서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또는 벼락을 맞아 죽고 말았다.
그러한 일이 있은 후 유봉산은 구씨가 딸을 그리워하며 죽는 날까지 쳐다보았다고 해서 ‘무리미산’이라고 부르며, 두 남녀가 돌이 된 산 아래 마을은 ‘입석동’이라 불렀다.
또한 구씨의 원혼이 비가 되었다고 믿어 가뭄이 닥치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며, 강을 사이에 두고 애절하게 부르던 부녀의 주고받은 소리가 오동나무로 만든 가야금 소리처럼 애절하였다고 해서 그 지역을 ‘동강포(桐江浦)’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요도(蓼島)와 무리미산」의 주요 모티프는 ‘가난’과 ‘청혼’이다. 가난한 구씨는 딸을 가난한 집 청년과 정혼시킨다. 하지만 고을 사또가 권력을 이용하여 구씨의 딸에게 청혼을 한다. 하지만 구씨는 끝까지 사또의 청혼을 거절한다. 청혼의 거절로 구씨는 요도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사또로 대표되는 지배층은 구씨로 대표되는 가난하고 힘없는 피지배층을 억압한다. 하지만 지배층의 억압에 굴하지 않고 곧은 의지를 보여주는 구씨를 통해 전승집단의 저항 의식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