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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읍은 진도군의 중심지이고 성내리는 진도읍의 핵심지이다. 본래 진도읍은 1437년(세종 19)에 부내면이 되었다가 1873년(고종 11)에 진도면으로 개칭되었고, 1979년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이렇게 여러 차례 행정개편이 있었지만 성내리는 읍성의 안쪽에 있다 하여 처음부터 성안 또는 성내로 불렸다. 법정동은 성내리이지만 행정동은 진도초등학교가 있는 성동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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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城內里)는 현재 행정구역상 진도군 진도읍에 속한 마을이다. 성내리는 성안 또는 줄여 성내라고도 하는데, 성동(城東)마을과 성서(城西)마을을 행정리로 두고 있다. 성내리의 마을 명칭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기왕의 동상리(東上里), 동중리(東中里), 동하리(東下里), 서상리(西上里), 서하리(西下里)를 합쳐 성내리라 한 데서 비롯되었다. 『구한국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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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강(郡岡)[산] 성안에 있는 산으로 공원이 되었는데, 성이 있다. 성내(城內)[마을] 성내리를 줄여서 부르는 이름이다. 성내리(城內里)[마을] 성안, 성내라고도 부르며 진도읍성의 안쪽에 위치하고 있어 성안 또는 성내리라 하였다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마을 이름이 처음으로 명명되었다. 진도군청, 진도등기소, 농협중앙회, 진도교육청 등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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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읍성은 1440년(세종22) 진도고읍성에서 현재의 진도읍으로 진도군의 터전을 옮기면서 축조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진도고읍성에서 현재의 진도읍성으로 치소를 옮기게 된 이유는 세종 때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등 하 삼도를 비롯한 함경도, 평안도의 읍성축조를 관장한 최윤덕의 건의에 따른 것이다(『진도군지』(미간행) 참고). 진도읍 성내리에 있는 산성으로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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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는 성동리와 성서리로 구분된다. 이장도 각 마을별로 있으며, 두 개의 독립된 공동체가 결합되어 있다. 성내리, 특히 성서리는 가구 및 인구 이동이 빈번하고, 변화가 많아 정확한 통계가 어렵다. 따라서 공식적인 통계자료를 활용하여 그 추세를 살펴볼 수밖에 없다. 성내리의 가구수는 1968년 조사 당시 285가구였으나, 126가구가 증가하여 2006년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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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을 총회 성동리의 마을 총회는 매년 1월에 개최하고 있으나, 회의 날짜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2006년의 경우에는 1월 16일에 마을 총회를 개최했다. 마을 총회에서는 지난해의 마을 수입과 지출 등 마을 사업에 대한 감사 결과를 보고하고, 이장 및 마을 임원들을 선출한다. 이장의 임기는 2년이다. 성서리의 경우는 총회 개최가 일정하지 않고, 참석자는 적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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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는 1792년경 청주 한씨가 입향한 후 김해김씨, 밀양박씨, 전주이씨 등이 입거하면서 마을을 형성했다. 한때 성동리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성씨는 한씨였다. 한편 성서리는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인구의 변화가 많아 다성적 특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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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리의 경우에는 한씨들이 매우 많았다. 현재는 다수가 이사를 하여 수가 감소했으나, 여전히 10여 가구가 한씨이다. 현재는 박씨가 많고, 이들의 친척관계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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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에 소재한 관계로 특별하게 다른 지역과 혼인이 제한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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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삼현(任三鉉)[1874~1948]: 오위장을 지낸 임경록(任慶錄)의 아들로 태어났다. 호는 호석(湖石)이며, 1889년 16세가 되던 해에 소치(小癡) 허련(許練)의 제자로 입문하여 그림을 공부했다. 운림산방의 살림을 운영했고, 소치 허련이 1893년에 사망하자 그의 아들 미산(米山) 허형(許瀅)의 휘하에서 그림과 글씨를 공부하다 소치의 유언을 따라 운림산방을 관리했다. 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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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도계 : 성동리에만 상도계가 있었는데, 3년 전에 해산했다. 성동리의 상도계는 약 15년 전에 결성되었으나, 젊은이들이 가입을 하지 않아 계속 유지할 수가 없다고 한다. ◦ 성동마을은 200년 전부터 마을의 주요 성씨인 김해김씨, 창녕조씨, 무안박씨, 밀양박씨 등 8현의 영전이 모셔져 있는 향현사(鄕賢祠)에서 함께 제사를 봉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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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리에만 총 3개의 친목계가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가장 오래된 것은 약 40년 이상 되었다. 두 번째는 약 10년 정도 된 친목계인데, 다른 마을 사람들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세 번째는 칠성계라는 명칭의 형제계인데, 7가구의 부부동반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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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강공원 내 현충탑 앞에 게이트볼 경기장이 15년 전에 조성되었다. 따라서 성동리 노인들은 이곳에서 게이트볼을 자주 하고 있다. 성서리에는 한 명만 게이트볼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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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의 인접마을인 교동리 275번지에 향교가 있으며, 역시 인접마을인 남동리에 진도천주교회와 통일교회가 있다. 한편 성내리에는 진도교회(감리교)와 진도중앙교회가 있다. 그리고 인접마을인 쌍정리에는 원불교 진도교당이 있다. 성동리는 약 30가구가 장로교계 기독교인이고, 3가구 정도가 감리교계 기독인이다. 불교는 10여 가구인데, 진도읍에 소재한 영룡사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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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성내리에 향교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바로 인접한 마을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젊은이들이 교육을 받았다. 성내리는 진도군에서 근대적 교육기관인 국민학교가 처음 개교한 곳이다. 이 국민학교는 진도읍의 다른 국민학교에 비해 약 10년 이상 빨리 개교했으며, 현재에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진도군의 다른 농촌 마을에 비해 성내리는 근대적 교육을 가장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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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는 진도읍의 중심 마을이다. 오늘날과 같이 진도읍이 확장되기 이전에는 성내리에 대다수의 공공기관들이 위치해 있었고, 진도군을 대표하는 상권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진도군에서 발생했던 상당수의 정치,사회적 사건들이 성내리를 장소적 배경으로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철마광장이 진도읍의 중심지로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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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에 실시한 마을조사에 의하면, 성내리의 취업자 산업활동 인구는 총 666명이었다. 남자는 351명이었고, 여자는 315명이었다. 농업,임업,수렵업 종사자가 354명이었는데, 남자보다 여자가 월등하게 많았다(남자 124명, 여자 230명). 제조업 종사자는 총 19명이었는데, 남자는 13명, 여자는 6명으로 농업 관련업과는 반대였다. 전기,가스,수도,위생 시설 서비스업 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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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인의 산업별 구성에서 알 수 있듯이 성내리에는 비농가가 많고, 이곳이 진도읍의 중심이어서 농경지 면적은 적은 편이다. 전체 경작지는 188㏊인데, 논은 60㏊이고, 밭은 128㏊, 임야는 10㏊이다. 2005년의 진도읍사무소 통계에 의하면, 성동리 거주자가 경작지하는 면적은 112㏊로 59.6%이고, 성서리의 경작지 면적은 76㏊로 40.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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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농회 : 영농회는 성동리에만 결성되어 있다. 이 영농회는 1985년에 결성되었으며, 2006년 현재 회원은 63명이다. 월 2회의 모임을 갖고, 영농에 관한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는 한편, 생산 경영에 관한 사안들을 협의한다. 또한 영농회는 마을의 운영에 관한 주요 사항을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 작목반 : 성서리에 구기자 작목반이 조직되어 있다. 7명으로 구성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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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의 가장 중요한 생산 기반 시설은 상가이다. 상가는 성서리를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다. 진도읍 내의 상권은 역사적으로 보면, 성서리에서 남동리와 쌍정리 등으로 확장되었다. 철마광장의 남쪽 경계선에서 남동리의 중심부로 도로가 관통되기 이전만 해도 성서리가 진도읍 상권의 주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진도읍 상권의 변화에 크게 영향을 준 것은 버스터미널의 위치와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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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의 생산 과정 가운데 상업은 광주나 목포 등의 대도시에서 상품을 도매 또는 중매로 들여와 소매하는 형태이다. 농업은 고령인 소유의 농경지는 임대로 경작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경지 면적이 적어 자가 노동에 의존하고 있다. 성동리의 경우 전체 농경지 가운데 27.7%가 휴경지일 정도로 농업 의존도가 낮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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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뿐만 아니라 주변 마을인 남동리, 쌍정리 등에 다양한 업종의 상가들이 개업해 있고, 진도군에서 가장 큰 진도읍 매일시장이 인접해 있어서 생산한 상품들은 이곳을 통해 판매 및 유통하고 있다. 농업 생산물의 판매 유통은 다른 농촌마을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성동리에서 생산되는 주요 농산품은 쌀, 구기자, 배추, 대파 등인데, 자급용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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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와 남동리 및 쌍정리의 경계도로는 한동안 진도읍에서 가장 넓은 중심도로였다. 그러나 철마광장에서 남동리로 큰 도로가 연장 관통되고, 남동리 일대에 외곽 도로가 개설되면서 중심도로의 기능은 많이 감소되었다. 성내리 주택가 지역은 옛 길이 남아 있고 노후된 가옥들이 있어 차량 통행을 저해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교통이 편리한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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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 성동마을은 진도읍 중심가에 위치한 마을로서 비농가가 70%를 차지한다. 전체 270가구에서 230가구가 비농가이고 40가구만이 농사를 짓고 있다. 대부분 관공서에 다니거나 상업을 하는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성동마을 내에는 농지가 거의 없기 때문에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인근마을에 농지를 소유하고 있거나 인근마을의 농지를 임대하여 농사를 짓고 있다.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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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설점치기 섣달에 눈이 많이 오면 이듬해 농사가 잘 된다고 여겼다. (3) 생업력 대파를 출하한다. 구기자를 수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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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설날(음력 1월 1일) 성동마을에서는 설날 0시경에 차례상을 차린다. 차례상에 메를 올리는 집안도 있고 떡국을 올리는 집안도 있다. 설날 아침에는 설빔을 입고 가족과 친지에게 세배를 한다. 세배를 받으면 덕담을 하고 세뱃돈을 주기도 한다. 세배를 마친 후에는 산소에 성묘를 간다. 설날 아침에는 여자가 남의 집에 일찍 가면 안 된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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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하루달날(사람날) 옛날에는 이날도 차례상을 차리는 집이 있었다. 이날에는 손그을음이 일어나지 말라는 뜻에서 콩을 볶아 먹었다고 한다. 또한 하루달날 칡을 먹으면 이빨이 튼튼해진다고 해서 이날 칡을 캐서 먹었다. ○ 영등달 음력 이월은 ‘영등 오는 달’이라고 하여 물을 떠놓은 사람들이 있었다. ○ 경칩 이날 산에 있는 깨끗한 옹달샘에 있는 올챙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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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삼질날 삼질날은 제비새끼가 돌아오는 날로 인식되고 있다. ○ 한식 이때 산일을 하면 탈이 없다 하여 이장을 하거나 묘를 손질하고 개사토를 한다. (3) 생업력 4월 초에 구기자의 꺾꽂이를 하는데 15센티미터 정도 길이로 잘라서 땅에 묻는다. 이달에 볍씨를 담근다. 4월 20일경에 고추를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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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경로잔치 매년 5월 어버이날 경에 경로잔치를 한다. 부녀회에서 음식을 장만하여 65세 이상 노인을 공경하는 의미에서 잔치를 벌여 대접하는 것이다. 마을기금으로 해오다가 작년에는 읍사무소의 지원을 받아 일주일에 서너 번씩 노인회관에서 중식을 제공하기도 했다. ○ 읍민의 날 매년 봄에 열리는 읍민의 날 행사가 올해는 5월 1일에 진도초등학교에서 열렸다. 올해 읍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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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단오날 이날은 풀잎마다 약이 된다고 하여 들에 가서 익모초, 설모초, 우실나무, 쑥 등 여러 가지 풀을 뜯어서 응달에서 말렸다. (3) 생업력 콩, 참깨 등을 파종하고 마늘을 수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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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유두 유두는 보리쌀을 갈아서 보리개떡을 해먹었다. 예전에는 이날 차례를 지내는 집도 있었으나 지금은 유두를 쇠는 집이 없다고 한다. 반촌에서는 유두를 안 쇠고 민촌에서만 유두를 쇤다는 말이 있었다. ○ 복날 예전에는 이날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친정에 보냈다. 형편에 따라 국수, 닭고기, 보리개떡, 송편, 국수, 보리술 등을 옹기 오가리에 담아서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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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칠석 칠석은 견우직녀가 만나는 날로 인식하고 있다. 불교인은 이날 절에서 조상을 위해 천도제를 지내기도 한다. ○ 백중 이날은 ‘도랑신네’가 일 년 농사를 결정하는 날이어서 논밭에 가면 안 된다고 했다. 예전에는 백중날도 차례를 지냈는데, 지금은 백중을 쇠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 벌초하기 음력 7월 1일부터 벌초를 하기 시작하여 추석 전에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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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성주고내기 농사를 지어 첫 방아를 찧으면 손 없는 날 머리목욕하고 성주에 밥을 차려놓은 뒤 성주동우에 쌀을 넣었다. 어느 집에서는 겉벼를 그대로 성주동우에 넣기도 했다. 성주동우에 넣었던 쌀은 특별히 조심해서 밥을 지어먹거나 신경 쓰지 않으려고 시장에 내다가 팔기도 했다. 성주동우에 넣었던 쌀을 팔아서 그 돈으로 며느리 옷을 해주는 시어머니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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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중구 중구날은 뱀이 들어가는 날이라는 말이 있었으며 임자 없는 제사를 지내주는 날이라고 한다. (3) 생업력 구기자와 콩, 참깨를 수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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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시제모시기 10월에는 집안별로 시제를 모신다. (3) 생업력 구기자를 수확하고 대파를 출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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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마을총회 매년 12월 30일경에 마을총회를 개최한다. 마을총회에서는 1년간 마을에서 진행된 사업에 대해 보고하고 수입금과 지출금을 결산한다. 또한 새로운 이장과 임원을 선출한다. 성동마을의 임원은 고문 3명, 이장 1명, 노인회장 1명, 청년회장 1명, 새마을지도자 남녀 각 1명, 감사 2명, 개발위원장 1명, 개발위원 7명, 반장 7명이다. (2) 세시풍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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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는‘진도읍성’으로 둘러싸인 마을이다. 1900년대 초 진도읍성이 해체되기 시작하면서 관청 이외의 건물과 시설들이 하나둘 건립되었다. 물론 진도읍성 내에 관청 및 통치 기구들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른 읍성들과 마찬가지로 관청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주택을 비롯하여 유지 및 상대적으로 신분과 지위가 높았던 사람들이 입거하면서 큰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성내리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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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읍성은 1987년 1월 15일에 전라남도 지정 문화재 자료 143호로 지정되었다. 이 성은 1440년(세종 22)에 축조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의 진도읍성은 성내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고군면 고성리에 있었다. 고성리에 있던 진도읍성은 백제시대에 처음 축조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새로운 읍성이 조성되기 전까지 오랫동안 이곳은 진도의 치소(治所)로서 기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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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동안 진도의 치소였던 진도읍성이 있던 곳이 성내리인 관계로 이곳에는 진도의 법과 행정, 그리고 공공기관들이 모여 있었다. 진도군의 발전과 더불어 진도읍이 확대되었고, 이에 따라 중앙정부의 지방기관들과 각종 공공기관들이 인근 마을인 쌍정리, 남동리, 교동리 등에 신 청사를 건립하여 이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내리에는 여전히 진도군의 법과 행정을 시행하는 다수의 공공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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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진도군청 진도군의 행정업무를 총괄하고 시행하는 진도군청은 성내리 64-1번지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이곳으로 진도군청이 신축, 이전한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이전하기 전의 청사는 현 ‘소전미술관’이 있는 성내리 63-1번지에 있었다. 이곳에서 진도군의 자치 업무가 개시된 것은 1437년(세종 19)에 해진군(海珍郡)으로부터 진도군이 분리되고, 진도읍성으로 이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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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진도경찰서 진도경찰서는 1910년 9월 16일 목포경찰서 진도주재소가 설치되면서 창립되었고, 1922년 5월 8일에 진도경찰서로 승격되었다. 경찰서 청사는 진도군 객사터였던 성내리 50번지에 있었는데, 약 30평 규모의 일본식 목조건물이었다. 이 청사는 1966년에 12월 17일 2층으로 된 콘크리트조 건물로 개축되었다. 그러다가 2001년 6월 22일에 지하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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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는 그 역할과 기능이 다소 약화되었으나, 성내리는 진도군 경제의 중심이었다. 오늘날에도 철마광장 주변과 과거 철마광장으로 진입하던 주요 도로의 주변에는 상가가 형성되어 있다. 이렇게 상가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방 이후까지만 해도 철마광장에서 남강모텔이 들어서 있는 쪽이 진도시장이었다. 이곳에 있던 시장이 남동리로 이주한 것이 196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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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의 특징은 교육 관련 시설들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라는 점이다. 비록 오늘날에는 성내리 내에 진도초등학교만 있으나, 진도군청 청사가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성내리 64-1번지에는 진도중학교와 진도고등학교가 있었다. 