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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산의 모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2173
한자 思母山-母情
이칭/별칭 사모산의 내력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집필자 김지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87년 5월 19일 - 「사모산의 모정」 정동봉에게서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1년 - 「사모산의 모정」, 『영천(永川)의 전설』에「思母山의 내력」으로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6년 - 「사모산의 모정」, 『충효의 고장』에 「사모산의 모정」으로 수록
관련 지명 쌍계동 - 경상북도 영천시 쌍계동 지도보기
관련 지명 사모산 - 경상북도 영천시 쌍계동 뒤편지도보기
채록지 사모산의 모정 - 경상북도 영천군 대전동 433번지 지도보기
성격 설화|지명전설
주요 등장 인물 조 군수|조 낭자|도령
모티프 유형 저승|사랑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쌍계동 뒤편에 자리한 사모산에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개설]

「사모산(思母山)의 모정(母情)」은 저승의 도령과 이승의 군수 딸이 이루지 못하는 사랑을 하면서 생긴 ‘사모산’ 이름의 유래에 관한 지명 전설이다.

[채록/수집 상황]

대구직할시와 경북대학교가 발간한 『영천의 전설』에서는 경상북도 영천군 대전동 433번지에 거주하는 정동봉[남, 56세]에게서 채록한 내용을 「사모산의 내력」이라는 제목으로 수록했으며, 영천시가 발간한 『충효의 고장』에는 「사모산의 모정」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내용]

영천시 북천 건너 쌍계동 뒤편에는 그리 높지 않은 3개의 산봉우리가 있다. 그 중 금호 쪽으로 있는 2개의 산봉우리는 옛날 통신 수단으로 사용하였던 봉화산이고, 나머지 한 봉우리는 한 여인이 애틋한 사연을 간직한 ‘사모산’이다. 지금도 정상에는 이러한 사연을 보여주듯 무덤이 남아 있다.

조선 중엽, 조씨 성을 가진 사람이 영천 군수로 부임하여 왔다. 그는 서울에 살던 사람으로 줄곧 내직에만 근무하다가 처음으로 외직을 맡게 된 것이다. 요즘도 그러하듯이 잠깐 근무하다가 다른 곳으로 이주하여야 할 공직 생활에 멀리 서울에 있는 가솔을 모두 데리고 부임하려니 번거롭기도 하여 딸만 동행하고 부임을 하였다.

조 군수는 품위 있고 단정한 미남이었으며, 딸 조 낭자 역시 아버지를 닮아 마치 깎아놓은 불상처럼 아름다우면서도 신비스러웠다.

어느 날 조 낭자가 멀리 계신 어머니를 그리며 천천히 연당 뜰을 거닐고 있었다. 그날은 마침 시중을 들어주던 하녀도 없이 혼자뿐이었다. 그런데 그리 넓지 않은 연못 저쪽에서 물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더니 한 건장한 도령이 나타나 앞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별당이라 외부인이 침범하지 못하는 곳에 남자가 침범했다는 것에 조 낭자는 소스라치게 놀라 기어들어가는 음성으로 “누구시오?”라고 물었다.

도령은 자신은 옛날 이 집에 살던 사람으로 낭자의 아름다움에 끌려 자신도 모르게 찾아온 것이라고 하였다. 실례를 범한 사람답지 않게 도령의 음성은 낭랑하였고 행동도 단정하였으며, 하얀 달빛을 받은 때문인지 얼굴은 수정처럼 맑고 깨끗하였다.

낭자는 “선비의 몸으로 별당까지 숨어 들어온 것은 체면이 아니니 돌아가십시오”라고 말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친근감을 느끼고 있었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오래도록 그 자리에 서있었다. 전류처럼 마음에서 마음으로 연결된 그들에게는 달리 대화가 필요 없었다.

