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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시마을-역사와 언어-유래
메타데이터
항목 ID 005T06004
한자 臨淮面 十日市마을-歷史와 言語-由來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십일시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황금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장시를 위해 조성된 마을
면적 267.8
인구(남) 276명
인구(여) 253명
가구수 184가구

[십일시마을의 역사와 유래]

십일시마을은 현재 행정구역상 진도군 임회면 석교리에 속해 있다. 석교리는 본래 진도군 임이면(臨二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돌다리가 있다고 하여 독다리, 또는 석교로 불렸다.

『호구총수』(1789)에는 석교리임회면(臨淮面)에 속하며, 상석교리(上石橋里)와 하석교리(下石橋里)로 나누어져 있다. 또한 석교의 지명과 관련된 석교장(石橋場)이 기록되어 있다.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1912년)에는 석교라는 명칭이 보이지 않는데, 이전에 석교라는 마을명칭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마을이름이 재편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하석리(下石里)가 있는 것으로 보아(이후에 석교리로 통합됨) 이전의 하석교리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하석리, 고방리를 병합하여 석교리라 하고 임회면에 편입하였다. 그후 다시 석교라는 마을이름을 되찾게 되어 현재에 이르며, 십일시, 고방, 석교, 구분실 등 4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십일시는 당초 석교리에 속해 있다가 1943년 분화되었다.

그렇다면 십일시마을은 언제 형성된 것일까? 2006년에 발간된 『진도군지』에는 “1890년경 밀양 손씨 손화삼이 임회면 연동에서 거주하다 이곳에 시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라고 기록, 마을의 형성시기를 1890년 즈음으로 잡고 있다. 이후 십일 간격으로 시장이 서면서 한집 두집 모이게 되어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1999년에 발간된 『진도군지』에는, 십일시마을이 1920년경에 형성되었으며, 최초 거주자는 밀양 박씨 박원식 씨로 기록하고 있다. 이 두 자료의 기록이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십일시라는 마을의 명명에만 국한하여 보면 문제가 되지 않을 듯하다. 마을은 1890년경에 형성되었지만, 십일시라는 마을이름은 대략 1920년경에 붙여졌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호구총수』(1789)는 물론이려니와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1912년)에서도 십일시라는 마을명은 확인할 수 없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의 자료를 반영하여 작성된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1917)에도 십일시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진도군지』(1999)의 기록은 현재 십일시 지역에 형성된 마을이름을 부여한 시점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면, 진도문화원장 김정호는 십일시란 마을이름이 임회면의 초대 면장이었던 박형준(朴亨俊)의 재임기간(1907.3.1~1923.4.30) 후반부에 부여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십일시란 마을이름은 원래 이 지역에서 10일 간격으로 시장이 서는 장터란 뜻에서 붙인 것이라고 한다. 십일시장임회면지산면 주민들이 이용하는 큰 장으로, 처음에는 10일 간격으로 장이 열렸으나 이후 4일에도 시장이 서게 되어 현재는 4일(4, 14, 24일)과 10일(10, 20, 30일)에 시장이 선다.

마을조직으로는 1926년에 조직된 운상계와 1975년 조직되어 주민 상호협조를 도모하는 친목계가 있다. 운상계에 대해 기록한 동계안을 마을 이장이 보관하고 있는데, 1947년에 기록된 자료부터 최근의 자료까지(부분적으로 빠진 해도 있음) 있다. 유물유적으로 임상해선생덕행비[1974년]과 곽장섭자선기념비[193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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