따라서 이 일대는 학생들의 이동이 많았다. 게다가 성내리는 진도군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학원가가 형성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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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도초등학교 진도초등학교는 1909년 3월 31일 진명 4년제 4학급으로 인가되었고, 같은 해 4월 15일 진도읍 동외리 가마골서 개교했다. 1912년 11월 화재로 교사가 소실됨에 따라 1914년 3월에 현재의 위치인 성내리 54번지로 이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교사는 이후에도 수차례 훼손되었다. 이를테면, 1943년 11월의 화재로 교사가 소실된 바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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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청이 있던 성내리 63-1번지에는 현재 소전미술관이 있다. 소전미술관은 1977년 3월 구의회 사무실, 즉 현재의 소전미술관 바로 앞 건물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1990년 4월 11일에는 민속유물전시관으로 개관했다. 그리고 1990년 12월 10일에 진도군 문화예술관 관리사무소로 개칭되었다가 2003년 5월 31일에 소전미술관으로 재개칭하여 개관하였다. 본래 이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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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진도군지』에 의하면, 당시 진도에 개원해 있던 의원은 진도읍에만 7개가 있었는데, 이 가운데 4개가 성내리에 위치했다. 이 의원들은 진도보건소(1965년 2월 28일 개원), 중앙의원, 자생의원, 홍인의원 등이었다. 약국의 경우에도 진도읍에 총 7개가 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이 가운데 4개가 성내리에 있었다. 서울약국, 이화약국, 호남약국, 서약국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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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에는 군 단위의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많은 시민사회단체가 결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사회단체의 수가 많은 가장 큰 이유는 문화 및 예술 관련 단체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도군의 시민사회단체들 가운데 많은 단체들이 성내리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성내리는 법과 행정 및 공공 기관들이 위치한 곳일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단체에게도 선호되는 곳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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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동마을이 속한 고군면은 진도군의 북동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회동마을은 고군면의 남쪽 끝에 자리하고 있다. 첨찰산(尖察山)[485.2m]의 맥이 남남서 방향으로 내려가 두무골재를 지나 덕신산(德神山)[389m]을 이룬다. 점차 고도를 낮추면서 삼재를 만들고 곧장 바다로 내려가 회동재를 건너 동기미봉을 바다에 밀어 놓았다. 이 산줄기가 회동마을의 북서사면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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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알려진 신비의 바닷길은 평상시에는 모래등이 해수면 아래 5~6m 지점에 있어 드러나지 않지만 조수간만의 차가 큰 사리에 해할(海割) 현상이 발생하는 곳이다. 해할이란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섬이 많은 다도해 지역에서 물리 빠지는 썰물 때 주위보다 높은 해저사주가 드러나면서 바다가 갈라지는 것처럼 보이는 자연현상의 하나이다. 바닷길의 폭은 평균 40m 가량이며 모래와 자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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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회동마을의 아름다운 자연풍광으로 꼽는 것이 8개 있는데 이를 회동팔경(回洞八景)이라 한다. 회동팔경은 회동명월(回洞明月), 금호귀범(金湖歸帆), 안암기운(鞍岩起雲), 초평모우(草坪牟牛), 남산호수(南山湖水), 장사낙안(長沙落雁), 송천무학(松川舞鶴), 삼도낙조(三島落照)를 일컫는다. 회동마을은 김 양식선 등 선박 100여 척을 소유한 부촌이다. 현재 회동마을은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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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동(回洞)마을은 현재 행정구역상 진도군 고군면 금계리에 속해 있다. 금계리는 가계리, 금호리, 회동리, 용호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금호리와 가계리의 이름에서 각각 한 자씩 따서 금계리라 명명하였다. 회동마을은 『호구총수』(1789)에 의하면 고군내면(古郡內面) 22개 마을 중 하나였다.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1912년)에 의하면 고일면(古一面) 1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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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동마을에는 현재 거의 잊혀져 가고 있는 지명도 많이 있다. 여기에서는 회동마을 주민들이 의사소통 수단으로 부르고 있는 지명까지 수록한다. 지명에 관련된 기술 내용은 『한국지명총람-진도군-』과 박명진[남, 74세, 현 노인회장], 박철준[남, 74세], 장신일[남, 60세] 등 회동마을 주민들의 도움을 받았다. ○ 가인봉, 가연봉[산] : 매봉달 참조. ○ 간지께[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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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봉[가인봉, 가연봉], 매봉달[291m] : 이 산은 고군면 금계리와 향동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회동마을 뒤쪽에 위치하고 있다. 회동마을 주민들은 가인봉이나 가연봉보다 가야산 또는 매봉달이라 부른다. 가야산이라 부르는 것은 매봉의 다른 이름인 가연봉·가인봉을 잘못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매봉달의 달은 우리의 옛말 중 달[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 모나리[마을] :회동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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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골[골] : 『한국지명총람』에는 불당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주민들의 의견은 다르다. 70대의 제보자들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60대의 제보자는 뽕할머니 제당 위쪽의 조그마한 골짜기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 싹바우[바위] : 뒤까끔 아래쪽에 붙어 있는 바윗덩이를 말한다. 주민들은 싹이 많아서 닭을 못 키울 지경이었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 한다. ○ 안깔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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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산[산] :회동마을 가까이에 있는 산을 말한다. 웃동네(가뎃동네← 가운뎃동네) 앞에 있다. 회동마을은 해안을 따라 형성되었으며 바닷가를 향해 주택이 지어졌으나 앞과 뒤의 방위 개념은 다르다. 일반적으로 마을이 형성된 전면을 앞이라 하나 회동마을은 그렇지 않다. 뒤까끔은 위치상 마을의 옆에 있으며, 앞산은 마을의 뒤쪽에 있는데도 앞산이라 하기 때문이다. ○ 영등살[바닷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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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에 손동지라는 사람이 제주도로 유배 가던 중 풍파로 호동(지금의 회동마을) 앞바다에 표류하였다. 그리하여 호동마을에서 촌락을 이루고 살게 되었는데 호랑이의 침입이 잦아 호동마을 건너편 모도(茅島)라는 섬으로 피신하면서 뽕 할머니 한 사람을 남겨둔 채 떠나게 되었다. 뽕할머니는 헤어진 가족을 만나고 싶어서 매일 용왕님께 기원하였는데 그해 음력 3월 초 꿈속에 용왕님이 나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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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진도군 수원지가 있는 방죽골부터 동기미까지 형성된 산자락은 말의 형국이라 한다. 이 산자락 끝에 해당하는 땅 이름인 동기미는 말의 머리 부분으로 말이 물을 먹는 형상이라고 한다. 앞산에는 말안장을 뜻하는 안장바위가 있음도 이러한 명칭 유래를 뒷받침하고 있다. 또한 동기미 끝자락에는 조그마한 구멍이 있는데, 이곳에 바닷물이 유입되면서 말이 물을 먹듯이 “꾸르릉, 꾸르릉”하는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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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는 회동마을의 서쪽 동네를 가리킨다. 예전에 모나리에는 금호도를 왕래하는 나루터가 있어서 금호도까지 배로 왕래하였다. 하지만 샛바람이 불면 하루도 좋고 이틀도 좋고 오도 가도 못하였다. 금호도와 회동마을을 잇는 정기적인 객선이 없었을 때 모나리에는 불자리가 있었다. 불자리에는 채씨 불자리, 박씨 불자리, 양씨 불자리, 정씨 불자리, 임씨 불자리 등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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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현재 회동마을은 총 129가구이며 이 중 농업가구는 21가구, 어업가구는 105가구, 기타 3가구가 있다. 인구는 총 257명으로 남자는 178명, 여자는 179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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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회의에는 정기회의와 대동회의가 있다. 정기회의는 매달 15일에 열린다. 특별한 안건이 없는 경우 방송을 통해서 알리는 것으로 대신한다. 대동회의는 12월 말에 개최된다. 대동회의에서는 이장의 일 년 업무보고, 결산, 임원 선출 등이 이루어진다. 마을조직으로는 청년회, 개발위원, 부녀회, 상부계, 어촌계 등이 있다. 청년회(진흥회)는 18세에서 40세에 해당하는 청년들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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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이전 회동마을 주민들은 조기잡이 중선배를 타거나 선원들에게 나무를 팔아서 생활을 했다. 당시 회동마을에만 10여 척의 조기잡이 중선배가 있었고, 마을 앞 금호도에도 대여섯 척의 중선배가 있었다. 중선배 한 척에는 7~8명의 선원이 필요했기 때문에 회동마을 주민들의 생계 유지에 큰 역할을 했다. 회동마을에 김 양식이 시작된 것은 1960년 무렵이었다. 장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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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동마을을 비롯한 모나리, 가계리, 모도리, 원포리 등 진도의 동남쪽에 위치한 어촌에는 김 양식이 발달했다. 회동마을은 가구당 100줄로 200때(40m가 한 때로 두 때를 묶어서 양식을 하고 있다)를 양식하고 있다. 9월 초에 김발을 제작하여 중순 무렵까지 포자를 붙인다. 포자는 대여섯 때의 김발을 묶어서 그 위에 포자(김 종자)가 붙은 패각(조개껍질)을 뿌리고 차광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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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수확철이 되면 해남, 완도, 강진, 장흥 등의 김 가공업자들은 김을 사기 위해 회동마을을 찾는다. 수협을 통해서 위탁 판매한 김은 중매인을 통해서 가공업자에게 넘겨진다. 김 양식이 활발했던 1980년대 무렵만 해도 8개의 수협이 있었으나 지금은 1개가 운영되고 있다. 진도에서 김이 생산되는 곳은 동남쪽 바다로 갯벌이 발달한 원품리, 회동리, 수품리 등 세 지역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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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지는 않지만 멸치 낭장망을 하는 가구도 있다. 가계리, 회동마을, 모나리 등 인근 마을의 십여 가구가 낭장망을 통해 멸치를 잡고 있다. 그물을 이용한 고기잡이는 봄에 시작해서 가을까지 계속된다. 회동마을 앞 갯벌에서 조도군도 사이의 바다는 다양한 어종들이 서식하고 산란하는 지역이다. 소형 그물로 고기가 잡힌다는 것은 바다와 갯벌이 양호한 생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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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동마을과 모도(茅島)를 잇는 길이 2.8㎞에 너비 약 40~50m의 모래등이 드러나는 신비의 바닷길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75년 주한 프랑스 대사를 지냈던 피에르 랑디(Pierre Landy)에 의해서이다. 역사와 지리학 분야의 박사였던 피에르 랑디는 진도개를 살피러 왔다가 그 해 4월 회동마을과 의신면 모도 사이의 바닷길이 열리는 것을 보고 감격하여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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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바닷길은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하고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에는 더욱 완연하게 드러난다.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는 광경은 장관이다. 5~6m 수심 아래 잠겨 있던 바닷길이 갈리면서 드러나고 바닷길 양 옆으로 바닷물이 찰랑거리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신비롭다. 이 광경은 구약시대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는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실제 진도 지역의 기독교계는 신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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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바닷길은 해마다 음력 3월 초와 보름, 4월 초와 보름, 6월 초와 보름 해질 무렵에 완전하게 구경할 수 있다. 신비의 바닷길은 지난 2004년 5월과 2005년 7월에 가장 크게 열렸었다. 진도군에서는 신비의 바닷길이 가장 뚜렷이 드러나는 달에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를 개최하려고 노력한다. 2004년까지만 해도 영등축제라는 명칭으로 행사를 치렀다. 2005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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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동마을 주민들의 주요 소득원은 김 양식이다. 회동마을에서 김을 양식한 지는 약 30여 년 되었다. 따라서 주민들의 생활은 김 양식 주기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김은 양력 9월 초(절기상으로는 백로 경)에 김발에 포자를 부착한다. 포자를 붙이고 나서는 유기산 등 김의 생장을 돕는 약을 한다. 수확은 양력 10월 말부터 이듬해 4월 중순 경까지 가능하다. 김 수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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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설점치기 섣달에 눈이 많이 오면 이듬해 농사가 잘 된다고 여겼다. ○ 빚갚기 새해가 되기 전에 빚을 청산하기 위해 섣달 그믐날 빚을 갚는다. (3) 생업력 김 채취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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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설날(음력 1월 1일) 회동마을에서는 설날 새벽 1시 경에 차례상을 차린다. 떡국 대신 메를 올린다. 설날 아침에는 설빔을 입고 가족과 친지에게 세배를 한다. 세배를 받으면 덕담을 하고 세뱃돈을 주기도 한다. 세배를 마친 후에는 산소에 성묘를 간다. 설날 아침에는 여자가 남의 집에 일찍 가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 정초 ① 토정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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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진도 신비 바닷길 축제(영등축제) 영등사리 때 회동마을과 모도마을을 연결하는 바닷길이 열리는 현상을 기념하기 위해 영등축제를 개최한다. 현재 축제명은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이다. 2005년부터는 축제 이름을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로 바꾸고 영등달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찾을 날을 정하여 축제를 하고 있다. (2) 세시풍속 ○ 하루달날(사람날) 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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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경로잔치 경로잔치는 매년 4월 5일 경 한다. 경로잔치는 65세 이상 노인을 공경하는 의미에서 청년회와 부녀회에서 잔치를 벌여 대접하는 것이다. 비용은 호상할 때 천돈을 모아서 그 기금을 마련한다고 한다. (2) 세시풍속 ○ 삼짇날 삼짇날은 제비새끼가 돌아오는 날로 인식되고 있다. ○ 청명, 한식 이 때 산일을 하면 탈이 없다 하여 이장을 하거나 묘를 손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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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4월초파일 불교인은 이날 연등을 달고 절에 간다. (3) 생업력 이달부터 멸치잡이가 시작되어 가을까지 멸치를 잡는다. 회동마을에서는 1호가 낭장망으로 멸치를 잡고 있다. 벼농사의 경우, 5월 10일에서 5월 30일 사이에 볍씨를 담근다. 5월 30일에서 며칠동안 못자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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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일일관광 정기적인 행사는 아니지만 주민들끼리 관광을 가기도 한다. (2) 세시풍속 단옷날 이날은 풀잎마다 약이 된다고 하여 익모초, 설모초, 우실나무, 쑥 등 풀을 뜯어서 말렸다. (3) 생업력 모내기는 5월 말에서 6월 10일까지 이앙기로 한다. 콩, 팥, 참깨 등을 파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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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복날잔치 노인회에서 주관하여 음식을 장만한다. 돼지고기, 닭죽, 떡 등을 준비하여 주민들과 회합하는 자리이다. (2) 세시풍속 ○ 유두 유두는 노는날이라고 하여 고운 옷 입고 잘 먹고 놀았다. 보리쌀을 갈아서 보리빵을 해먹었다. 예전에는 이날 차례를 지내는 집도 있었으나 지금은 유두를 쇠는 집은 없다고 한다. (3) 생업력 이달에는 벼의 생장을 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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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백중 이날은 ‘도랑신네’가 일년 농사를 결정하는 날이어서 논밭에 가면 안 된다고 했다. 예전에는 백중에도 차례를 지냈는데, 지금은 백중을 쇠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 벌초하기 음력 7월 1일부터 벌초를 하기 시작하여 추석 전에 마무리 한다. (3) 생업력 마늘을 심는다. 김 양식 그물을 보수하거나 새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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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성주고사 예전에는 벼가 익으면 베어다가 찧어서 밥을 지어서 성주에 올렸다. 그리고 농사를 지어 첫 방아를 찧으면 손없는 날을 택일하여 성주동우에 쌀을 넣었다. 성주동우에 넣었던 쌀은 특별히 조심해서 밥을 지어먹거나 신경 쓰지 않으려고 시장에 내다가 팔기도 했다. 집을 개조하면서 마래가 없어지게 되자 성주동우도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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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중구 이날에는 산일을 해도 탈이 없다고 하여 이장, 개사토 등 묘를 손질하였다. (3) 생업력 10월 10일 경부터 김 채취가 가능하다. 콩, 팥, 참깨를 수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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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시제모시기 10월에는 집안별로 시제를 모신다. 회동마을에는 제각이 없기 때문에 다른 마을로 가거나 집에서 시제를 모신다. (3) 생업력 김을 채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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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동계 매년 12월 20일에서 25일 사이에 동계를 개최한다. 동계에서는 1년간 마을의 수입금과 지출금을 결산하고 새로운 이장을 선출한다. (2) 세시풍속 ○ 동지 이날에는 팥죽을 쑤어 먹는다. 전에는 집안 곳곳마다 팥죽을 뿌리기도 했으나 지금은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 김장 담그기 이달 중순 경 김장을 한다. 배추김치, 동치미 등을 담아 겨우내 먹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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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바닷길은 자연지리적으로 특이한 해안과 해저지형, 큰 조차와 파랑(波浪), 해류의 흐름, 퇴적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자연현상이다. 진도군 고군면 회동마을과 의신면 모도마을 사이 해저에 발달된 육계사주가 가장 낮을 때 해상에 노출되어 마치 바다가 양쪽으로 갈라진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1999년 명승지로 지정되었다. 현재 전라남도 전역에서 많은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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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바닷길 축제의 근간은 영등살 때 회동마을 사람들이 모셨던 영등제에서 찾을 수 있다. 회동마을에서는 영등제를 갯당제라 하였는데, 80여 년 전에 중지되어 현재 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영등제는 한국의 농어촌에서 일반적으로 봉사되는 풍신제이며, 영등할머니는 영등제에서 봉사되는 풍신으로 농어촌에서 고루 봉사되는 신격이다. 회동마을 사람들이 영등제를 모신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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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동마을에는 영등축제의 주신인 뽕할머니에 관한 두 편의 설화가 전하는데, 첫 번째 설화는 다음과 같다. 옛날 호동마을에 호랑이의 피해가 심하자 주민들은 바다 건너 모도로 피난을 떠났다. 그때 뽕할머니 혼자 마을에 남게 되었다. 뽕할머니는 날마다 뿔치바위에서 가족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용왕님께 빌었다. 그러던 음력 2월 15일 뽕할머니는 꿈에 “곧 무지개를 타고 가족과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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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는 회동마을, 진도읍, 회동 앞바다의 야외공연장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근래 가계마을에 진도해양생태관이 건립되고, 그 앞으로 넓은 주차장이 있어 다양한 볼거리와 편의시설을 제공하고 있다. 