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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2317
이칭/별칭 주석(柱錫)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대곡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최미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94년연표보기 - 윤필성 출생
몰년 시기/일시 1850년 1월 2일연표보기 - 윤필성 사망
출생지 윤필성 출생지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호남리 지도보기
묘소|단소 윤필성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호남리
성격 효자
성별
본관 파평

[정의]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가계]

윤필성(尹弼成)의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주석(柱錫)이고 1794년(정조 18)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호남리에서 태어나 1850년(철종 원년) 1월 2일 5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윤경언(尹慶彦), 증조는 윤면교(尹勉敎), 조부는 윤수인(尹守仁)이다. 아버지는 윤순대(尹順大)이며 어머니는 영양 최씨(永陽崔氏)이다.

부인은 안동 권씨(安東權氏)로 권세장(權世章)의 딸이며, 후사(後嗣)가 없어서 아우 윤치성(尹致成)의 장남 윤태화(尹泰和)로 뒤를 이었다.

[활동 사항]

아버지 윤순대(尹順大)가 병에 들자 아들 윤필성이 병을 구완하였는데, 가래를 입으로 핥아내는가 하면 사람의 고기를 먹으면 낳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시탕해 드리고 손가락을 베어 피를 드리니 병환이 완쾌되어 오래도록 사시게 한 효행이 있었다.

윤필성의 아우 윤치성(尹致成)이 병에 들자 그의 아들 윤태신(尹泰臣)과 윤태영(尹泰永)이 병을 구완할 때 백약이 무효한지라 역시 허벅지 살을 베어 시탕해 드리고 손가락을 베어 피를 드리니 병환이 완쾌되어 오래도록 사시게 한 효행이 있었다.

철종(哲宗) 때 향인이 계장을 올렸으나 정려되지 못하였고, 이에 문중에서 삼효자(三孝者)를 기리기 위해 삼효각을 세웠다.

[묘소]

윤필성(尹弼成)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호남리 오현산(五絃山)에 병좌(竝坐) 향으로 있다. 윤태신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오동산(梧桐山)에 미좌(未坐) 향으로 있다. 윤태영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무수산(舞袖山)에 임좌(壬坐) 향으로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호남리에 1945년에 건립한 삼효각(三孝閣) 및 윤씨삼효자비(尹氏三孝子碑)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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