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22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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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永川新里里靑銅器時代住居址遺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신리리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권혜인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5년 2월 28일 - 영천 신리리 청동기 시대 주거지 유적 경북과학대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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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5년 4월 14일 - 영천 신리리 청동기 시대 주거지 유적 발굴 조사에서 청동기 시대의 주거지 6동, 수혈유구 3기, 구상유구 2기, 원삼국 시대의 토광묘1기 확인. 유물 68점 출토 |
소재지 | 신리리유적 -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신리리 산3-6번지 일대 |
성격 | 유적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신리리에 있었던 유적.
[위치]
영천 신리리 청동기 시대 주거지 유적은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고경 간 지방도 확·포장구간 내 신리리 산 3-6번지 일대로, 신리마을의 남동쪽 서룡산[685m]에서 북쪽으로 뻗어 나온 해발 146m 구릉의 북동쪽 사면에 있다. 구릉 말단부의 북동쪽으로 접해서 마평지가 있고, 북쪽으로 마평들이 펼쳐져 있다. 조사 당시 밭으로 경작되고 있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영천 신리리 청동기 시대 주거지 유적은 경상북도 종합건설사업소에서 시행하는 지방도 확·포장사업 중 영천시 북안~고경 간 사업지구 내 유적으로 경북과학대박물관에서 2004년 11월 12일부터 12월 22일까지 시굴 조사를 거쳐 2005년 2월 28일부터 4월 14일까지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청동기 시대의 주거지 6동, 수혈유구 3기, 구상유구 2기와 원삼국 시대의 토광묘 1기가 확인되었고 유물은 68점이 출토되었다. 주거지는 등고선방향에 평행하게 배치되어 있으며 경사 낮은 쪽이 대부분 유실되었다. 2호는 공간을 분할하였고 화재로 폐기되었다. 모든 주거지에 벽구가 설치되었으며 노지는 1~5개가 설치되었다. 주혈의 배치 정형성이 확인되는 것은 1호와 4호 주거지이며 4주식이다. 4호는 벽구 내부에서 주혈이 확인되기도 한다. 4호와 5호 주거지가 유일하게 중복 축조되었는데, 4호가 선축되었다.
수혈유구는 2호와 6호 주거지 주변에 분포하며 평면 형태는 방형계이다. 규모는 길이 149~294㎝, 너비 84~174㎝, 깊이 17~36㎝이다. 이들의 용도는 명확하지 않다.
영천 신리리 청동기 시대 주거지에서 유물이 66점이 출토되었는데, 토기류 중 완형은 3점으로 발형토기 2점, 호형토기 1점이다. 구연부편 중 공열문이나 단사선문이 있는 것이 확인되었고 석기류는 석촉 1점 외에 모두 석부이다. 석촉은 무경식의 삼각만입석촉편이고, 석부는 합인석부, 편인석부, 주상편인석부 등이다. 토광묘에서 소형연질호 2점이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영천 신리리 청동기 시대 주거지나 유물 출토 상으로 보아 주변의 청정리 유적과 함께 동남부 지역권과 대구 지역권의 중간지대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편년(編年)은 청동기 전기 후반 정도로 비정(比定)할 수 있다. 또한 마평지 동쪽의 신리리 고인돌 유적과 동시대 유적으로 주목되며 두 유적 간의 밀접한 관계가 예상된다. 이는 영천 지역이 금호강 상류지역으로서 청동기 시대 전기부터 중기에 이르는 생활유적 자료가 확인되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