축제는 1978년 처음 시작된 이래 2005년 현재 28회까지 개최되었다. 제1회부터 28회까지 기간과 주요 행사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위의 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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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처음 개최되었을 때는 4월 15일 뽕할머니의 제사와 의신면 모도초등학교 개교 21주년 운동회로 시작되었으며 만 여 명의 관광객이 참가하였다. 1980년 3회 축제 때에는 이만 여 명의 관광객 중 915명의 외국인 참가하였다. 이때부터 외국 관광객의 방문이 본격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83년 6회 축제 때에는 「영등살이」 영화 촬영을 하여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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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2003년부터는 축제기간이 4일로 확대되면서 다양하고 이채로운 프로그램이 선보인다. 뽕할머니 제사, 민속공연 외에도 영등살놀이라 하여 뗏목놀이, 용왕제, 뽕할머니 만남기원 및 농악놀이, 바닷길 대영합회, 뽕할머니 상봉, 뽕할머니 씻김 등을 개최하여 뽕할머니전설을 재현하였다. 그리고 찾아가는 박물관, 축하 비행, 해상 선박퍼레이드, 바닷길 불꽃축제, 진도닻배놀이 시연, 향토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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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면 회동마을에서 모도마을까지 물길이 열린다. 행정구역상으로 회동마을은 고군면에 속하고 모도마을은 의신면에 속한다. 모도마을은 회동마을에서 배를 타고 10여 분이면 도착하는 비교적 가까운 섬마을이다. 그러나 회동마을에서 보면 모도마을은 배를 이용해야만 갈 수 있으므로 가까우면서도 먼 이웃이기도 하였다. 과거 바닷길이 열릴 때면 회동마을과 모도마을 사람들은 바닷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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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도마을 당제는 2005년 7월 2일, 2006년 7월 7일(금) 2차에 걸쳐 조사하였다. 제보자는 김유형[남, 77세], 김병헌[남, 62세], 김복윤[남, 61세], 노강준[남, 52세] 등이다. 모도마을 중심부 위쪽에는 울창한 나무숲이 있는데, 그 가운데에 당할머니를 모시는 당집이 위치하고 있다. 지금은 당할머니를 뽕할머니라 부르고 있으나 원래는 당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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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모시는 날인 정월 초이튿날이 되면 각 가정에서 한 사람씩 동원되어 당집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고, 당집 올라가는 계단 양 옆으로 황토를 조금씩 놓아둔다. 그리고 제관은 자신의 집에서 제물을 장만한다. 예전에는 제관들이 오전부터 당에 올라가서 직접 제물을 장만했다. 그러나 지금은 집에서 제물을 장만한 뒤 제의 시간에 맞춰서 제관이 가지고 올라간다. 제물을 장만할 때는 함부로 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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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집에서 제가 끝난 뒤 제관은 정월 초사흗날 새벽에 다시 독샘에서 제를 모신다. 미리 제물을 장만하여 독샘 앞 바닥에 차려놓는다. 이때에는 당집에 올린 제물 외에 돼지머리도 함께 올려놓는다. 예전에는 거리제 모실 시간이 되면 각 가정에서는 부녀자들이 나물 한 그릇, 수저 한 벌, 빈 밥그릇을 놓은 상을 가지고 나온다. 그러면 제관이 미리 밥을 해가지고 와서 일일이 빈 밥그릇에 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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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제에 관한 몇 가지의 영험담이 있다. 첫 번째로 어떤 마을 사람이 당집 주변에서 캔 칡을 집으로 가져갔다. 그런데 그날 밤 그 칡을 다시 갖다 놓으라는 꿈을 꾸고 나서 칡을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고 한다. 두 번째로 아들 얻기를 원하는 사람이 당제를 모신 뒤에 아들을 얻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세 번째로 10여 년 전 제관으로 선정된 사람의 부인이 생리를 하였다. 선정된 제관은 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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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를 마친 뒤에는 축제에 대해 평가하고 방문객을 분석하여 다음 축제의 발전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다. 여기서는 26회부터 28회까지의 평가보고서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2003년 26회 축제 평가보고서에서는 향후 발전 과제로, 개막식 행사 및 진도읍내 축제 분위기 활성화, 체험관광 활성화, 행사장 주변 사유지 매입 추진, 영등살놀이 씻김굿 무대 시설, 한국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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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내용과 관련하여 조언을 하자면, 첫째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는 해마다 많은 일본인들이 단체로 방문하고 있다. 이들을 위해서는 철저한 눈높이 서비스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지역 이미지를 판매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프로그램 구성면에 있어서도 어설픈 흉내는 지양해야 한다. 특히 공연과 경연 등의 행사 프로그램은 진도의 정신과 혼이 들어간 행사로 바뀌어야 한다.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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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회동마을은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로 인해 제법 알려진 마을이 되었다. 28년간 축제가 계속되는 동안 회동마을 사람들의 역할은 초기에 비해 많이 축소되었으나 마을 사람들에게 파생되는 사회문화적 인식과 경제적 파급 효과는 컸을 것으로 보인다. 외국 언론의 역할은 축제가 활성화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축제가 지속적으로 개최되기까지 회동마을, 진도군청, 지역인사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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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리(龍藏里)하면 한자로 용을 품는다 또는 감춘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용은 예로부터 임금을 상징하는 말이다. 한양도성에서 천리 먼 길 떨어진 이곳이 이런 이름을 갖게 된 데에는 필시 곡절이 있을 것이다. 군지에는 1772년 남양홍씨가 처음 입향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995년(성종 14)에 진도군을 옥주군(沃州郡)으로 개칭하였다가 1018년(현종 9)에 옥주를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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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리(龍藏里)는 현재 행정구역상 진도군 군내면 속해 있다. 용장리는 법정리이며 동시에 행정리이기도 하다. 용장리는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기왕의 용장리에 세등리 일부를 병합하여 군내면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용장리는『호구총수』(1789)의 기록에 의하면 진도군 군내면(郡內面) 27개 마을 중의 하나였다. 이 자료에는 용정리(龍井里)로 마을 명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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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에 관련된 기술 내용은 『지명총람』(진도군)과 용장마을에서 제작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며, 용장마을 이장인 곽재설(남, 64세) 씨와의 직접 면담조사 및 현장조사를 통해 작성되었다. 관청골[골] 삼별초 당시 삼별초군의 관공서가 있었다고 한다. 구서당터[鄕校] 진등 지나서 있는데, 옛날에 향교와 서당이 있었다고 한다. 노시난골[골] 고려장이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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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오룡장주(五龍藏珠), 오룡재주(午龍爭珠) 이야기 옛날부터 군내면 용장리 경내는 오룡이 장주(藏珠)하고 있는 명당 중의 명당이었다고 전해오고 있었다. 약 200년 전에 일지승(一指僧)이란 이름난 도승(道僧)이 있었는데 나이가 들어 진도로 들어왔다가 노환이 생겨 진도읍내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곤란한 지경에 빠졌는데 모두 못 본 척하였다. 그러나 조그마한 여막(旅幕) 집을 경영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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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수와 인구수는 표1 과 같이 여느 농촌과 다름없이 꾸준히 감소했다. 1968년에 134가구였으나, 37년 만에 54가구가 감소하여 2005년 현재 80가구(주민등록상)가 거주하고 있다. 최근 10년간은 감소 추이가 둔화되고 있으나, 여전히 줄고 있다. 가구수 감소와 비례하여 마을 인구도 대폭 감소하여 1968년에 688명이었으나, 522명이 감소하여 2005년 현재 166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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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용장리의 운영 조직 -그림- 용장리 운영의 조직 구조 -그림-과 같이, 이장은 개발위원회와 경로회, 상수도를 직접 관리하고, 이장의 지휘를 받아 (새마을)지도자가 부녀회와 상도회를 운영하고 있다. 용장리는 1991년 1월 1일에 8장 28조로 제정된 ‘마을 규약’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2) 마을 총회(동계) 동계는 매년 12월 25~30일에 개최된다. 동계에서는 1년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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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2년 당시의 동안(洞案)으로 보면, 박씨 36가구, 곽씨 20가구, 홍씨 16가구, 김씨 10가구, 조씨 6가구, 양씨 6가구, 하씨 5가구, 이씨 2가구 등 총 101가구였다. 2005년 12월 현재 행정상의 기준인 75세대를 대상으로 성별 세대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장 많은 성씨 순으로 정리하면, 박씨 29세대, 곽씨 21세대, 조씨 8세대, 김씨 6세대, 고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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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밀양박씨와 무안박씨로 나누어져 있는데, 무안박씨는 4가구이고, 나머지는 밀양박씨이다. 그러므로 박씨는 거의 대부분 혈연관계라고 할 수 있다. 곽씨는 장파와 중파로 나누어지는데, 거의 절반 정도 된다. 조씨는 창녕조씨이고, 김씨는 김해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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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까지만 해도 고군면과 군내의 인접 마을에서 또는 마을 내에서 혼인이 많이 이루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반촌이었던 용장리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민촌과의 혼인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마을에서 이루어지는 혼인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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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리와 관련된 주요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 밀양박씨(密陽 朴氏): 곽윤배(郭允培)[본관 현풍]의 처로 청상과부가 되었으나, 수절하면서 자식들을 잘 키워 집안을 일으켰다. 열녀로 칭송되어 동리에 비가 세워졌다. 군내면 세등치에 있는 삼강비에도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 조극현(曺極鉉) : 본관은 창령(昌寧)이고, 호는 해농(海農)이다. 1936년 2월 20일 용장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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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지침 : 용장리는 마을 주민의 삶의 지침을 다음과 같이 4가지로 정리하여 마을 회관에 게재하였다. ①경노·효친을 우선합니다. ②서로 사랑하며 친절합니다. ③모범인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④마을일에 헌신 참여합니다. ◦ 상도계(喪徒契) : 용장리에는 6개의 상도계(喪徒契)가 반별 등을 기준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마을 구성원이 점차 감소하고, 각 상도계들이 각자 운영되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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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리 출신들로 타 지역 거주자들이 중심이 되어 구성한 향우회의 성격을 갖는 모임이다. 현재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도 가입되어 있다. 청년들로 구성된 모임과 장년들로 구성된 모임이 각각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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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리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놀이는 윷놀이다. 농한기에 시간이 나면 모여서 하는 편인데, 주로 60대와 70대가 참여한다. 게이트볼을 활성화하기 위해 구장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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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보면, 무종교인이 많다. 용장교회가 1950년대에 건립된 용장교회의 영향으로 기독교도가 16가구이다. 불교도는 7가구에 달한다. 유교와 관련된 사우재실(祠宇齋室)로는 현충락씨 64위가 안치된 은모사(恩慕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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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서당터’라는 지명이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마을에 유서 깊은 서당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제 하에서의 서당 교육은 파악할 수 없으나, 해방 뒤에는 마을의 서당이 있었다. 야학은 공식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1955년과 1956년에 동네 사람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주는 활동이 있었다. 초등학교는 처음에는 주로 군내초등학교를 다녔다. 한국전쟁 이후 고군면에 오룡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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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용장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좌익에 의한 학살과 우익에 의한 학살이 모두 발생했는데, 사망자가 백 수십 명에 달했다. 좌익에 의해 희생된 마을 사람들 83명을 추모하는 ‘오호순국지혼(嗚呼殉國之魂)’비가 1951년 10월 마을 입구에 건립되었다. 우익에 의해 희생된 숫자는 30~40명 정도 된다. 이로 인해 마을 사람들은 한국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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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쌀을 재배하는 논농사의 경우 휴경 농지를 신청하는 가구수가 늘어나고 있고, 이에 비례하여 경작 면적도 감소 추세이다. 밭농사는 고추, 배추, 대파를 주로 재배하고 있는데, 2004년의 경우 평당 판매가가 폭락하여 재배 작물을 폐기하거나 헐값으로 매도하였다. 1968년에 실시한 마을조사에 의하면, 취업자 산업활동 인구를 대상으로 할 때 농업·임업·수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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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지면적은 2005년을 기준으로 300㏊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논이 55.3㏊, 밭이 53.8㏊, 임야가 190.9㏊로 구성되어 있다. 경지정리는 1990년에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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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목반은 없고 용장영농회가 있다. 용장영농회는 동진농협 소속으로 농업에 종사하는 마을 사람 전체가 가입되어 있다. 영농회 회장은 이장이 겸직을 한다. 영농회 활동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받아서 1992년 1월 28일과 1998년 2월 12일에 동진농업협동조합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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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수지 : 1969년 11월 20일에 마을 저수지인 용장제가 준공되었다. 용장제는 마을 동편에 위치해 있다. 몽이 면적이 15㏊이고 저수량은 45,060t이다. 농업용수로는 4월, 5월, 7월에 군내면 차원에서 또는 마을 차원에서 청소 및 정비를 하고 있다(2005년 기준). 2005년 5월 19일에 마을의 숙원사업이던 기존 용수로 철거 및 확장 신설 사업(저수지에서 큰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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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농업은 농기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농기계는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것과 농기계를 소유한 사람이 일정한 금액을 받고 관련 농사를 대신해 주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농기계를 임대하여 농사를 짓는 경우, 군내면의 공시 임대 가격을 준수하고 있다. 2006년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경지면적 100평당 쟁기의 경우 밭 전용은 15,000원, 논 전용은 10,000원, 로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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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에 마을회관 1층에 동진농협용장영농회구판장이 개설되었는데,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생필품 구입과 판매는 주로 오일시장, 진도읍장, 우수영장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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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로 : 용장리로 진입하는 도로는 801번 지방도이다. 18번 국도와 연결되어 용장산성 내부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마을 안길의 도로는 차량 통행이 힘들 정도로 좁다. 최근 마을 안길 흙담을 철거하고, 블록 담을 개축하고 있다. ◦ 교량 : 교량으로는 용장교(龍藏橋)가 있다. 용장교는 도로 벽파선(碧波線)에 놓여 있다. 1925년에 혼응토조(混凝土造)로 도로 확장과 동시에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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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마을은 역사와 유래가 깊은 마을이며 현재에도 70가구 이상이 거주하고 있는 비교적 큰 마을이다. 주민들의 주요소득원은 벼농사와 대파, 월동배추 재배 등 농업이기 때문에 주민들의 생활도 농사 주기에 맞추어져 있다. 마을주민들이 공동으로 하는 행사로는 망제, 경로잔치, 동계가 있다. 망제는 음력 1월 14일에 마을의 안녕과 농작물이 잘 자라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지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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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장 담그기 음력 11월에 메주를 쑤어 띄워 놓았다가 1월에 장을 담는다. ○ 빚 갚기 구정 설이 되기 전에 빚을 갚아야 한다고 하여 섣달에는 빚 정산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 설점치기 12월에 눈이 많이 와야 이듬해 농사시절이 좋다고 하였다. (3) 생업력 월동배추, 봄동, 대파를 출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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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출향형제 귀향 좌담회 정기적인 행사는 아니지만 2005년 2월 8일 설을 쇠려고 귀향한 출향인사들과 좌담회를 벌였다. 마을의 유래와 역사적 변천상황, 유물유적, 리정현황, 마을의 발전방향 등을 보고하고 출향인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 망제(들제) 용장마을에서는 음력 1월 14일 밤 11시에서 새벽 1시 사이에 망제(望祭)를 지낸다. 망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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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정기적인 행사는 아니지만 농삿일이 한가한 이 달에 관광을 가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돈을 내기도 하고 마을기금으로 다녀오기도 한다. (2) 세시풍속 ○ 하루달날(하구달날) 옛날에는 이날도 차례상을 차리는 집이 있었다. 이날은 사람날이라고 하여 잘 먹고 놀았다. 또한 손끄스럼 지진다고 하여 콩을 볶아 먹었다. 그리고 짚벼늘 속에 콩을 넣어두면 그해 농사가 잘 된다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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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경로잔치 용장마을에서는 농사일이 바빠지기 전인 4월 초에 마을 어른들을 모시고 경로잔치를 한다. 부녀회에서 음식을 장만하고 밴드를 불러 흥겹게 노는 자리이다. (2) 세시풍속 ○ 삼짇날 삼짇날은 제비가 돌아오는 날로 인식되고 있다. ○ 한식 이 때 산일을 하면 탈이 없다 하여 이장을 하거나 묘를 손질하고 개사토를 한다. (3) 생업력 대파를 옮겨 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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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면민체육대회 면민체육대회는 군내면민들의 체육행사이다. 이 행사에 용장마을 주민들도 참여하여 이웃마을 주민과 경쟁을 하면서 단합심을 키우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매년 5월에 치러지지만 올해에는 지방선거 때문에 6월에 했다. (2) 세시풍속 ○ 사월 초파일 불교인은 이날 연등을 달고 절에 간다. 