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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복댐 수몰 지구내 고인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606
한자 同福-水沒地區內-
이칭/별칭 동복댐 수몰 지구내 지석묘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장학리|창랑리|월산리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이영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1년 11월 12일연표보기 - 동복댐 수몰 지구내 고인돌 전남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시작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1년 12월 10일연표보기 - 동복댐 수몰 지구내 고인돌 전남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종료
보수|복원 시기/일시 1981년 - 동복댐 수몰 지구내 고인돌 무덤방 1기 이전
소재지 동복댐 수몰 지구내 고인돌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월산리|장학리|창랑리|창랑
출토 유물 소장처 동복댐 수몰 지구내 고인돌 출토 유물 - 국립 광주 박물관
성격 고인돌
양식 기반식|개석식
크기(높이,지름) 2~4m[길이]|1.2~2.4m[너비]|0.5-0.8m[두께]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동복댐 수몰 지구 내의 청동기 시대 고인돌.

[개설]

이서면백아면 일부가 포함되는 동복댐무등산 동쪽의 보성강 상류 지역에 해당하며, 광주광역시의 부족한 식수원 해결을 위해 조성된 댐이다. 이곳에 대한 지표 조사를 통해 고인돌을 비롯해 보산사지와 석탑, 부도, 석비 등이 확인되었다. 동복댐 수몰 지구내 고인돌은 80여 기가 있었지만 3곳에서 15기만 발굴 조사되었다.

[위치]

발굴 당시 이서면 월산리 고인돌은 마을 앞 평지에 2기가 분포하고 있었으며, 이서면 장학리 고인돌은 마을 앞 충적 평지에 4기가 분포하나 3기만 조사되었고, 마을 안에도 10여 기의 고인돌이 있다. 이서면 창랑리 창랑 고인돌은 마을 뒤 세장한 구릉 정상부를 따라 14기가 열 지어 있었다. 장학리 고인돌과 창랑리 고인돌은 보성강 지류인 동복천이 곡류된 지형이며, 고인돌은 평지와 구릉상에 입지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동복댐 조성은 청정 지역인 보성강 상류인 동복천을 이용해 원래 있었던 댐을 확장해 광주광역시의 식수원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수몰이 불가피한 지역에 대한 지표 조사를 통해 확인된 유적 중 고인돌만 발굴 조사 대상이 되었다. 원래 10여 곳에 100여기가 수몰되거나 만수위에 인접되어 있었지만 3곳에서 15기의 발굴에서 이서면 월산리에서 2기, 장학리에서 3기, 창랑리에서 14기 등 모두 19기가 조사되었다. 발굴은 전남 대학교 박물관에서 1981년 11월 12일부터 12월 10일까지 29일간 실시되었다.

[형태]

고인돌 형태는 모두 개석식 고인돌이며, 덮개돌 하의 하부 구조는 각기 다른 양상이다. 월산리 고인돌은 자연석과 깬돌을 이용해 돌덧널형[석곽형] 무덤방과 묘역을 조성하였다. 장학리 고인돌은 4m 내외의 대형 덮개돌이 군집을 이루고 있고, 무덤방도 1.7~1.9m로 큰 것이다. 무덤방 주위의 묘역에는 1m 내외의 장대석이 1개씩 놓여 덮개돌을 직접 받치는 받침돌 역할을 하고 있다. 모두 편평석과 깬돌을 쌓거나 단벽에 판석을 세워 축조하였다.

창랑리 고인돌은 다양한 구조를 보이는데, 중심에 있는 6호와 7호는 납작한 편평석과 판석을 쌓거나 세워 만든 돌덧널형 무덤방이다. 4매의 얇은 판석을 이용한 무덤방 위에 1매의 대형 뚜껑돌과 덮개돌이 있는 특이한 형태부터, 판석편을 세워놓은 것, 깬돌과 판석으로 허술하게 축조한 것이 있다.

[출토 유물]

출토 유물은 발굴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월산리 고인돌에서는 돌끌[석착], 돌칼편[석도편], 돌도기편이, 장학리 고인돌에서는 가지문토기[채문토기], 그물추[어망추]가, 창랑리 고인돌에서는 슴베식[유경식 2점]과 자루식[유병식 1점] 간돌검, 슴베식 간돌화살촉이 출토되었다. 특히 장항 2호에서는 가지문 토기 안에 토제 그물추 1점이 들어있었고, 토기 뚜껑은 타원형의 납작한 냇돌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현황]

3곳의 고인돌은 발굴 후 현장에 그대로 남겨 두어 현재 수몰된 상태이다. 장학리 고인돌 중 1기의 무덤방만 국립 광주 박물관에 이전 복원하여 놓았다.

[의의와 평가]

동복댐 수몰 지구 고인돌은 형태에서 개석식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장대석을 무덤방 양 단벽에 배치한 것[창랑리 고인돌]과 장벽 한쪽에 배치된 것[장항리 고인돌]이 있다. 이 장대석은 받침돌 역할을 한 것으로 기반식의 받침돌과 다르다.

창랑리 고인돌 중 판석을 이용한 돌널형 무덤방 위에 얇은 편평석 1매로 뚜껑돌로 삼고 그 위에 덮개돌이 올려진 형태이다. 이런 대형 뚜껑돌 구조는 영암 엄길리나 완도 청산도 읍리 고인돌 등 섬이나 해안변의 고인돌에서 보이는 형태이다.

고인돌 무덤방과 함께 출토 유물은 월산리에서는 돌끌이나 돌칼 등 실생활용이 발견되고, 장항리에서 가지문 토기 등 부장용 토기가, 창랑리에서 부장용 간돌검이 발견되어 각 고인돌 군집마다 특징을 보이고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0.10.08 현행화 북면 → 백아면
이용자 의견
윤** 2020년 1월 1일부터 북면에서 백아면으로 변경 되었습니다. 수정해주세요.
  • 답변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정 완료하였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0.07.24
임** 同福-水沒地區內- → 同福-水沒地區內支石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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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변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목명은 한자와 한글을 1대 1로 일치시키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기하신 의견은 수용할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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