그날 이후 밤마다 별당 후미진 곳에서는 도란도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 낭자와 도령이 사랑을 속삭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 낭자는 도령 어디 사는 누구인지, 이름도 성도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물어 보지도 않았고 알고 싶은 마음도 없을 만큼 사랑스러웠던 것이다.

그런데 도령이 찾아오는 시간과 돌아가는 시간이 그토록 정확할 수가 없었다. 자정이 되면 그림자처럼 나타났다가 첫닭이 울기 전에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방으로 높은 담이 쌓여있고 순라꾼들이 시간을 다투어 경비를 하는데 어떻게 찾아오는지 그것도 몰랐다.

하지만 그 역시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날마다 만나면서도 할 이야기가 많았고, 설령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마냥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밤이었다. 다른 때와는 달리 도령은 굳은 얼굴로 나타났다. 그리고 나직하게 조 낭자를 부른 후에, 만난 지 이미 오래되었지만 낭자는 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수 년 전에 이 고을을 다스리던 군수의 아들인데, 불행하게도 몹쓸 병에 걸려 죽고 말았소. 나는 사람이 아닌 객귀로 방황하다가 낭자의 미색을 보고 반했다오. 처음에는 장난기로 시작한 것이지만 이제는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소”라고 하였다.

그리고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저승의 몸과 이승의 몸이 어떻게 연분이 맺어지겠소? 그 동안 저의 부질없었던 장난을 용서하고 행복하게 살도록 하시오”라는 말을 하고 눈물까지 뚝뚝 흘리며 홀연히 사라졌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지만 조 낭자는 무섭다기보다는 다시는 도령을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엄연한 현실이고 보니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도리가 없고 땅을 치며 통곡해도 소용이 없었다.

규중의 처녀가 외간 남자와 밤마다 속삭였다면 당시의 사회도덕으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었으며 만약 알려진다면 백 번 죽어도 가문의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었다. 그러기에 속으로 끙끙 앓으며 혼자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조 낭자는 병을 얻어 앓아눕고 말았다. 눈을 감으면 꿈처럼 나타나는 도령의 다감한 모습을 잊으려고 애를 쓰면 더욱 선명하게 아롱거리는 것이었다.

조 군수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멀리 타향에서 소중한 딸이 중병을 앓고 있고 부인도 가까이 없는 처지라 마땅히 의논할 사람도 없었다. 그저 의원을 불러 백방으로 처방하였으나 뚜렷한 원인도 알 수 없고 도무지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조 낭자의 병은 더욱 깊어지고 이제는 도저히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자 그녀는 모든 사실을 아버지에게 털어 놓았다. 연유를 알게 된 아버지는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며 ‘신의 장난이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며 딸을 위로하며 지금이라도 훌훌 털어버리고 마음 크게 먹어야 한다고 손을 꼭 쥐었다.

그러나 조 낭자는 “저의 마음이 허실하여 정결함을 잊은 듯하니 때는 이미 늦은 것 같습니다. 제가 죽으면 어머님이 계시는 한양으로 가는 길이 훤히 보이는 산봉우리에 묻어 주세요”라는 말을 남기고는 며칠 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조 군수는 유언에 따라 딸을 영천 서문통에서 화산을 거쳐 서울로 가는 당시 국도가 멀리까지 아련하게 내려다보이는 봉화산 옆에 고이 묻어 주었다. 그리고 날마다 관아 난간에 걸터앉아 딸이 묻힌 봉화산 쪽을 쳐다보게 되었다.

그때부터 이 산을 어머니를 사모하는 조 낭자의 무덤이 있었다고 하여 ‘사모산(思母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사모산의 모정」의 주요 모티프는 저승 도령과 이승 낭자의 사랑이다. 그들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들이 각각 속해 있는 저승과 이승은 결합될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이며, 그래서 더욱 애절하고 간절하다.

전승자 집단은 사모산 이름의 유래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중심으로 그려내었는데, 사모산의 존재를 통해 진실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애잔함을 느끼게 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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