용장마을 사람들은 주로 마을에 있는 용장사를 찾는다. (3) 생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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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단오날 이날은 ‘오만 풀잎은 다 약이 된다’고 하여 익모초, 인동초, 설모초, 쑥, 녹음방초 등 여러 가지 풀잎을 뜯어서 말렸다. (3) 생업력 망종 즈음에 만생종 벼의 모내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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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산제(충제) 2005년까지 음력 6월 1일에 충제를 지냈다. 충제를 지내는 시간은 밤 11시 이후로 정월 보름에 지내는 망제와 같다. 충제는 병충해를 막기 위해 지내며 장소는 용장마을 뒷산에 위치한 도신난굴이다. 충제를 지내는 날에는 온 주민이 들일을 하지 않고, 빨래하는 것도 금지하는 등 노는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에는 지내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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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백중 예전에는 백중날도 차례를 지냈다. 이 날은 도랑신네가 백가지 곡식을 정하는 날이기 때문에 논밭에 나가면 안 된다고 하였다. 백중날 여자들은 마당 넓은 집에서 강강술래 등을 하면서 놀았다고 한다. 지금은 백중을 쇠는 집은 없다. ○ 벌초하기 음력 7월 1일부터 벌초를 하기 시작하여 추석 전에 마무리한다. (3) 생업력 이달에는 고추와 옥수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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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추석노래자랑콩쿠르대회 추석날 밤에는 주민들이 모여서 콩쿠르대회를 했다. 중단된 지 10여 년이 되었다. (2) 세시풍속 ○ 성주고사 농사를 지어 첫 방아를 찧으면 손 없는 날을 택일하여 성주동우에 쌀을 담는다. 성주동우의 쌀은 함부로 하기가 조심스러워서 시장에 내다 파는 집이 많았다고 한다. ○ 추석 추석에는 타지에 나가 있던 일가친척이 모두 모여 햇곡식으로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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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없음 (2) 세시풍속 ○ 중구날 중구날에 산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하여 이날 묘지를 손보는 집이 있다. (3) 생업력 만생종 벼는 이달에 수확한다. 벼를 수확하고 난 논에 봄동을 심는다. 이달에도 대파 출하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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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시제모시기 10월에는 집안별로 시제를 모신다. 용장마을에는 많은 수의 재각이 있는데, 훈효사(현풍곽씨 25세손), 은모사(현풍곽씨 27세손), 숭효사(현풍곽씨 27세손), 남지사(무안박씨 25세손), 엄지사(무안박씨 26세손), 영추사(밀양박씨 청재공파), 장성사(창녕조씨 19세손)가 있다. ○ 메주 쑤기 이달에는 메주콩을 삶아서 메주를 쑨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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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동계 매년 12월 21~31일에 동계를 개최한다. 동계는 마을정기총회로 1년간의 행사 실적, 재정결산, 사업계획, 입례(마을로 전입된 사람에게 받는 예절과 예품), 관례(지난 1년간 혼례를 치룬 사람에게 받는 예절과 예품) 들을 총 결산하는 모임이다. 매년 동계의 내용을 기록하여 보존하고 있는데 1772년부터 기록된 동계안이 보존되고 있다. (2) 세시풍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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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시아의 초원지대에서 성장한 몽고(蒙古)와 같은 유목민족의 가장 중요한 정복대상은 남쪽의 농경민족이었다. 농경민족들이 지니는 풍부한 생산품이 그 구미를 돋우어 준 때문이었다. 이리하여 금(金)·송(宋)과 함께 고려도 몽고의 침략 대상 가운데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금을 치고 남송(南宋)과 일본(日本)을 정복하기 위한 기지를 구하려는 목적도 몽고가 고려에 침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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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별초(三別抄)는 최씨 무인정권에 의해서 창설된 군사조직이었다. 야간순찰과 같은 공적(公的)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함이라는 게 그 명분이었다. 그 시초는 최씨정권의 제2대 집권자인 최이가 수도의 치안을 빙자해서 창설한 야별초(夜別抄)라는 특수부대였다. 무인의 일당인 악소(惡少)의 무리들이 날뛰지 못하도록 막아 그 정권을 공고히 할 목적에서였다. 이 야별초가 후에 소속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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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별초는 반개경정부(反開京政府) 그리고 반몽고(反蒙古)의 노선을 표방하며 거사하였다. 1270년(원종 11) 6월 초하루의 일이었다. 앞서 같은 해 5월 23일에 재상들이 회의에서 개경으로 환도할 것을 결정하자 삼별초는 그에 반대하며 반란을 일으킬 속셈을 처음 드러냈었다. “재추(宰樞)가 모여 옛 서울로 돌아갈 것을 의논하고 날을 정하여 방(榜)을 붙이니, 삼별초가 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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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의 삼별초정권은, 이를 나위조차 없는 일이지만, 반몽(反蒙)을 기치로 내세웠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배중손이 노영희 등과 더불어 변란을 일으키고서는, 사람을 시켜 나라 안에 외치기를 몽고 군사가 크게 이르러 인민(人民)을 마구 죽여 대니, 무릇 나라에 힘이 되고자 하는 이는 모두 격구장(擊毬場)으로 모여라’라고 하였다. 잠깐 동안에 나라 사람들이 크게 모여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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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의 삼별초정권이 조운로(漕運路)를 장악하자 개경정부의 재정상태는 곤핍을 극하게 되었다. 당장 시급한 군량(軍糧)조차 제대로 맞춰서 대줄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하루 빨리 진도 를 되찾는 것이 개경정부 존립의 관건이었던 셈이다. 원나라의 입장에서도 삼별초와 남송의 동맹을 방지하고 또한 일본을 정복하려는 야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진도 를 점령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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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에 도착한 삼별초는 곧바로 새 수도를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도성인 용장성(龍藏城)을 중심으로 그 주위를 둘러싼 용장산성(龍藏山城)의 안쪽, 즉 현재의 용장리 일원이 그곳이다. 여기에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주변의 고인돌 등으로 미루어 늦어도 청동기시대 즈음에 주민이 거주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후 삼국을 거쳐 고려와 조선에 이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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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덕병리는 덕저리, 떡저리, 또는 덕병이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건너편 금골산 남서자락의 용인리와 달마산 건너편의 한의리를 합쳐서 법정리명인 덕병리로 병합했다. 그러나 장승이 서있는 마을로 당산제를 모시는 곳은 바로 석장승이 있는 덕병마을이다. 1400년경 처음 마씨가 시거했고, 그후 밀양 손씨들의 증손들이 들어와서 퍼졌으며, 경주 최씨, 신안 주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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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병리는 현재 행정구역상 진도군 군내면 덕병리의 법정리이다. 또한 법정마을 덕병리의 행정리 명칭이기도 하다. 법정리인 덕병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기왕의 용인리(龍仁里)와 한의리(寒衣里), 덕병리 일부를 합쳐 이루어진 마을이다. 행정구역 개편 때 자연마을 덕병리의 일부는 둔전리(屯田里)로 병합되기도 하였다. 덕병리는『호구총수』(1789)의 기록에 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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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에 관련된 기술 내용은 『지명총람』(진도군)의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이병일(남, 76세, 덕병 노인회장) 씨와의 면담조사 및 현장조사를 통해 작성되었다. 이 항의 내용은 행정리로서 덕병리에 있는 지명만을 대상으로 기술하였다. 가심재[고개] 덕병에서 분토리의 분산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옛날에 전통혼례를 치르면서 가마를 타고 분산마을 쪽으로 넘어가야 할 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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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현재 덕병리는 102가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인구는 남자 108명, 여자 117명이다. 덕병리는 행정리로, 덕병마을은 물론 용인과 한의마을을 포함하고 있다. 이들 마을들은 백조도래지인 나리방조제를 둘러싸고 있다. 이곳 나리방조제를 막기 전까지 용인마을은 염전을, 한의마을은 김 양식을 많이 했던 어촌마을이었고, 덕병마을도 바지락과 낙지 잡이 등이 많이 이루어졌던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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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병리의 마을 임원으로는 이장, 개발위원, 청년회, 부녀회, 반장 등이 있다. 또 마을회의로는 연말결산총회 격인 동계, 이장이 필요시 개최하는 정기회의, 임원회의 등이 있다. 동계와 정기회의는 마을주민들 모두가 참석하는 것이 원칙이며, 임원회의는 마을원로, 반장(다섯 명), 노인회장, 부인회장이 참석한다. 마을 운영과 관련된 경미한 일은 대부분 임원회의에서 결정한다.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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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병리에는 설씨가 가장 먼저 들어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지금은 마을에 살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각성받이 마을로, 많을 때는 42개 성이 함께 거주했으며 지금은 20여 성씨가 마을을 이루고 있다. 각성받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동성으로 이루어진 마을보다 단결심이 더 좋아 군내면 체육대회 등에서 1등을 하며, 청년회를 당할 마을이 없다. 1970년대 조사된 자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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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앞에는 갯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이 조성되어 있었다. '솔목'이라고 부르는 이 방풍림은 어느 시기에 조성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소나무, 팽나무 특히 대나무가 많았다. 그리고 바다 쪽으로는 모래사장이 발달해 학생들의 대표적인 소풍 장소였고 놀이터였다. 이곳 방풍림을 지키는 일은 구장이 해야 할 가장 큰 일이었다. 나무가 귀하던 시절에 방풍림을 훼손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홍역을 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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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병리는 진도의 대표적인 갯벌이 있는 어촌마을이었다. 무안과 목포의 낙지잡이 전문가들이 와서 낙지를 잡아갈 정도였다. 고막, 바지락을 캐고, 운저리(표준어로는 문절망둑이 맞으나 이 지역에서는 운저리라 부름)을 잡아 읍내 장에 팔고 반찬을 하기도 했다. 일제시대 덕병에서 용인으로 잇는 원을 막았다. 그리고 2000년대에 덕병을 둘러싼 마을 한의와 내리를 막는 방조제가 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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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의 모든 원수는 저수지에서 취수하고 있으므로, 덕병리 역시 취수탑을 통한 취수형태를 취하고 있다. 진도군의 취수지는 4개의 수원지에서 취수가 이루어지고 있다. 회동수원지는 진도군 고군면 금계리에 위치하고 있고, 제방의 규모는 길이는 232m이고 높이는 24.5m이다. 시설용량은 861㎦이고 급수구역은 진도읍 지역이다. 녹진수원지는 진도군 군내면 덕병리에 위치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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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내면 덕병리에서 진도로 가는 옛길은 읍장을 가는 길과 동일하다. 마을 서쪽 솔갯재를 넘어 '이십오'와 '얼가리'를 지나 진도읍으로 통했다. 덕병에서 진도읍까지는 20리 길로 2시간가량 필요했다. 당시 초등학교는 모작굴을 넘어서 1시간가량 걸어가야 했으며, 중학교는 읍내의 진도중학교를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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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병마을은 마을 앞으로 넓은 들을 끼고 있는 농촌마을이다. 주민들의 주요 소득원은 벼농사와 밭농사 등 농업이기 때문에 주민들의 생활도 농사 주기에 맞추어져 있다. 주요 작물은 벼, 대파, 월동배추, 담배, 고추 등이다. 주민들은 기계화 등의 요인으로 인해 농사주기가 갈수록 앞당겨지고 있다고 하였다. 덕병마을은 아직도 마을 공동으로 하는 행사가 많다. 음력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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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행사 (2) 세시풍속 -설점치기 12월에 눈이 많이 와야 이듬해 비가 많이 와서 농사시절이 좋다고 하였다. (3) 생업력 월동배추와 대파를 출하하고 고추 모판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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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행사 -망제(望祭) 덕병마을에서는 음력 정월 14일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모시는 마을제사를 망제라고 부르고 있다. 제사를 모시는 장소는 세 군데로, 마을의 남서쪽에 위치한 당집(당할머니)과 마을로 통하는 삼거리(대지신과 객귀), 마을의 북쪽 끝 바닷가로 통하는 곳에 서있는 장승이다. 즉 망제는 당할머니제사, 거리제, 장승제를 포함한 명칭이다. (2) 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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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행사 (2) 세시풍속 -하루달날(음력 2월 1일) 옛날에는 이날도 차례상을 차리는 집이 있었다. 이날은 사람날이라고 하여 쌀밥 먹고 잘 노는 날이었다. 또한 손끄스럼 지진다고 하여 콩을 볶아 먹었다. 나락, 콩, 보리를 볶아서 툭툭 튀면 그해 곡식이 잘 여문다고 했다. 하루달날 먹는 칡은 약이 된다고 하여 이날 칡을 캐서 먹었다. -경칩 이날 올챙이를 먹으면 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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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행사 (2) 세시풍속 -삼질날 삼질날은 제비가 돌아오는 날이라고 알고 있으며, 이날 시제를 모시는 집안도 있다. -한식 이때 산일을 하면 탈이 없다 하여 이장을 하거나 묘를 손질하고 개사토를 한다. (3) 생업력 이달에 대파 못자리를 만들고 이달 말부터 5월까지 대파를 옮겨 심는다. 조생종벼의 경우 4월 초에 볍씨를 담그고, 만생종벼의 경우에는 4월 20일 이후에 볍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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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행사 -경로잔치 매년 5월 어버이날 근경에 65세 이상 노인들을 공경하는 의미에서 경로잔치를 벌인다. 마을회관에서 음식을 푸짐하게 장만하여 먹고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 (2) 세시풍속 -4월초파일 불교인은 이날 연등을 달고 절에 간다. 일반인들은 휴일이기 때문에 놀러가는 날이다. (3) 생업력 이달에 대파를 옮겨 심고 조생종벼의 경우에 5월 10일경에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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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행사 -면민체육대회 면민체육대회는 군내면민들의 체육행사이다. 이 행사에 덕병마을 주민들도 참여하여 이웃마을과 경쟁을 하면서 우의를 다진다. 매년 5월에 치러지지만 선거 등 특별한 경우에는 6월에 하기도 한다. (2) 세시풍속 -단오날 이날은 오만가지 풀잎이 다 약이 된다고 하여 풀잎을 뜯어서 말렸다. (3) 생업력 모내기를 하고 나면 바로 콩과 깨를 갈고 6월 10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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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행사 -충제 덕병마을에서는 음력 6월 1일에 충제를 지내는데, 지금까지 중단된 적이 없다고 한다. 충제를 모시는 장소는 마을 인근의 달마산에 있는 충제터이다. 음력 5월 말일 오전에 제관과 도움을 줄 마을사람들이 충제터에 올라가 차일을 치고 제물을 장만하여, 그날 밤부터 새벽까지 충제를 지낸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는 번거로움을 줄이기 위해 미리 마을에서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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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행사 (2) 세시풍속 -백중 예전에는 백중날도 큰 명절이었다. 이날은 도랑신네가 곡식 정하는 날이라고 하여 논밭에 나가지 않았으며 음식을 걸게 장만하여 먹고 차례상을 차렸다. 그리고 보리쌀을 맷돌에 갈아서 가래밥, 보리빵, 보리설편을 해먹었다. 지금은 백중을 쇠는 집은 거의 없다. -벌초하기 음력 7월 1일부터 벌초를 하기 시작하여 추석 전에 마무리한다. (3) 생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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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행사 (2) 세시풍속 -추석 추석에는 타지에 나가 있던 일가친척이 모두 모여 햇곡식으로 음식을 장만하고 송편을 만들어 차례를 지내고 조상에게 성묘한다. (3) 생업력 추석 무렵부터 조생종 벼를 수확하고 월동배추를 이종한다. 콩, 깨를 수확하고 마늘을 심는다. 이달에 해남에서 담배를 수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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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행사 (2) 세시풍속 -성주고사 농사를 지어 첫 방아를 찧으면 밥을 지어 제일 먼저 성주상에 차린다. 그리고 손 없는 날을 택일하여 성주동우에 쌀을 담는다. 성주동우의 쌀은 조심해서 밥을 지어먹거나 장에다 내다 팔았다. 한 제보자는 집안이 안 좋으려면 성주동우 쌀 색깔이 좋지 않다고 하였다. (3) 생업력 만생종 벼와 조를 수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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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행사 (2) 세시풍속 -시제 모시기 10월에는 집안별로 시제를 모신다. -메주 쑤기 이달에는 메주콩을 삶아서 메주를 쑨 후 짚으로 엮어서 메주를 띄운다. (3) 생업력 대파를 출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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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행사 -총회 매년 12월 말일에 결산총회를 한다. 총회에서는 1년간의 운영실적을 보고하고, 재정을 결산하고 새해 예산을 세우며, 이장을 선출한다. (2) 세시풍속 -동지 이날에는 팥죽을 쑤어 먹는다. 전에는 집안 곳곳마다 팥죽을 뿌리기도 했으나 지금은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김장 담그기 이달 중순경에는 김장을 한다. 배추김치, 동치미 등을 담아 겨우내 먹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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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마을로는 보기 드물게 북향을 하고 앉은 덕병마을은 앞쪽으로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수백년간 그 들판을 삶의 터전으로 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시사철 땀을 흘려왔는지 모른다. 농촌에 전해지는 속담에 따르면 2월 초하루면 농부가 썩은 새끼줄을 들고 뒷산에 목매달아 죽으러 오른다고 한다. 농사가 시작되는 철이면 농부들에게는 고행의 나날이 기다리고 있다. 한여름 뙤약볕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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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은 들에 나가면 농부요, 집안에 들어오면 부모이다. 그들은 애를 써서 들에서는 곡식을 키우고 집에서는 자식을 키우지만,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탄생과 성장은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에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연의 저 쪽에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이 있어서 그 힘에 의존하지 않고는 들판의 곡식도 집안의 자식도 제대로 키울 수 없다. 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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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정월 대보름에 덕병마을에서는 한해도 거르지 않고 동제를 모셔오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음력으로 정월 14일 제반 준비를 끝내고 저녁부터 시작하여 다음날 새벽까지 마을사람들이 합심하여 마을신들께 제사를 올린다. 전라도에서 동제를 부르는 가장 일반적인 이름은 당산제(堂山祭) 또는 당제(堂祭)이다. 그러나 이 역시 지역에 따라 구별이 되는데, 내륙지역은 당산제라고 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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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문화재의 도난이 커다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골동품의 값이 오르면서 문화재급의 유물들이 도심(盜心)에 노출되어버렸다. 예술품은 그렇다 치더라도 예전 같으면 경외의 대상이었던 신앙유물마저도 도난을 당하는 예들이 많다고 한다. 문중의 고문서는 말할 것도 없고, 사찰의 탱화나 묘 앞의 문인석 등도 문화재청에 도난신고가 된 예가 허다하다. 덕병마을에는 언제 세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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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제를 올리기 위해서는 제관을 뽑는다. 예전에 제주를 담아 제사를 모실 때는 약 5일 전에 제관을 선정하여 술을 앉히도록 하였지만, 지금은 소주를 사다 제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13일 경에 정한다. 요즈음은 2명의 제관을 뽑는다. 본래 3명이 맡았으나 사람들이 제관 맡기를 꺼리기 때문에 2명으로 줄였다. 매년 제관은 새로 뽑는다. 