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30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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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永川靈芝寺冥府殿石造地藏十王像一括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영지길 471[용호리 1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희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4년 10월 20일 - 영천 영지사 명부전 석조지장시왕상 일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85호로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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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영천 영지사 명부전 석조지장시왕상 일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현 소장처 | 영지사 -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영지길 471[용호리 14] |
원소재지 | 영지사 -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영지길 471[용호리 14] |
성격 | 불상 |
재질 | 석조 |
크기(높이) | 116㎝[지장상]|120.5㎝[도명존자상]|134㎝[무독귀왕상] |
소유자 | 영지사 |
관리자 | 영지사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용호리 영지사에 있는 불상.
[개설]
영지사 명부전에는 본존불인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상이 협시하고 시왕상, 귀왕상, 판관상, 사자상, 금강역사상, 동자상이 봉안되어 있다. 모두 31구의 불상이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이들 존상은 희고 무른 석재인 불석으로 제작되었으며 각 도상의 상들은 격이 각기 다르지만 신체 비례나 얼굴, 옷 주름 표현 등이 대동소이하여 같은 조각승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2014년 10월 20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8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영천 영지사 명부전 석조지장시왕상 일괄은 영지사 불단 가운데 민머리의 지장보살상은 머리를 숙여 오른쪽 발만 드러나는 반가부좌의 자세로 앉았다. 몸과 한 돌로 조각된 손의 모양은 왼쪽 손바닥에 보주를 든 채 검지는 살짝 펴고 중지와 약지를 가볍게 구부렸으며, 오른손은 손등을 위로 해 같은 모양을 취하였다. 큰 머리에 허리가 짧은 상반신과 높은 무릎의 신체 비례는 전체적으로 상이 둔중하고 석재에서 오는 무게감이 그대로 느껴진다.
머리는 녹색과 흑색으로 채색하였고 길고 큰 얼굴은 이마가 넓고, 양 눈초리 끝이 올라간 작고 가는 눈, 이마로부터 편평하게 이어지는 직선적인 날렵한 코, 높은 인중과 아래가 도톰하게 강조된 큰 입을 특징으로 독특하고 개성 있는 인상을 보여 준다.
법의(法衣)는 오른쪽에 내의를 걸치고 그 위에 오른쪽 어깨를 살짝 덮어 변형 편단우견(偏袒右肩) 방식으로 대의를 입었으며, 가슴 아래 꽃잎 모양으로 접힌 승각기(僧脚崎)와 그 아래 양측으로 접혀 있는 작은 옷 주름은 옷을 봉긋하게 보이게 해 실제 입은 모습처럼 표현하였다. 오른쪽 어깨에 사선을 그리며 내려오는 대의 옷 주름과 배 앞에서 내의가 서로 교차된다. 오른쪽 내의 자락의 옷 주름은 얇고 큼직하며, 끝이 뾰족하게 접혀 있는 모양은 특징적이다. 양다리 사이로 내려오는 가운데 띠 모양의 옷 주름은 가장자리가 S자형을 그리면서 끝은 지그재그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옷 주름은 전체적으로 두껍고 날카로우면서 힘 있게 표현되어 있으며, 왼쪽 무릎을 감싼 두꺼운 옷자락에 반원형의 옷 주름을 표현된 것도 특징적이다. 왼쪽 다리와 무릎 위 옷자락은 다른 자락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따로 올려놓은 듯한 표현 기법은 1655년 보은 법주사 관음전 목조 관음보살상을 조성한 혜희(惠熙)와 그와 관련된 조각승의 불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이와 같이 검지를 살짝 펴고 중지와 약지를 구부려 다리 위에 놓은 손 갖춤은 1688년 마일(摩日)의 김해 은하사 명부전 석조 지장상과 닮았으며, 두껍고 직선적인 옷 주름과 왼쪽 다리 위에 옷자락을 올려놓은 듯한 특징은 1655년 조능(祖能)의 김제 청룡사 목조 관음보살상, 1657년 인영(印迎·印英)의 진주 청곡사 업경전 목조 지장보살상, 1706년 안성 칠장사 지장전 목조 지장보살상 등 혜희의 계보를 잇거나 그와 관련된 조각승들의 불상 특징과 닮은 점이 많다.
