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7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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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業谷齋舍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파계리 |
집필자 | 우경원 |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파계리에 있는 서도립(徐道立)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재사.
서도립[1580~1632]의 자는 중수(仲修), 호는 동천(東泉)으로 봉사(奉事) 서경치(徐景致)의 아들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3세에 노복(奴僕) 십여 명을 거느리고 의병진(義兵陣)에 가담하여 종사하고, 1597년 정유재란 때는 화왕산성(火旺山城)에 근거지를 둔 홍의장군(紅衣將軍) 곽재우 휘하에 종군하여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가 되고 여러 차례 승직하여 첨지중추부사(僉知中府事)가 되었다.
업곡재사는 영천시 고경면 용담로 1879-122번지[파계리 어부실]에 있으며 고경~건천 방면 727번 지방도에서 진입하는 농로를 따라 북으로 1.5㎞ 정도 올라가면 작은 못 앞에 개인 소유지 출입금지 표지판이 달린 철문에 다다른다. 여기서부터 걸어서 300m 정도 길을 따라 가면 민가 한 채 뒤로 업곡재사와 동천재가 나온다.
업곡재사의 건립연대를 알 수 있는 자료가 없어 정확한 건립연대를 밝히기는 어려우나 사용된 목부재의 상태나 건축기법이 조선 후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업곡재사는 울타리 없이 단동으로 남서향하여 세워진 건물이다. 업곡재사 뒤로 10m미터 떨어져 동천재가 있다. 재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이며, 평면은 모두 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좌측 2칸을 통칸 꾸미고, 방 전면에는 쪽마루를 설치하였다.
경사지에 건립한 건물로 기단은 전·후면의 높이차를 두어 축조하였다. 정면에는 막생긴 자연석을 허튼 층으로 690㎜ 높이로 쌓고 가운데 댓돌을 놓아 오르게 했다. 넓적한 방형의 자연석 초석을 놓고 기둥은 모두 각주를 세웠는데 단면 크기가 210×210㎜로 규모에 어울리는 튼실한 것을 썼으며 민흘림을 각각 두었다.
문은 사면 모두에 설치하였는데 정면에는 쌍여닫이 세 살문, 나머지는 외여닫이문을 달았다. 기둥 위에는 납도리와 장혀로 간략하게 꾸미고 가구는 3량 구조로 자연 곡재의 대들보 위에 키대공을 세우고 종도리를 받게 한 형식이다.
처마는 서까래만 쓴 홑처마에 맞배지붕 형식이며, 측면에는 박공만 설치하여 가구재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또한 측면에 도리와 장혀가 길게 빠져나와 처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까치발로 보강해 놓았다.
업곡재사 위쪽에 동천재가 있다. 업곡재사는 건물이 좌측으로 기울어져 있는 상태다. 지붕은 배면 우측 부분이 태풍 매미 때 함몰 붕괴된 상태로 우장막으로 임시 보강해 놓은 상태이다.
업곡재사는 동천재 보다 건립시기가 더 빠르고 사용된 목부재나 기법이 고식(古式)으로 영천 지역 재사 건축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