아무나 제관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을의 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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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제는 매년 정기적으로 모시기 때문에 정월이 되면 이장을 중심으로 망제를 올리기 위한 준비에 들어간다. 예전에 제주(祭酒)를 제관의 집에서 만들어 썼을 때는 최소한 망제를 모시기 5일 전부터 준비와 금기기간이 시작되었다. 제주는 몇 동이를 앉힌다. 제사를 지낼 때는 맑은 청주를 떠서 사용하고, 나머지는 망제 다음날 마을사람들이 모여 총회를 할 때 함께 나누어 마신다. 예전에 세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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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제를 모시기 위해 14일 아침부터 바쁘다. 이장을 중심으로 제사를 모실 곳을 청소하고, 필요한 설비를 하게 된다. 아침나절 마을 사람들이 모여 당집을 청소한다. 당집 주변과 당집 안을 깨끗이 쓸어 청소를 하고 금줄을 치고 황토를 깐다. 그리고는 거리제를 모실 마을의 삼거리길로 간다. 역시 주변을 청소하며 여기에 차일을 친다. 차일은 네 기둥을 세우는 대신에 바람이 통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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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제를 모시기에 앞서 마을에서는 굿을 치기 위해 농악대가 꾸려진다. 농악대에도 역시 스스로 깨끗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참여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굿물을 들고 농악을 치고 다녔지만 요즈음은 극히 소수, 때로는 3인 정도만이 참여하여 흉내만 낼 때도 있다고 한다. 초저녁부터 농악은 시작된다. 이때는 농악이 아니라 제례악으로서 굿물이 쳐진다. 우선 마을회관에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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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정월 14일 밤 10시경에 당집에서 당할머니에게 당제를 모셨다. 지금은 시간을 앞당겨 8시 30분경에 시작한다. 제물을 마련한 제관의 집에서 굿을 치는 사람들을 앞세우고 제물을 들고 당집을 향한다. 예전에는 당집 앞에 수령 250년 정도의 큰 팽나무가 있었는데, 태풍에 넘어져 죽고 지금은 가정집 담장 안에 당집만 남았다. 당집은 1평 정도로 시멘트집에 양철지붕을 하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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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집에서 제사가 끝나면 다시 제관 일행은 굿을 치는 사람들과 더불어 마을 앞 삼거리 길에 차일을 쳐둔 거릿제터로 향한다. 예전에는 이때 마을길 양쪽에 수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나왔으며, 길굿을 멋있게 치고 놀았다 하는데 요즈음은 구경을 나온 마을 사람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차일 속에는 거리신에게 바칠 제상을 차린다. 과일과 나물, 메와 국, 그리고 제주 등 간단하다. 거릿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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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의 일차적인 기능은 잡귀의 침입을 막는 것이다. 마을 입구나 사찰 입구에 세우는 장승은 나무로 만든 목장승과 돌로 만든 석장승이 있는데, 어느 것이나 일차적인 기능은 나뿐 액이나 잡귀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는 지역수호신적 역할이다. 덕병마을 역시 마을 사람들은 장승이 전염병을 막아주고 나쁜 귀신이 마을에 침입하는 것을 또한 막아준다고 믿고 있다. 장승의 목에는 이미 낮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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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제와 관련되어 그 영험을 물었더니 마을사람들 대부분이 복받은 사람은 없어도 해을 입은 사람은 많다고 대답했다. 궁극적으로 망제는 복을 받기 위해 모시지만, 그러기 위해서 더욱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뜻으로 올렸으며, 망제와 관련하여 몇 가지 구전이 마을에 전해오고 있다. 마을사람들에게 당할머니가 때때로 꿈에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망제를 더 이상 모시지 말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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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제가 끝난 후, 정월 대보름날 오전에 마을사람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마을총회를 연다. 이장을 중심으로 하여 마을의 일을 협의하고, 임기가 되면 새로 이장도 선출할 수 있으며, 특히 망제를 결산하게 된다. 총회를 하면서 나누어먹기 위해 음식을 다소 넉넉히 준비해둔다. 마을회관에 모인 사람들은 총회를 하면서 술을 한 잔씩 돌리고 준비된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50여년 전에 없어진 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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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절기의 마을신앙이 망제로 모셔진다면, 하절기에 모시는 마을신앙은 충제이다. 지금까지도 매년 제관을 뽑고 제물을 장만하여 음력으로 6월 1일이 되면 마을에서는 충제를 모셔오고 있다. 제관을 뽑을 때 생기복덕을 보아서 연령에 맞는 사람 중 두 사람을 제관으로 선정한다. 제관으로 선정되면 대문간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깔아 다른 사람의 출입을 금한다. 제사 비용은 마을자금으로 충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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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의 특이한 마을민속 중의 하나는 도깨비굿이다. 덕병마을 말고도 예전에는 많은 마을들에서 도깨비굿을 했던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도깨비굿은 정기적으로 하는 경우와 비정기적으로 하는 경우가 있다. 정기적인 경우는 매년 정월 14일날 밤에 행해지는 것이며, 비정기적인 경우는 전염병이 돌 때 하는 것이다. 마을에 따라서는 정기적으로 하는 곳도 있지만, 덕병마을에서는 전염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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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세로 보아 마을이 허한 곳과 강한 곳이 있다고 한다. 전통적인 풍수지리로 보자면 뒤에는 산이 자리잡고 앞으로는 물이 흐르는 배산임수가 전통적인 마을의 전형이다. 그리고 산들도 주산(主山), 진산(鎭山), 안산(案山) 등이 있어 마을을 보호한다. 마을의 뒷산이 좌청룡 우백호의 모습이면 더욱 좋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풍수지리적 요소들 중에 혹시 부족한 것이 있으면 인공물을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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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리는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에 속하는 지역으로서, 내가 비껴 흐르므로 비끼내, 또는 빗내라고도 하고, 이를 한자로 사천(斜川)으로 표기한 것이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사상리와 사하리, 논수동을 합쳐 지금의 사천리가 되었다. 진도읍에서 군도9호를 따라 왕무덤재를 넘어서, 논수동에서 좌측으로 군도15호를 따라가면 나오는 사천리는, 진도읍 남동방향으로 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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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리(斜上里)는 현재 행정구역상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에 속해 있는 마을이다. 사상마을의 법정리인 사천리(斜川里)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기왕의 사상리와 사하리, 영산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명명된 마을로, 이때 의신면에 편입되었다. 사상마을은 사천마을에서 분화되었다. 현재 사천마을은 ‘빗끼내, 빗내’로도 불린다. 『호구총수』(1789)에 보면 사천마을은 의신면(義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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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에 관련된 기술 내용은 『지명총람』(진도군)과 『사상마을지』를 기본 자료로 하여 작성하였고, 이희춘(남, 사상마을 새마을지도자) 씨의 도움을 받았다. (골 / 굴) 개락굴 사하리에서 사상리로 가는 중간쯤의 우측 산이다. 옛날에 어린이가 죽으면 이곳에 돌(독)담 장사를 지냈다. 거친들고랑 봉화골 입구 산길 북측 주변을 일컫는다. 굴등 사구지재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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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당산제에 얽힌 이야기 빗기내 당산제를 모시던 당산목은 수백 년 된 팽나무로 100여 년 전에 고목 밑부분이 썩어 바람에 쓰러져 고사되었다. 썩어 있던 팽나무에서 버섯이 나와서 최석 씨의 할아버지인 최광윤(당시 30세) 씨가 그 버섯을 따먹고 정신이 이상해져 ‘버섯 버섯’하고 다니다가 세상을 떴다고 한다. 그 자리에 다시 팽나무가 자라나 그 당산목에 해마다 제를 모신다. 그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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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수와 인구수는 (표 1)과 같이, 감소하기는 했으나 농촌의 일반적 추이에 비하면 완만한 감소라고 할 수 있다. 가구수는 1968년 조사에서는 79가구였는데, 2005년 현재에는 63가구(주민등록상)로 조사되어, 크게 줄어든 것은 아니다. 최근 10년 사이에는 거의 변화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구는 크게 줄었다. 1968년에는 463명이었으나, 313명이 줄어들어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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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을 총회(대동계) 대동계는 진도의 최고 의결기구이다. 대동계 의장은 마을 이장이 겸직한다. 회의는 매년 12월 22일 동짓날 개최되며, 1년 동안의 마을 수입금과 지출금을 결산 보고하는 것이 주요 안건이다. 또한 이 모임에서 새로운 이장을 선출한다. 2001년 이전에는 이장의 임기가 1년이었으나, 이후에는 2년으로 늘어났다. 이장세는 춘곡과 추곡 때 일정량의 보리와 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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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현재 총 15개 성씨 59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주요 성씨로는 무안 박씨(8가구), 신안 주씨(8가구), 김해 김씨(6가구), 진주 강씨(5가구), 원주 이씨(4가구), 밀양 박씨(3가구), 연안 차씨(2가구), 유씨(3가구), 동복 오씨(2가구), 기타 성씨가 18가구 이다. 과거에는 박씨와 주씨가 매우 많았으나, 점차 다성촌으로 바뀌었다. 성씨를 넘어 친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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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가 거주하고 있는 가구는 10가구로 오씨, 진씨, 박씨, 유씨, 이씨이고, 사촌간에 거주하는 가구는 7가구로 박씨, 강씨, 이씨이다. 5촌간에 거주하는 가구는 8가구로, 이씨와 차씨, 박씨이며 6촌간에 거주하는 가구는 2가구로 강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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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혼권은 특별하게 지역적 선택이나 차별이 없었다. 육지 사람들과 결혼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대부분 관내에서 이루어졌다. 같은 마을 내에서의 혼인관계를 맺고 사는 가구는 총 5가구이다. 이 마을로 시집을 많이 온 마을은 의신면 초사리, 망길리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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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운림산방과 남종화풍 화맥 진도에 있는 운림산방(雲林山房)은 소치(小痴) 허련(許練)[1808~1893]이 설치한 화실이다. 허련은 조선 말기 조희룡(趙熙龍), 전기(田琦) 등과 더불어 김정희(金正喜)의 문하에서 서화를 공부했다. 이를 통해 남종문인화의 필법과 정신을 읽혀 남종화풍을 토착화시킨 화가이다. 그는 1856년 운림산방을 개설하고, 제작활동에 몰두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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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도계: 진도에는 계(契)가 마을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계는 크게 ‘큰 상도계’와 ‘작은 상도계’로 나뉘어져 있었다. ‘큰 상도계’는 1931년에 처음 조직되었으며, 조직 당시 참여자는 김준홍 외 21명이었다. 한편 ‘작은 상도계’는 1972년 12월에 조직되었다. 참여자는 박두주 외 27명이었다. 1985년에는 김영봉과 박종두가 전입하여 가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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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인접한 이웃끼리 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놀이) 젊은 사람들이 많은 관계로 나이를 떠나 마을 사람들끼리 장기와 바둑을 즐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종교) 마을 사람들의 대부분은 무신론자이고, 쌍계사가 있기 때문에 불교 신자가 약간 있다. 기독교 신자는 2가구이다. 예전에는 단골이 있었으나, 요즘은 무속신앙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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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당 마을 단위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이었던 서당은 조선 말기 3대 한학자이자 진도의 최후 유배자인 무정 정만조(鄭萬朝)[1858~1936]가 소치 선생의 아들인 미산 선생의 청에 의해 훈장으로 부임하면서 개설되었다. 이 서당의 명칭은 관란제(觀瀾齊)라고 칭했는데, 이는 흐르는 물의 순리를 깨우친다는 뜻이었다. 관란제는 현재의 서당골에 위치해 있었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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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가 건립되기 전 한해가 빈번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 한국전쟁 전후 시기에는 첨철산에서 빨치산이 활동했다. 부역혐의로 경찰과 청년단에 의해 마을 사람이 몇 명이 죽었고, 공무원을 한 사람이 좌익에 의해 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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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에 실시한 마을조사에서 의하면, 취업자 산업활동 인구를 대상으로 할 때 농업,임업,수렵업 종사자는 남자가 122명, 여자가 123명으로 총 245명이었다. 서비스업 종사자가 남자 2명이었고, 거의 대부분 농업에 종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006년 2월 현재는 농가가 30가구, 비농가가 29가구로 크게 바뀌었다. 그리고 농업인은 82명이고, 비농업인은 36명이다.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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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면적은 575.5㏊이다. 논은 21.3㏊, 밭은 28.2㏊, 그리고 임야는 526㏊를 차지하고 있다.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해마다 바뀌기 마련인데, 2002년 7월에 조사된 결과를 통해 토지 소유형태를 살펴보면, 28농가가 밭 21.3㏊, 논 28.2㏊ 등 총 49.5㏊의 농경지를 경작하고 있다. 호당 경지면적은 1.77㏊(5,310평)으로 진도군의 호당 경지면적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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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목반 현재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가구는 7가구이다. 작목반은 구성되지 않았고, 재배를 많이 한 사람이 수합하여 출하하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구기자 재배 농가는 현재 12가구로 점차 감소하고 있다. 운림천 작목반을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1990년대 초부터 구기자 병충해(탄저병)가 돌기 시작하면서 수확량이 감소하고, 일손이 많이 필요해서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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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수지 : 1968~1969년경 한해가 들자 국비로 ‘사천제’라는 명칭으로 완공했다. 완공 이후 마을에서 운영했으나, 몇 해 되지 않아 홍수로 저수지가 훼손되었다. 저수지를 보수하기 위해서는 백 몇십만 원의 보수비가 필요했으나, 이를 부담하기 어려워 관리 및 운영권을 농조로 넘겼다. 사천제는 몽리면적이 31㏊이고, 92,228t을 저장할 수 있는데, 사천 제1저수지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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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까지 사천리는 자급자족의 생산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농업을 주업으로 했으나, 사람별로 특화된 생산을 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강월인은 기름 짜는 일을, 허문찬, 허수찬 형제는 솥을 수리하는 일을, 박두주는 방아를 찧는 일을, 박두주와 진만수는 리어커를 끄는 일을, 박남조는 비석 등 석물 제작을, 김태중의 모친은 두부 제작을, 유복산의 부친은 지게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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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은 진도읍 장날인 2일과 7일에 생산품을 판매하고, 소비품을 구입하고 있다. 의신면에도 1일과 6일에 장이 서기는 하지만 잘 이용하지 않는다. 도로가 놓이기 전에는 절재를 넘어 진도읍으로 갔으나, 경운기의 보급 이후 왕무덤재를 넘어 이동했다. 마을까지의 길이 포장되고 버스가 개통되면서 버스가 주요 이동수단이 되었다. 필요한 물품은 진도읍에 있는 농협연쇄점이나 대형 마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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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로 : 진도는 진도군의 초고봉인 첨찰산 기슭 서남쪽의 의신천 상류 하천을 따라 형성되어 있어서 비가 조금만 많이 와도 교통이 쉽게 차단되곤 했다. 교통난을 해결하기 위해 도로 개설과 관련된 부역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주요 도로는 ‘사천선(斜川線)’이다. 이 도로는 1940년에 개통되었는데, 논수동(論水洞)을 기점으로 하여 쌍계사(雙溪寺)를 종점으로 했다. 1982년 새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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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리 사상마을은 여느 마을에 비해 마을행사가 많은 편이다. 1월 1일 새해 해맞이 행사를 시작으로 음력 1월 15일에 열리는 정월대보름 세시풍속 놀이, 5월의 경로잔치, 추석날의 한가위 노래자랑, 12월의 동계와 김장 나누기 등 다채로운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이러한 행사들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데에는 사상마을 청년회와 새마을봉사대의 역할이 큰 것으로 보인다. 마을행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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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행사 -새해 해맞이 ▷일시 : 1월 1일 해 오르는 시각 ▷장소 : 첨찰산 정상 사천리에 위치한 첨찰산은 진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매년 1월 1일,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새해 첫날의 해돋이를 구경하며 한해의 소원을 기원한다. 2005년 1월부터 사상마을 새마을봉사대원을 중심으로 이곳을 찾는 관광객에게 구기자차, 떡국, 돼지고기를 대접하는 행사를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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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행사 -정월대보름 세시풍속 놀이 ▷일시 : 음력 정월대보름(음력 1월 14일~1월 15일) ▷장소 : 운림산방과 사상마을 일원 정월대보름인 음력 1월 14일부터 15일 양일간 치러지는 마을행사로 사상마을 새마을봉사대에서 주관한다. 행해지는 행사로는 당산제, 달맞이, 답교놀이, 쥐불놀이, 농악놀이, 용줄다리기, 전통혼례, 달집 태우기 등이 있다. 전통혼례, 용줄다리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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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행사 - 없음 (2) 세시풍속 -하루달날 음력 2월 1일에 예전에는 선영께 밥을 올렸으나 지금 그렇게 하는 집은 없다. 이 날은 산에 가서 칡을 캐다 먹는다. 그리고 또 콩을 볶아 먹는다. 전에는 정월보름에 세워두었던 유지지를 이때 철거하여 이것으로 콩을 볶기도 하였다. 콩을 볶을 때 “손 꺼시럼 지지자, 손 꺼시럼 지지자.”하며 콩을 볶는다. 만약 정월에 마을에 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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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행사 - 없음 (2) 세시풍속 -삼질날 삼질날은 제비새끼가 돌아오는 날로 인식되고 있다. 특별하게 행하는 의례는 없다. -청명, 한식 이 때 산일을 하면 탈이 없다하여 이장을 하거나 묘를 손질하고 개사토를 한다. (3) 생업력 이 달에 못자리를 한다. 볍씨를 담아 논에다 갖다 두고 비닐하우스를 씌운다. 그리고 모가 잘 자라도록 물을 준다. 이 달에 고추와 옥수수를 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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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행사 -경로잔치 ▷일시 : 5월 초 ▷장소 : 마을 복지회관 매년 5월 초에 마을 청년회와 부녀회에서 주관하여 경로잔치를 하고 있다. 돼지고기 등 음식을 장만하여 대접하고 합동배례를 하며, 국악인을 초청하여 공연을 하는 등 노인들을 위한 행사이다. (2) 세시풍속 -4월초파일 사상마을에는 쌍계사라는 절이 있어 매년 4월 초파일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 마을을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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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행사 - 없음 (2) 세시풍속 - 없음 (3) 생업력 이 달에는 주로 밭작물을 수확한다. 보리, 감자, 마늘, 양파를 수확한다. 이 달에 고구마를 심고 조를 파종한다. 모내기를 한 논에 돋은 풀을 제거하기 위해 제초제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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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행사 - 없음 (2) 세시풍속 -충제 지금은 중단되었으나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음력 6월 1일에 동네 앞산에 있는 바위에 음식을 차려놓고 충제를 지냈다. 