좌우에 협시한 도명존자상과 무독귀왕상은 도상적 특징이 다르지만 신체가 짧고, 장방형의 큰 얼굴과 이목구비 등의 표현은 두 상이 서로 유사하다. 민머리의 도명존자상은 엷은 백록색에 원권 화문이 장식된 장삼을 입고 그 위에 붉은색 대의를 둘렀으며, 양손은 합장하여 본존 왼쪽에 서 있다. 무독귀왕상은 머리에 원류관을 쓰고 가슴 앞으로 모아 쥔 공수(拱手)의 자세이며, 붉은색 포와 엷은 백록색 군의를 입었다. 무독귀왕과 도명존자의 모습은 양옆의 시왕상들과 흡사하다.
시왕상들은 용머리 장식의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 앉아 손등을 바깥으로 하여 양손을 가슴 앞에서 모아 쥐고 있거나 한 손으로 수염을 만지고 있다. 혹은 양손에 책을 펼쳐 쥐거나 한 손에 책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지물이나 자세가 크게 다양하지는 못하다. 수염 모양을 달리하면서 흑백의 색으로 나이 차를 구분하였으며, 다리 아래 서수(瑞獸)를 표현하고 있지 않은 것도 특징이다.
시왕을 보좌하기 위한 크기 50㎝ 내외의 동자상은 두 갈래로 묶어 틀어 올린 머리를 하거나 머리를 풀어 아래로 내린 모습이다. 손에는 연잎과 연꽃, 호랑이 등의 서수, 장수와 수명을 상징하는 복숭아 등의 과일이나 벼루 등을 쥐고 있다. 턱이 발달한 각진 방형 얼굴에 가는 눈, 작은 코, 입술의 미소가 어우러져 귀여우면서도 독특한 인상은 다른 존상과 다르지 않다. 옷은 포를 입고 그 위에 운견(雲肩)이나 천의를 두르기도 하며, 군의 길이를 길게 혹은 다리가 드러나게 입었다.
시왕 옆으로 귀왕·판관·사자상이 각각 있는데, 면류관을 쓴 귀왕과 관모를 쓴 판관은 무독귀왕과 같은 공수 자세에 장삼과 군의를 입은 모양이 거의 흡사하다. 사자상은 손에 두루마리를 받쳐 들고 있으며, 머리에 유건형의 모자를 쓰고 하반신에 고의를 입었지만, 좌측의 사자상은 군의를 길게 내려 입어 판관이나 귀왕의 착의법과 같다. 명부전의 가장 바깥에 위치하는 금강역사상은 틀어 올려 묶은 머리에 한 손은 허리춤에 다른 한 손은 가슴 앞으로 올려 주먹을 불끈 쥐고 있으며, 부릅뜬 큰 눈, 큼직한 코와 꽉 다문 입, 목·가슴·팔과 다리 위에 울퉁불퉁한 근육이 두드러져 강인함을 느끼게 한다.
[특징]
영지사 명부전의 본존인 지장상은 목이 짧고 다리가 높은 신체, 사선으로 올라간 작은 눈, 직선적 느낌의 코, 검지·중지·약지를 살짝 구부린 변형의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날카로우며 힘이 느껴지는 옷 주름 등을 주요 특징으로 하며, 이는 다른 존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같은 표현 기법은 1655년 법주사 관음전 목조 관음보살상을 조성한 혜희, 조능, 마일, 금문(金文) 등 혜희의 계보를 잇는 조각승의 불상에서 유사점을 찾을 수 있어 영지사 명부전 존상은 혜희파 조각승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유파는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전반에 활동하였으며, 영지사 본존인 지장상의 손 모습은 1688년 김해 은하사 명부전 석조 불상과 아주 유사하여 이 상도 비슷한 시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혜희파 조각승의 불상은 화려하고 힘이 있으며, 강렬한 인상을 특징으로 한다. 주로 충청도와 전라북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영천, 김해, 양산 등에서 이 유파와 관련된 불상들이 발견되어 이들의 활동 범위가 훨씬 더 넓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영천 영지사 명부전 석조지장시왕상 일괄은 조선 후기 조각승의 계보와 유파, 그들의 활동 지역 및 시기 등을 밝히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로 그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