농사지을 때 병충해가 없기를 기원하는 의례이다. -유두 유두에는 동쪽에서 흐르는 맑은 개울에 가서 머리 감고 목욕하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전한다. 이날 유두국수를 먹고 햇감자도 먹는다. 예전에는 각 가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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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행사 -없음 (2) 세시풍속 -백중 음력 7월 15일은 백중이다. 이날은 명절로 여겨졌으며 간단히 제물을 갖추어 조상께 차례를 모셨다. 또한 이 날은 집안일을 돕는 일꾼들에게 하루를 쉬게 한다 하여 ‘머슴날’이라 하였다. 백중날을 전후하여 농사일이 거의 끝나므로 호미를 씻어둔다고 하여 ‘호미씻이’한다고도 한다. 1960년대까지는 보릿가루를 반죽해 소다와 당분을 친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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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행사 -한가위노래자랑 ▷일시 : 음력 8월 15일 ▷장소 : 사천리 광장 및 운림산방 주차장 한가위 노래자랑은 매년 추석날 저녁에 행해지는 마을축제이다. 1989년에 제1회 한가위 노래자랑이 개최된 이후로 한 번도 빠짐없이 지속되고 있다.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은 친지들과 주민들이 함께 어울려 노래와 장기자랑으로 즐겁고 흐뭇한 시간을 보낸다. 행운권 추첨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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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행사 - 없음 (2) 세시풍속 -중구날 사상마을에서는 중구날에도 산일을 한다. 이날 산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전하기 때문이다. -이엉 얹기 지금은 초가집이 없지만 1960대까지만 해도 초가집이 많았다. 그래서 이달에는 이엉 얹기가 중요한 세시행사였다. 볏짚을 엮어서 마람을 엮어 새로 지붕을 얹는 것이다. (3) 생업력 이달에는 전달에 이어서 구기자를 수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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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행사 -효도관광 2004년부터 11월에 사상새마을봉사대에서 행사를 주관하여 사상리 경로당 회원을 대상으로 효도관광을 다녀오고 있다. 2004년에는 대전, 온양, 양산, 사천시 등을 관광하였다. 이 행사는 진도군의 시책인 ‘노인공경군’ 방침에 따라 진도군에서 일부 지원금을 받기도 했으며 독지가의 후원을 받기도 했다. (2) 세시풍속 -시제 모시기 10월 상달이 되면 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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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행사 -총회(대동계) 매년 12월 22일 총회(대동계)를 개최한다. 대동계는 마을의 최고 의결기관으로서 이장이 의장이 되어 회의를 진행한다. 1년간의 마을의 수입금과 지출금을 보고 결산하고 새로운 이장을 선출한다. -김장 나누기 사상마을 새마을봉사대와 부녀회에서 주관하며, 연말을 맞이하여 독거노인 가구 및 진도 기상대에 김장김치를 전달하는 행사이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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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시대인 오늘날 우리 삶에 있어 그림과 글씨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중국 춘추시대 대사상가로 유교의 개조인 공자(기원전 551~479)는 종이가 발명되기 훨씬 이전『논어』에서 ‘흰 바탕을 칠한 뒤 그림을 그리는 것[繪事後素]’을 이야기했고 『주례(周禮)』에서도 ‘무릇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을 칠한 뒤에 한다[凡畵繪之事後素功]’는 언급이 보인다. 새하얀 종이와 검은 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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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류의 오랜 역사가 증거하듯 영원한 승자는 없다. 그것은 마치 유아기에서 노년에 이르는 인체의 변화와도 다를 바 없다. 어느 시대나 그러하듯 번성이 있으면 절정에 이어 쇠락이 따른다. 조선왕조의 끝자락인 19세기 후반부터 1910년까지 60년 남짓한 시기를 미술사학자들에 따라서는, 3분법에서는 18세기와 함께 후기에 포함시키거나, 세분한 4분법에서는 조선 말기 화단으로 분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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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확인되거나 알려져 있던 화단에서의 명성과는 별개로 조선 말기 화단에 있어 새롭게 조명된 매우 긍정적이며 값진 연구 성과와 업적의 예로 김수철과 홍세섭의 발굴을 들 수 있다. 이들에 대해선 일찍이 해방 후 한국미술사 연구의 일세대로 한국미술사 특히 회화사에 있어 전통적인 감식안(鑑識眼)을 바탕으로 초석을 세운 최순우(崔淳雨)[1916~1984], 이동주(李東洲)[19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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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련의 한 세대 후배이면서 상반된 성격이지만, 조선 말기 화단에서 중앙에서 활동이 두드러진 장승업은 조선왕조 전체를 통해 뽑힌 3대 화가 중의 한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에 큰 반대가 없긴 하지만, 이와 같은 오원 신화에 대해 이견이 없는 바는 아니다. 불과 백 여 년 전에 활동한 화가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그리 자세한 편은 아니며, 꽤나 신비화된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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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은 깊은 산중에 있어 매번 봄이 가고 여름이 다가올 무렵이면 푸른 이끼는 들에 깔리고 떨어진 꽃은 길바닥에 가득하다. 사립문에는 사람 발자국 소리가 없고 소나무 그림자는 길고 짧으며 새 소리는 오르내려 낮잠도 만족한다. 이윽고 샘물 길어와 솔가지 주어다 차를 다려 마신다. 생각나는 대로 주역, 국풍, 좌씨전, 이소, 태사공서와 도연명과 두자미의 시, 한유와 소식의 글 수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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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련의 긴 화맥은 제자와 집안의 대물림으로 오늘에 이른다. 이런 점에서 다른 지역과 구별된다. 남도라는 지역과 조선 말기라는 지리적,시간적 범위를 넘어 20세기 근,현대로 이어진다. 대원군에게서 미방(米舫)이라는 호를 하사받은 김익로(金益魯)[1845~1915]는 소치와 초의에게 그림을 배웠다. 소치의 넷째 아들 허형은 일찍 타계한 형의 호인 미산(米山)을 물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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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전통회화의 바른 이해에 있어 넘어야 할 산과 선결되어야 할 어려운 점은 한 둘이 아니다. 이 중에서도 힘든 난제의 하나는 우리의 단절되고 달라진 미감에 대한 인식이다. 문인화 이해의 코드이기도 한 격조와 기량의 상관관계를 들 수 있다. 시차에 따른 사고와 심미안의 차이는 잠시 논외로 하더라도 격조라 하는 것은 기실 가시적으로 표현되어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에, 화가의 내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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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시마을은 진도군 서남부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석교리의 한 마을로, 절대적 위치는 남위 34도 24분 38초와 동경 126도 11분 29초 지점(마을회관)에 해당한다. 임회면과 지산면의 경계지점으로 임회면에서는 서쪽의 중앙지점이고, 동쪽의 지산면에서는 서쪽 끝 경계지점에 위치한다. 십일시마을은 진도군에서 남쪽 팽목항으로 이어지는 18국도를 따라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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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시마을은 현재 행정구역상 진도군 임회면 석교리에 속해 있다. 석교리는 본래 진도군 임이면(臨二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돌다리가 있다고 하여 독다리, 또는 석교로 불렸다. 『호구총수』(1789)에는 석교리가 임회면(臨淮面)에 속하며, 상석교리(上石橋里)와 하석교리(下石橋里)로 나누어져 있다. 또한 석교의 지명과 관련된 석교장(石橋場)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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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장터[시장]:새장터가 형성되기 이전의 장터로, 새장터가 생기면서 구장터로 부르고 있다. 현재도 새장터와 함께 4일과 10일에 장이 선다. 콧대바위[산]:봉화산을 달리 이렇게도 부른다. 봉화산의 정상에 바위무더기가 있는데, 바위를 아우른 산의 형상이 사람의 콧대처럼 생겼다고 붙인 이름이다. 봉화산[산]:십일시마을 서쪽에 있는 산으로, 학교까끔 뒤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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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회면 십일시마을은 석교리에 포함된 행정리의 하나이다. 석교리는 십일시, 고방, 석교, 구분실을 포함한 법정리의 명칭이다. 따라서 석교리라는 명칭은 때로는 행정리로, 때로는 법정리로 사용되고 있다. 십일시마을은 임회면의 중심지이자, 면소재지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마을이다. 1968년에는 106가구였으나, 2005년에는 188가구로 가구수가 늘어났다. 일반적인 농촌마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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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을총회(동계) 십일시리는 동계와 마을총회가 하나로 운영되고 있다. 동계의 정기회의가 곧 마을총회인 것이다. 동계는 1926년에 마을 경조사를 함께 치르기 위해 처음 결성되었으나, 기록은 1947년부터 남아 있다. 각지의 상인을 비롯하여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십일시시장으로 모여들었고, 이들 가운데 나정순외 53명이 동계를 조직했다. 동계의 회칙 중에 시대적 흐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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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시마을은 1890년경 밀양손씨 손화삼이 임회면 연동에서 거주하다가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현재 이 마을에 거주하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많은 성씨는 밀양박씨, 김해김씨, 경주이씨, 전주이씨 등이고, 이외에 강씨와 장씨, 최씨가 있다. 밀양박씨가 전체 성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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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시마을에는 수대를 거주한 토박이가 거의 없다. 오랫동안 거주했던 사람들도 2~3대에 불과하다. 장사를 목적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모여 십일시마을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을 내에서 혈연 혹은 친척관계가 그다지 형성되어 있지 않다. 이로 인해 다른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형제끼리 계를 하는 사람들은 있으나 마을에서 형제계를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약 20가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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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진도군 내에서 이루어졌는데, 특히 지산면과 임회면이 많다. 포구를 끼고 있어 조도면 사람과의 결혼이 다수 성사되었다. 해남사람과의 결혼이 이루어지기는 했으나 그다지 많지 않다. 그래서 가까운 인근 지역 거주자끼리 사돈관계를 맺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정 지역과의 결혼이 금지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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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시마을은 인근 주변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출신지역별로 계를 하고 있다. ‘지산면계’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현재 남자 11명, 여자 10명을 회원으로 하고 있는데, 남자계는 1990년대 중반에 조직되었고, 여자계는 2001년에 조직되었다. 이 계의 결성목적은 친목도모와 목돈마련, 경조사 챙기기 등이다. 남자는 일년에 한 번, 여자는 두 달에 한 번 모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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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6 그룹의 친구관계가 있다. 친분이 돈독한 사람끼리 모이는데, 나이는 고려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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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명으로 배구동우회를 결성하여 종종 배구를 하고 있다. 한때 당구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근래에 들어서는 대부분의 당구장이 폐업을 할 만큼 당구를 즐기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윷놀이는 명절 때나 마을에 초상이 났을 때 가끔 이루어진다. 2005년에 게이트볼경기장이 완성되었으나,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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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교리에는 본래 4개의 교회가 있었으나, 현재는 석교중앙교회, 임회제일교회, 제칠일안식일석교교회가 있다. 십일시마을에는 석교중앙교회가 위치해 있다. 교회는 많지만 기독교인은 많지 않다. 천주교회인 석교 공소가 1985년 10월에 신축, 축성되었으나 지산면과 통폐합되었다. 유교와 관련한 석교리의 사우재실(祠宇齋室)로는 밀양박씨 휘식 36위가 안치된 모충사(慕忠祠)와 밀양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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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시마을에 거주하는 어린이들은 대부분 석교초등학교를 다닌다. 석교초등학교는 1919년 11월 15일에 석교공립보통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아 개교했다. 1909년에 개교한 진도초등학교에 이어 진도에서 두 번째로 설립된 학교이다. 십일시마을에는 1964년 12월 19일에 설립된 석교중학교가 있으며, 1982년 3월 10일에 설립한 석교고등학교가 있다. 많은 학생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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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시마을은 면소재지이기 때문에 다섯 군데의 의약시설이 있다. 병원시설로는 임회보건지소가 있고, 1990년대 초에 개원한 그린의원과 2005년에 개원한 전남의원이 있다. 약국으로 매정약국과 구분실한약국이 있다. 진도군에 있는 총 11개의 약국 가운데 2개가 십일시마을에 있다는 점과, 진도읍 이외에 개원한 총 5개의 병원 가운데 2개가 십일시마을에 있다는 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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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현재의 시장터는 1962~1963년경 지산면과 임회면 사람들이 부역으로 제방을 쌓아 만들었다. 그전의 시장터는 현재 상가들이 들어서 있던 곳이다. 시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시장터의 면적을 넓히기 위해 제방을 쌓은 것이다. 새롭게 장터가 마련되면서 시장이 크게 번성했는데, 마을에 텔레비전이 보급될 무렵인 1970년대 중반에는 시장을 보러온 사람들이 많아 걸어다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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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에 이루어진 조사에 의하면, 십일시마을의 취업자는 총 275명이었다. 취업자 가운데 남자는 131명, 여자는 144명이었다. 농업,임업,수렵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127명으로 남자가 50명, 여자가 77명이었다. 전기,가스,수도,위생시설 서비스업 종사자는 53명으로, 남자가 30명, 여자가 23명이었다.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79명으로, 남자가 36명, 여자가 43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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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시마을의 전체 경지면적은 논이 22.2㏊, 밭이 23.4㏊로 총 45.6㏊이다. 그리고 임야가 222.2㏊이다. 십일시마을 내에 포함된 경지면적은 적으나 농업종사자가 많은 이유는 소포만 간척지에서 농사를 짓기 때문이다. 실제로 십일시마을 거주자의 다수가 소포만 간척지에 농지를 소유하고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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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상가번영회와 시장연합회 등이 결성되어 활동을 했으나, 상가번영회는 1990년 이전에 해체되었고, 시장연합회는 활동을 중지했다. 농업인은 있으나, 작목반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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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과 장옥:간척사업을 통해 현재의 장터[석교리 245-1번지]가 개설된 것은 1964년 10월 1일이었다. 부지면적은 2,937㎡이고, 매장면적은 396㎡이다. 이때 시장 내의 상설점포수는 12개였으나, 현재에는 3곳만 영업하고 있다. 장터의 장옥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러나 인구가 감소하고 교통이 좋아지면서 상인과 소비자가 점차 감소하고 있다. 상가:영업 중인 상설점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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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절한 수원의 공급이다. 십일시마을에는 저수지가 없다. 이 때문에 마을사람들은 농사와 관련한 물을 간척지의 중간에 흐르는 담수와 수장동 저수지에서 공급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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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십일시마을에 형성된 장시는 10일에 한 번씩 열렸으나 장시가 번성하면서 4일에도 장이 열린다. 장이 번성한 이유는 임회면과 지산면, 조도면 사람들이 주로 이 시장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이곳 주변 사람들에게 진도읍시장은 거리가 멀뿐더러 교통도 불편했다. 따라서 외부에서 상인들이 많이 들어왔고, 우시장도 크게 번성하여 시장의 발전을 촉진했다. 그러나 농업의 기계화로 우시장이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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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량:십일시마을에는 총 3개의 다리가 있다. 가장 중요한 다리는 십일시교로 1932년 진팽선(珍彭線)에 놓였다. 연장 36m, 교폭 6m의 혼응토조로 건설되었다. 이 다리는 한동안 십일시마을과 진도읍을 연결하는 유일한 다리였다. 1994년에 새로 건설된 다리는 본래 다리가 있던 곳에서 약간 옆으로 이동하여, 연장 30m, 교폭 10.5m로 개축되었다. 또다른 다리는 홍수가 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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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시마을은 장터상인들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진 마을이다. 그러므로 마을사람들에게는 장이 서는 4일(4일, 14일, 24일)과 10일(10일, 20일, 30일)이 가장 활기있는 날이다. 따라서 일년이나 한달을 주기로 움직이는 여느 마을과는 달리 장이 서는 4일과 10일을 주기로 순환되는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일장과 십일장 중에서 역사가 더 오래된 십일장이 현재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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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장담그기 음력 11월에 메주를 쑤어 띄워놓았다가 1월에 장을 담는다. ⑶ 생업력 이달에 대파와 월동배추, 봄동을 출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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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설날(음력 1월 1일) 설날에는 차례를 지낸다. 십일시마을에서는 섣달 그믐날 밤 12시가 넘어서 차례상을 차리는 집도 있고 설날 이른 아침에 차례상을 차리는 집도 있다. 차례상을 차리는 시간은 집집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고 한다. 차례음식은 일반 기제사와 같은데 메 대신 떡국을 올린다는 점이 다르다. 일부 집안에서는 메와 떡국을 함께 올리기도 한다.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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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하리드리날 옛날에는 이날 아침에도 차례상을 차리는 집이 있었다. 이날 아침 집안에 뱀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방비책으로 아이들이 앞에서 왼새끼로 꼬은 새끼줄을 끌고 가면 뒤따르는 아이들이 “뱀땔자, 뱀땔자.” 하면서 새끼줄을 쳤다고 한다. 또 이날에 손끄스럼이 일어나지 마라고 콩을 볶아먹었다고 한다. 하드렛날 먹는 칡은 약이 된다고 하여 이날 칡을 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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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정기적인 행사는 아니지만 부녀회나 노인회에서 주관하여 봄에 여행을 가기도 한다. ⑵ 세시풍속 -삼짇날 삼짇날은 제비새끼가 돌아오는 날로 인식되고 있다. 이날 흰나비를 보면 그해에 상자(喪者)가 된다는 말이 있었다. -청명, 한식 이때 산일을 하면 탈이 없다 하여 이장을 하거나 묘를 손질하고 개사토를 한다. ⑶생업력 4월 15일경 대파를 심는다. 조생종 벼의 경우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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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경로잔치 십일시마을에서는 2년에 한 번씩 경로잔치를 했으나 3년 전부터 중단하고, 5월 8일 어버이날 경로당에서 간단히 다과를 준비해서 노인들을 대접하고 있다. 이때 들어가는 비용은 마을기금에서 충당한다. 마을기금은 마을에 초상이 났을 때 운상계에서 ‘천돈’ 명목으로 받은 것을 적립한 것이다. ⑵ 세시풍속 -4월 초파일 불교신자들은 이날 연등을 달고 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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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단오날 이날 익모초, 쑥 등 여러 가지 풀잎을 뜯어서 말리면 약이 된다고 하였다. ⑶생업력 망종 즈음에 만생종 벼의 모내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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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유두 유두는 ‘노는 날’ 이라고 하여 밀개떡, 보리개떡을 만들어 먹고 놀았다. 이날은 도랑신네가 일년농사를 결정하는 날이어서 밭에 가면 안 된다고 했다. 예전에는 이날 차례를 지내는 집도 있었으나 지금은 유두를 쇠는 집이 없다고 한다. -복날 삼복에는 시집간 딸들이 복달음을 하기 위해 음식을 장만하여 친정을 찾기도 했다. ⑶ 생업력 이달에는 벼의 생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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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면민체육대회 8월 15일 근경에 면에서 주관하는 면민체육대회가 개최된다. 면민체육대회에는 임회면 사람들이 참여하여 축구, 배구, 달리기, 씨름 등 운동경기를 벌인다. 마을행사는 아니지만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여 단합심을 키우는 행사라고 할 수 있다. ⑵ 세시풍속 -백중 예전에는 백중날도 차례를 지냈는데, 백중장을 보기 위한 사람들로 십일시장의 장터가 미어질 정도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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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추석노래자랑 십일시마을은 임회면의 중심지로서 추석날 저녁에 개최되는 추석노래자랑에는 마을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른 마을주민들도 참여하고 있다. 마을청년회가 주관하는 이 행사는 1990년대에 시작되었는데, 인기가수를 초청할 정도로 성대하게 열렸다. 1990년대 후반에 중단되었으나 2005년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명절을 찾아 고향을 찾은 임회면 사람들이 함께 어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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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이엉얹기 지금은 초가집이 없지만 1960대까지만 해도 초가집이 많았다. 그래서 이달에는 이엉얹기가 중요한 세시행사였다. 볏짚을 엮어서 마람을 엮어 새로 지붕을 얹는 것이다. 십일시장터의 장옥도 1960년대 이전에는 초가였다고 한다. 지붕을 개량한 연도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제보자를 만날 수는 없었으나, 대부분의 연로자들은 한국전쟁 이후 슬라브로 된 장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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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시제모시기 10월에는 각 문중별로 시제를 모신다. 제각이 있는 문중에서는 제각에서 모시지만 그렇지 않은 문중에서는 큰집에서 시제를 모신다. -메주쑤기 이달에는 메주콩을 삶아서 메주를 쑨 후 짚으로 엮어서 메주를 띄운다. ⑶생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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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동계 매년 12월 31일에 동계를 개최한다. 동계에서는 일년간의 마을의 수입금과 지출금을 보고 결산하고 새로운 이장을 선출한다. 또한 새로 이사온 사람들은 이날 동계회원으로 가입한다. 십일시마을에서는 1943년부터 작성한 동계 문서가 전해오고 있다. ⑵ 세시풍속 -동지 이날 팥죽을 쑤어먹는다. 전에는 집안 곳곳마다 팥죽을 뿌리기도 했으나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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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관 시장은 물자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영역(market), 또는 그러한 상호작용이 행해지는 장소(marketplace)를 말한다. 구체적인 장소를 지칭하는 공간적인 측면에서의 시장은 저자, 장시, 장문, 장터, 장, 시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정기시장을 장시라고 지칭한 경우가 많았으며, 지방에 있는 시장은 향시라고 하였다. 장시란 시장 중에서 일주일이나 순(旬, 열흘)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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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 지역 물품을 상호 교환하는 장시는 과거 한때 지역의 중추적인 중심 역할을 했으며, 장날은 인근지역 사람들의 잔칫날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산업화,도시화의 진행과 함께 장시는 양적, 질적으로 쇠퇴를 거듭했다. 장시가 쇠퇴할 수밖에 없었던 주요 요인으로는 소득 증대, 교통,통신의 발달, 대중매체의 확산, 농산물 및 공산품 유통구조의 변화 등을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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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회적 동물로서 군거본능에 따라 마을을 형성하게 된다. 주거지 선택에서 중요한 고려사항은 토지로부터 보장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정주농업이 가능한가의 여부일 것이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살기 좋은 곳의 조건으로 지리,생리(生利),인심,산수를 들고 있는데, 생리가 바로 정주농업의 조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우선 땅이 기름져야 하고, 다음으로 배와 수레, 사람과 물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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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이 발달하면서 진도 역시 광주, 목포 등 도시와의 연결이 편리해졌다. 이와 함께 농수산물은 대도시로 직접 출하되고, 유통업자들이 자가용을 이용해 생활필수품을 소비자의 가정으로 직접 배달하면서 장시의 기능이 현저히 쇠퇴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군 단위의 농수산물집하장은 소량 다품목 생산에 의존하는 영세한 소농의 생산물을 공동 출하하고, 규격 상품화를 촉진하며, 생산자의 조직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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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매도의 총면적은 5.73㎢로, 동경 126° 03′와 북위 34°14′에 위치하며, 진도 본섬의 남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진도 본섬 팽목항에서 남서부로 직선거리 약 17㎞ 정도 떨어져 있는데, 뱃길로 1시간 30분 거리이다. 관매도는 154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조도군도의 중심 섬인 하조도에서 남쪽으로 직선거리 약 5.6㎞ 정도에 위치하고 있다. 섬으로 이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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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매리(觀梅里)는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관매도에 있는 마을이다. 관매리[1구]와 관호리[2구]로 이루어져 있으며, 관매도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관매도리, 또는 관매도라고 부른다. 관매도의 마을명칭, 즉 관매(觀梅)라는 이름은 일제강점기인 1917년에 조선총독부령으로 만들어진『신구대조 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진도군 조도면 지역의 명칭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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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매도리(觀梅島里)[관매도, 관매리]:본래 진도군 조도면 지역으로, 관매도 또는 관매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관매도리로 개칭하였다. 관매도리는 현재 관매마을[관매 1구]과 관호[관매 2구]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이외에 자연마을로 장산편, 장산너머[또는 장산너메]가 있다. 관매리의 본래 이름, 즉 고유한 명칭은 볼매섬, 볼매리이다. 각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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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매리에는 주로 땅이름의 유래와 관련하여 전하는 설화가 많다. 『한국지명총람』(1984)에 나타난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한다. 구렁이바우[바위]:다리축구석에 있는데, 이 바위의 형상이 두 마리의 구렁이가 바다에서 서로 엉기어 산으로 올라가는 것 같다. 옛날 당제를 지내던 청년이 몰래 벼락바우 밑에서 애인을 만나 속삭이다가 천벌로 벼락을 맞아 구렁이바우가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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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 조도면에 자리한 관매도는 관매, 장산, 관상 세 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조도는 섬들이 새떼처럼 모여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관매도의 원래 지명은 '볼매'였다고 전해진다. 이를 '새가 먹이를 물고 날아가다 잠깐 쉬어가는 섬'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관매도의 형상은 관호마을과 방에섬 양측을 날개로 매가 나는 형상을 하고 있다. 관매리는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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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 조도면 관매리 관매마을 진도군 조도면에 자리한 관매도는 관매, 장산, 관상 세 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조도는 섬들이 새떼처럼 모여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관매도의 원래 지명은 '볼매'였다고 전해진다. 이를 '새가 먹이를 물고 날아가다 잠깐 쉬어가는 섬'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관매도의 형상은 관호마을과 방에섬 양측을 날개로 매가 나는 형상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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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지는 논이 41.7㏊, 밭이 8.7㏊에 이르며, 미역과 톳양식을 하는 호수가 23호, 낭장망을 이용해 멸치잡이를 하는 호수가 1호, 통발을 이용해 장어,문어,꽃게잡이를 하는 호수는 6호다. 벼농사를 짓는 사람은 전체 가구 중 7~8호에 불과하며, 밭농사를 짓는 사람도 20여 호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농사를 짓지 않고 외지사람에게 임대해주고 있다. 외지사람들은 3만 평 정도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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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도면의 섬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섬이 바로 관매도이다. 특히 관매도에는 천연기념물 제211호인 상록수림대와 제212호인 후박나무가 있어서 생태 테마 관광지로서의 가치도 지니고 있다. 관매도에는 절경을 자랑하는 곳이 많다. 사람들은 그 가운데 여덟 곳을 선정해 ‘관매 8경’이라고 부른다. 관매도 제1경은 관매도해수욕장이다. 이 해수욕장에는 길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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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매도에서 생산되는 대표적인 상품이 자연산 미역이다. 잭원에서 생산되는 상품은 가내수공업 형태로 가공한 뒤 20가닥(1속)으로 묶어 상인에게 넘긴다. 주로 목포상인들을 통해서 유통된다. 자연산 미역을 넘기면, 상인들이 판매하고 일정한 소개료를 제한 뒤 주민들에게 판매대금을 송금한다. 특별한 계약관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서로 믿는 신뢰관계로 유통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다.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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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매도를 드나드는 교통편은 팽목(진도)-관매, 팽목-창유(조도)-관매, 팽목-진도의 여러 섬 경유-관매, 목포-관매[도중에 여러 섬을 경유]의 네 가지 교통편이 있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교통편은 팽목에서 조도를 거쳐서 관매도를 오가는 배편으로 1시간 정도 소요된다. 다음은 팽목과 관매 사이에 진도의 대마도, 소마도, 관사도, 조도 등을 경유하여 2시간 정도 소요되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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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매마을 주민들의 주요 소득원은 양식톳과 양식미역, 자연산미역 등이다. 따라서 주민들의 생업력은 이들 수산물의 생육에 맞추어져 있다. 양식미역과 양식톳의 포자를 바다에 넣는 11월과 12월, 자연산미역과 자연산톳을 채취하는 7월 말경은 관매마을 주민들에게 가장 분주한 시기이다. 또한 여름철에는 이름난 관광지인 관매도해수욕장을 찾는 관광객들이 많다. 이 때문에 주민들 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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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미알배기 관매마을에서는 설을 앞두고 미알배기라는 풍속이 행해졌다. 미알배기란 어떤 집에서 명절 2~3일 전에 음식을 장만한 뒤 마을의 노인들을 방문하여 대접하거나 절친한 사람들을 초대하여 음식을 나누어 먹던 풍속이다. 활발하게 행해지던 풍습이었으나 30여 년 전부터 흐지부지되었다고 한다. 섣달 그믐날 ①불싸움 섣달 그믐날 저녁 온 마을의 쓰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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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설날 설날에는 조상께 차례를 지내고 떡국을 끓여먹는다. 설날 아침에는 집안의 어른들에게 세배를 올리는데, 어른들은 덕담으로 응수한다. 세배를 마친 후에는 산소에 성묘를 한다. 정초 ①당제 관매마을에서는 약 30여 년 전까지 음력 섣달 그믐날부터 정월 초사흘날까지 당제를 지냈다. 주민들은 당제의 신격을 입도선조로 여기고 있다. 당제는 현재 천연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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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하리드리날 전에는 이날 아침이면 선영에 차례를 지내기도 했으나 지금은 지내지 않는다. 이날은 밥을 아홉 그릇 먹고 나무도 아홉 짐 하는 날로 여겼다. 또한 이날 아침 왼새끼를 꼬아서 머리카락 등을 끼워 끌고 다니며 “진거끗자, 진거끗자.”라고 말하면 뒤따르는 사람들이 막대기로 왼새끼를 때렸다. 이것은 액을 쫓아내기 위한 방편이라고 한다. ⑶ 생업력 이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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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⑶ 생업력 양식미역을 채취하며, 벼농사를 하는 집에서는 곡우 무렵 볍씨를 담근다. 고기잡이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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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관매초등학교 봄운동회 관매초등학교의 현재 재학생은 20명 정도밖에 안 되지만 예전에는 500명 정도가 다닐 정도로 큰 학교였다고 한다. 재학생수가 감소한 이유는 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살지 않기 때문이다. 관매초등학교 봄운동회는 주민들에게는 소축제의 장이다. 이때는 관매마을과 관호마을 사람들이 운동회에 참여하여 줄다리기와 달리기 등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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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⑶ 생업력 망종 무렵에 모내기를 한다. 이곳의 모내기는 다른 지역보다 다소 늦은 편인데, 물대기가 어려운 천수답이기 때문에 시기가 늦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이 시기에 콩과 고구마를 심는다. 6월 초에서 7월 중순까지 자연산 미역에 물주기를 한다. 사리 물때에는 바위가 드러나 미역이 뜨거운 햇볕에 익어버리면 생산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물을 끼얹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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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복날 전에는 복날을 크게 쇠지 않았으나 지금은 삼계탕이나 개장국으로 몸을 보신하는 집이 많다. 유두차례 관매마을에서는 예전에도 유두차례를 지내는 가정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⑶ 생업력 7월 초에 양식톳 채취가 끝나면 톳말리기를 하며, 이때 양식톳 밑뿌리에 있는 김을 매주어야 톳뿌리를 살릴 수 있다. 중순 이후에는 자연산미역과 자연산톳을 채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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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면민체육대회 8월 15일 즈음에 조도면민체육대회가 열린다. 조도면민이 체육경기를 통해 경쟁하고 즐기는 행사로서 관매마을 주민들도 참여하고 있다. ⑵ 세시풍속 백중 전에는 백중차례를 지내는 가정이 많았으나 지금은 지내지 않는다. 벌초하기 음력 7월에 벌초를 한다. ⑶ 생업력 이달에도 관광객을 위한 민박과 식당이 운영된다. 고기잡이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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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추석 추석날에는 타지에 있던 일가친척이 한데 모여 정을 나눈다. 송편을 빚고 햇곡식과 햇과일로 제물을 마련하여 차례를 지내고 조상께 성묘를 한다. 약 30여 년 전에는 추석날 저녁에 마당 넓은 집이나 초등학교운동장, 회관 앞 공터 등에서 여자들이 강강술래를 했다고 한다. ⑶ 생업력 고기잡이가 계속되며 꽃게잡이가 시작된다. 이달에는 망종에 파종한 콩을 수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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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⑶ 생업력 꽃게잡이와 고기잡이가 계속되며, 음력 9월 말이면 벼농사 수확이 거의 마무리된다. 톳 종자를 채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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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시제모시기 음력 10월은 시제를 모시는 달이다. 각 문중의 법도에 따라 시제를 지낸다. 메주쑤기 이달에 메주를 쑤어서 띄운다. ⑶ 생업력 이달에 미역포자를 바다에 넣는다. 꽃게잡이와 고기잡이가 계속되며, 이달에 가을콩을 수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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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총회 매년 12월 30일경에 마을총회를 개최한다. 주로 날이 궂어 바깥일을 할 수 없는 날에 회의를 하며, 일년간의 마을의 수입금과 지출금을 보고 결산하고 새로운 이장을 선출한다. ⑵ 세시풍속 동지 이날 팥죽을 쑤어먹는다. 예전에는 집안 곳곳마다 팥죽을 뿌리기도 했으나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김장담그기 12일 20일경, 즉 크리스마스 이전에 김장을 한다. 배추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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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매도는 어로활동이 활발한 섬이다. 특히 닻배라고 불리는 조기잡이 어로는 관매도를 비롯한 조도군도의 두드러진 전통 중의 하나이며, 1960년대까지도 사용되던 닻배는 이 지역사람들의 어로활동을 상징하는 문화적 코드라고 할 수 있다. 전라북도 위도의 칠산어장까지 원정을 다녔던 닻배는, 외형적인 규모에서뿐만 아니라 생활문화를 지탱하는 물적 기반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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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닻배의 구조 닻배는 배에 수많은 닻을 싣고 다닌 데서 유래된 명칭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정선(碇船)이라고 한다. 정선망은 물 속에 병풍처럼 길게 그물을 펼쳐 고기를 잡는 자망의 일종으로, 그물의 아랫부분에 무게를 주고 그물을 일자로 펼치기 위해 소형 닻들이 많이 필요하다. 그 닻들을 배에 싣고 어로활동을 한다고 하여 닻배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관매도 닻배제작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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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장망은 물살이 센 장소에 설치하는 멸치잡이 어구다. 자루 모양처럼 길게 생겼다고 해서 낭장이라고 부른다. 관매도 주변 바다는 조류의 흐름이 세어 낭장망 어업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낭장 그물 한 조를 ‘한 틀’이라고 한다. 관매리는 1호, 관호리는 10여 호 정도가 낭장망 어업을 한다. 조업은 양력 7월 무렵부터 11월까지 하는데, 조업이 끝나면 그물을 철거한 뒤 손질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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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치 끌낚시는 소형(1~3톤) 어선에 대나무 2개를 양팔 벌리듯 설치하고 여기에 낚시줄을 매달아 삼치를 잡는 어업이다. 현지에서는 ‘삼치 스릴’이라고 부른다. 관매도에는 30여 척의 채낚기 어선이 조업 중이다. 어구는 배의 중간 부분에 설치한다. 낚시대 2개에 각각 2개 또는 3개씩의 낚시를 매단 줄을 연결한다. 줄은 약 30㎝ 정도이고, 낚시대에서 1.5m 떨어진 곳에 삼치가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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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통발은 원통형 통발에 미끼를 끼워 꽃게를 잡는 어구다. 관매도에는 관매리, 관호리, 각흘도에 각각 1척 씩의 꽃게통발어선이 있다. 한 줄에 100~200개 정도의 통발을 연결하는데 그것을 ‘한 틀’이라고 한다. 통발의 부피 때문에 한번에 세 틀 정도를 배에 싣고 간다. 어업시기는 9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이다. 산란기인 6월~8월에는 금어기다. 봄에는 안개, 가을에는 바람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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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낙은 긴 모릿줄에 수많은 낚시를 매달아 물고기를 잡는 어구다. 어종에 따라 농어주낙, 돔주낙, 명태주낙, 장어주낙, 우럭주낙, 다랑어주낙, 꽁치주낙 등이 있다. 사용방법은 거의 비슷하다. 관매도에서는 주낙으로 농어, 장어, 꽁치 등을 주로 잡는다. 꽁치주낙은 약 50발 정도의 모릿줄에 낚시 180여 개를 매달아 조업한다. 상자 하나에 정리된 낚시를 한 틀이라고 하는데 사각형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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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해역에 위치한 관매도는 질좋은 해조류가 많이 생산되는 곳이다. 미역, 톳, 가사리, 파래, 김 등이 생산되는데, 특히 자연산미역과 톳이 유명하다. 관매도에서는 자연산 해조류를 공동으로 생산한다. 관매도의 해안선은 마을 공동소유의 어장이다. 관매도의 두 개 마을 관매도리와 관호리는 각각 어촌계가 있어 공동으로 어장을 관리한다. 두 마을에서는 해안선을 구역화하여 조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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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미역은 바위에 달라붙어 자란다고 하여 돌미역이라고 부른다. 채취시기는 음력 6월 보름 무렵의 사리 때다. 물이 들었다가 빠지기 시작하면 ‘재건’들이 소형 채취선을 타고 자신들의 구역인 ‘똠’으로 가서 작업을 한다. 낫으로 미역을 잘라 채취하는데 물이 바로 들기 때문에 2시간 정도밖에 일을 하지 못한다. 똠의 공동작업으로 채취한 미역은 회원이 똑같이 분배하고, 개별적으로 건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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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톳은 미역 채취시기인 음력 6월에 채취한다. 대개 미역을 먼저 하고 톳을 채취한다. 낫이나 칼로 베어 바구니나 망에 담아 온다. 생톳을 분배하기도 하고, 공동으로 건조해서 판매가를 분배하기도 한다. 양식톳은 음력 9월경 바위에 붙은 톳 종자를 채취하여, 원줄에 10㎝ 간격으로 부착해 바다에 설치한다. 원줄의 길이는 50발이며 플라스틱 원형 부표를 이용해 줄을 뜨게 하고 나무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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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관매도리 당제 관매도리 당제는 입도선조(入島先祖)에게 마을의 안녕과 해산물의 풍요를 비는 마을제사의 성격이 강하다. 대대로 전승되어오다가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정부의 미신타파 정책으로 철폐되었다. 당시 관매도에 파견돼 있던 경찰들이 방위병들을 시켜 당집을 해체하면서 당제가 중단되었다. 당제를 지내는 시기는 음력 정월 초하루였다. 관매초등학교 앞에 있는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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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는 어로의 안전을 지켜주는 배서낭을 모셨다. 대개는 여(女)서낭으로, 서낭은 깨끗한 곳에 모시는데 밥을 하는 ‘투시칸’이나 침실에 감실을 마련해 모셨다. 감실 안에는 삼색헝겁에 바늘과 실을 함께 묶어 모셨다. 서낭과 별도로 조상을 모시는 경우도 있었다. 창지를 접어서 ‘할아버지들’을 선주의 침실 머리맡에 모셨다. 뱃고사는 대부분 닻배와 관련이 있다. 뱃고사의 종류로는 지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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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배가 출어하기 2~3일 전에 단골을 불러 연신굿을 했다. 한식 무렵에 칠산어장으로 출어를 하는데, 관매도에서는 10여 척의 닻배가 고기잡이에 나섰다. 연신을 하게 되면 선주집에 금줄을 치고 부정한 사람(개고기를 먹었거나 상복을 입고 산고 든 사람)들은 출입을 금하고, 선주와 선주가족 그리고 선원들은 목욕재계한다. 연신굿은 낮에 배 위에서 했다. 굿을 하게 되면 이틀간 술과 음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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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매도는 닻배의 중심지답게 관련 민요가 많이 전승된다. 닻배노래는 닻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면서 부르는 어업노동요로, ①놋소리 ②술비소리 ③풍장소리(배치기)로 구성된다. ①은 노를 저을 때 부른 소리이며, ②는 배에 그물을 싣거나 바다에서 그물을 당길 때 부른다. 그리고 ③은 만선의 흥취와 신명을 표출하는 풍장소리로 불린다. 닻배노래에는 조도 어민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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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강술래는 관매도의 대표적인 여성민요로서 추석이나 설, 대보름 등 명절 때 부르던 노래이며 놀이다. 닻배노래가 남성들 중심의 구비전승이라면 강강술래는 여성들이 전승해온 민요다. 강강술래 여흥놀이로는「긴강강술래」, 「자진강강술래」, 「덕석몰이」, 「청어엮고 풀기」, 「고사리꺽자」, 「남생아놀아라」, 「도굿대당기기」 등이 있다. ①조사일자:1996년 7월 13일 ②조도면 관호리 ③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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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들노래」의 고장 인지리는 진도 남서쪽에 위치한 지산면의 면소재지이다. 과거 해남군 화원지방에 있던 목장을 지산면 지력산으로 옮기면서 사람들이 들어오고 초기에 임회면에 부속되어 오다가 조선시대 중엽 목장면이라 칭하고 관마리에 청을 두었던 곳이기도 하다. 지산면 인지리의 절대적 위치인 경,위도 좌표는 북위 34도 25분 27초이고, 경도는 126도 10분 00초로 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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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치리(禿峙里)는 현재 행정구역상 진도군 지산면 인지리에 속해 있는 마을이다. 독치마을의 법정리인 인지리(仁智里)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전의 인천(仁川)마을과 독치마을을 병합하면서 새로 생긴 명칭이다.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1912년)에 인지리의 명칭이 보이지 않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을 반영하여 작성한 『신구대조 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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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에 관련된 기술 내용은 『지명총람』(진도군)의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김옥택[남, 66세, 마을 이장] 씨의 도움을 받았다. 독치리는 마을 뒤쪽(부흥산)으로 가치리, 관마리와 경계를 이루고, 마을 앞쪽으로 인천리, 마을 좌측으로 와우리, 마을 우측으로 삼당리와 경계를 이룬다. 규암(窺岩)[바위] 외뜬바우의 다른 이름이다. ‘외뜬바우’ 항 참조할 것. 꿀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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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면은 나라의 목장이 있었던 탓에 조선시대 중엽까지 목장면이라고 하다가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정에 의하여 이곳에 위치한 지력산의 이름을 빌려 지산면이라 하였다. 인지리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인천리와 독치리를 병합하여 인지리라 했다. 2006년 6월 현재 독치리는 총 152세대 290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중 농가는 130호, 비농가는 22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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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공식 임원으로는 이장, 반장, 부녀회장, 남녀 새마을지도자, 청년회장, 개발위원 등이 있다. 회의는 정기적인 마을 '운영위원회'와 ‘연말결산총회’로 구분할 수 있다. 운영위원회는 6명의 반장과 6명의 개발위원들이 참여하는 회의이며, 연말결산총회는 마을주민 전체가 참여하는 총회다. 결산총회는 12월 말에 일 년 예산, 수입을 결산 보고하는 자리이며, 사업보고와 계획이 수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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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치리는 1400년 광산이씨가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70년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진도군지』, 1973) 밀양박씨[24], 김해김씨[20], 순창설씨[21], 동복오씨[16], 광산이씨[21], 경주이씨[12], 안안차씨[12], 강진김씨[9], 경주최씨[8] 등이 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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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리는 진도민속을 배태한 마을이다. 「남도들노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30여 명에 이른다. 진도의 무형문화재 중 소포리에서 나온 진도북춤을 제외하고, 씻김굿, 다시래기, 만가 등은 모두 이곳 인지리에서 나왔다. 인지리는 많은 진도민속, 무형문화재와 관련된 조공례, 박병천, 신영희 등 많은 인물을 배출한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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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치리 주민들은 진도 동부 쪽, 즉 소포, 고야, 보전, 갈두, 거제, 기린, 안치, 앵무 등의 마을과 많은 혼인관계를 맺어왔다. 하지만 가치, 와우, 삼당 마을과는 결혼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사돈을 맺고 좋은 결과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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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리에는 1999년 12월 설립된 '지산면 민속놀이 전수관'이 있다. 이 전수관에서는 「남도들노래」(이영자: 남도들노래 예능보유자, 박동매: 남도들노래 예능보유자, 박재준: 남도들노래 조교), 「진도만가」(김항규: 진도만가 예능보유자, 설재림: 진도만가 예능보유자)의 전수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진도들노래보존회 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전수활동을 하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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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치리의 경지면전은 밭이 46.3㏊, 논이 47.5㏊이며, 인구에 비해서 경지면적이 적은 편이다. 주민들의 주 생업은 밭에서 이루어지는 대파농사이며, 이를 통해 생계와 자녀교육을 하고 있다. 과거에는 대파 대신 보리를 심었으며, 일부 논에서는 배추를 심기도 한다. 대파농사를 짓는 농가는 100여 농가에 이르며, 20여 년 전 나락수매가 이루어지고 쌀값이 좋을 때는 논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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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파는 100평 한 마지기에 약값, 종자값, 인건비 등을 고려할 때 35만 원 정도 투자가 되며 2005년 가격이 좋을 때는 150만 원, 보통 50~60만 원에 거래되었다. 가격이 좋지 않을 때는 투자비용을 건지기 어려울 때도 있다. 대파농사는 예약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대파가격이 괜찮을 것 같으면 3월부터 상인들이 선금을 주고 예약을 한다. 대파판매는 포전판매(밭떼기)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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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도로가 발달하기 전에는 진도읍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고뱅이 잔등[고백리] - 칠전부락 - 꿀재를 지나야 읍내로 들어설 수 있었다. 이 길은 30여㎞에 이른다. 소포만이 막히기 전에 진도읍으로 가는 길은 앵무까지 걸어가서 나룻배를 타고 장구포를 거쳐 진도읍으로 들어가는 길과, 소포에서 나룻배를 타고 해창으로 들어가 진도읍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이렇게 진도읍으로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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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치마을의 주요 소득원은 벼농사와 밭농사 등 농업이기 때문에 주민들의 생활도 농사주기에 맞추어져 있다. 주요작물로는 벼, 검정쌀, 대파, 월동배추, 고추, 구기자 등이다. 농사력은 농촌지도소에서 제시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지만 전체적으로 시기가 앞당겨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기계화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빨리 수확을 해야 좋은 가격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서두르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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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설점치기 12월에 눈이 많이 와야 이듬해 비가 많이 와서 농사시절이 좋다고 하였다. (3) 생업력 월동배추와 대파를 출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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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설날(음력 1월 1일) 설날에는 차례를 지낸다. 차례를 지내는 시간은 각 가정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섣달 그믐날 밤 10시가 넘어서 지내는 사람도 있고, 자정이 넘어서 지내는 사람도 있고 새벽에 지내는 사람도 있다. 차례음식으로는 대부분 메를 올린다. 세배를 마친 후에는 산소에 가서 성묘를 한다. ○ 정초 ① 토정비결 보기 정초에 토정비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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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하루달날(음력 2월 1일) 옛날에는 이날도 차례상을 차리는 집이 있었다. 독치마을에서는 40년 전까지만 해도 이날에 마을을 절반으로 나누어 줄다리기를 했다. 또한 손끄스럼 지진다고 하여 콩을 볶아 먹었다. 하루달날 먹는 칡은 약이 된다고 하여 이날 칡을 캐서 먹었다. ○ 경칩 이날 올챙이를 먹으면 약이 된다고 하여 깨끗한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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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한식 이때 산일을 하면 탈이 없다 하여 이장을 하거나 묘를 손질하고 개사토를 한다. 이날 시제를 모시는 집안도 있다. (3) 생업력 이달 초까지 대파 못자리를 하고 이달 말까지 대파를 옮겨 심는다. 볍씨를 담그고 고추 이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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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경로잔치 매년 5월 어버이날 근경에 65세 이상 노인들을 공경하는 의미에서 경로잔치를 벌인다. 마을회관에서 음식을 푸짐하게 장만하여 먹고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 (2) 세시풍속 ○ 4월초파일 불교인은 이날 연등을 달고 절에 간다. (3) 생업력 이달까지 대파 이종을 하고 마늘을 수확한다. 만생종 벼의 못자리를 만들고 조생종 벼의 모내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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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단오날 이날 창포로 머리를 감으면 머릿결이 좋아진다고 하였다. 또한 이날 뜯은 풀잎은 약이 된다고 하였으며 익모초즙을 마시기도 했다. (3) 생업력 망종 즈음에 만생종 벼의 모내기를 한다. 콩과 깨를 갈고 감자를 수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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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유두 예전에는 유두날에도 차례를 지내는 집이 있었다. 유두날은 또랑신네가 농사를 정해주는 날이므로 논밭에 나가서는 안 된다고 하여 보리개떡을 만들어 먹고 놀았다. ○ 복날 삼복에는 시집간 딸들이 복달음을 하기 위해 음식을 장만하여 친정을 찾기도 했다. (3) 생업력 이달에는 벼의 생장을 돕기 위해 비료를 하고 병충해와 잡초를 막기 위해 농약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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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면민체육대회 매년 8월 15일에 개최되는 면민체육대회는 지산면민들의 체육행사이다. 축구, 배구, 달리기, 씨름, 줄넘기, 낚시 등 다양한 종목으로 마을별 경합을 벌인다. 몇 년 전까지는 면민의 날 행사에서 종합 1등을 가려서 포상하였으나 1등을 가리다 보니 경쟁이 과열되는 폐단이 있어서 종목별 우승만 가리고 종합우승은 가리지 않고 있다. 종합우승을 가리지 않았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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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추석 추석에는 타지에 나가 있던 일가친척이 모두 모여 햇곡식으로 음식을 장만하고 송편을 만들어 차례를 지내며 조상에게 성묘한다. 타지에 나가 있던 사람들은 추석날 벌초를 하기도 한다. (3) 생업력 추석 무렵부터 조생종 벼를 수확하고 월동배추를 이종한다. 콩, 깨, 고구마, 구기자를 수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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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성주고사 농사를 지어 첫 방아를 찧으면 손 없는 날을 택일하여 성주동우에 쌀을 담는다. 성주동우의 쌀은 조심해서 밥을 지어먹었다. 가옥을 입식으로 개조하면서 마래가 없어지면서 거의 모든 집에서 성주동우를 치워버렸다고 한다. (3) 생업력 만생종 벼는 이달에 수확한다. 구기자, 조, 수수도 수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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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시제모시기 10월에는 집안별로 시제를 모신다. ○ 이엉얹기 지붕개량을 하기 전에는 추수가 끝난 후 짚으로 마람을 엮어 이엉얹기를 하였다. ○ 메주쑤기 이달에는 메주콩을 삶아서 메주를 쑨 후 짚으로 엮어서 메주를 띄운다. (3) 생업력 대파를 출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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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총회 매년 12월 말일에 결산총회를 한다. 총회에서는 1년간의 운영실적을 보고하고 재정을 결산하고 새해예산을 세우며, 이장을 선출한다. (2) 세시풍속 ○ 동지 이날에는 팥죽을 쑤어 먹는다. 전에는 집 안 곳곳마다 팥죽을 뿌리기도 했으나 지금은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 김장담그기 이달 중순경에는 김장을 한다. 배추김치, 동치미 등을 담궈서 겨우내 먹을 수 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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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치마을 마을 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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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면 인지리는 지산면의 소재지 마을이다. 진도의 7개 무형문화재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무형문화재의 본산이라고 할만하다. 직접적으로 관련된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는 남도들노래, 진도씻김굿을 비롯해, 전라남도지정 무형문화재인 진도만가가 해당되고, 간접적으로는 강강술래, 다시래기 등의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와 진도북놀이 등의 전라남도지정 무형문화재가 해당된다. 직접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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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진도씻김굿은 진도 전역을 통괄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당시 인지리 출신의 박병천 일가를 중심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인지마을이 진도씻김굿의 본산으로 불리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문화재로 지정된 후 박병천 일가가 인지리를 떠나 서울생활을 하게 되면서 인지마을에서의 전승활동이나 연행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진도읍에 설치된 무형문화재 전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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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들노래는 특히 지산면 인지마을을 중심으로 전승되어 오던 노래를 중심으로 하여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바 있다. 즉, 남도들노래는 지산면 인지리를 중심으로 전승되는 논일노래를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벼농사에 관련된 노래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 들노래는 1972년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진도에는 남도들노래 뿐만 아니라, 의신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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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만가는 지산면 인지리를 중심으로 연행되는 상여소리를 말한다. 진도만가(珍島輓歌)라는 이름은 1975년 남도문화제에서 입상하는 시기를 전후해서 이를 연구하거나 관여했던 학자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원래 진도에서는 상여소리라고 했는데, ‘상여소리를 한다.’ ‘상여운구를 한다’, ‘생애(喪輿) 나간다’ 등의 동사(動詞)적 개념으로 사용해 오던 말이다. 대체로 진도만가는 두 가지 유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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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진도북놀이가 인지마을과 직접 관련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못북기원설’의 측면에서 보면, 남도들노래가 못북의 배경에 해당되는 것이므로, 북놀이와 들노래의 친연성을 짐작해볼 수 있다. 따라서 북춤으로 지정된 인간문화재가 인지마을에 없다는 것을 빼고는 인지마을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북춤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박병천을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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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강강술래는 인지마을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다만, 강강술래를 안무할 당시에 해남군 우수영 강강술래를 지도한 사람이 인지리의 박병천이었고, 그런 영향 때문인지 지금까지 왕성하게 강강술래를 보존시켜오고 있는 마을 중의 하나가 인지마을이라는 점에서 강강술래와의 친연성을 부인할 수 없다고 본다. 본래 강강술래는 진도읍의 양홍도를 중심으로 196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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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래기는 임회면 강준섭을 중심으로 문화재로 지정된 바 있다. 다만 인지마을의 다시래기는 조공례, 김항규 등에 의해 일부의 노래가 전승되어 왔다. 한때는 이들을 중심으로 다시래기패들이 조직되어 연행에 나서기도 하였다. 다시래기가 문화재로 지정되고 난 이후로도 인지마을의 김송순, 김영자, 김복자 등이 다시래기패에 속해 활동해온 것도 인지마을이 다시래기의 전승력을 확보하고 있었음을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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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가 인지마을의 경제적 발전에 어떤 도움을 주었는가에 대해서는 섣불리 대답하기 곤란하다. 다만 문화적인 영향면에서 본다면, 진도의 민속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마을로 자리매김을 했다는 점과, 많은 명인들을 배출한 마을이라는 점 등을 고려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인지마을의 문화적 위상을 무형문화재가 높였다고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관점에서 인지리에 있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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