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6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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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牟山里- |
이칭/별칭 | 모산리 지석묘군,정지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모산리 283|모산리 250|모산리 250-1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이영문 |
소재지 | 모산리 고인돌 떼 -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모산리 283 |모산리 250|모산리 25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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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고인돌 |
양식 | 기반식 고인돌 |
크기(높이,지름) | 510㎝[길이]|276㎝[너비]|234㎝[두께]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모산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위치]
모산리 고인돌 떼는 모산 마을과 금전 마을에 있다. 모산 마을 고인돌은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에서 능주 2교를 지나 죽수 서원으로 들어가는 길 좌측의 논 가운데와 모산 마을에서 하천 건너편으로 금전 마을 앞 경지 정리에서 제외된 정지등이라 부르는 곳에 있다.
금전 고인돌은 금전 교회 뒤쪽 모산리 175번지 뒷마당에 1기, 집 밖 밭[전250-1번지]에 2기, 남쪽으로 약 100m 정도 떨어진 산기슭에 1기가 있다. 행정구역상으로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모산리 283번지와 250번지, 250-1번지에 해당한다.
[조사 경위]
1975년과 1985년 보고에는 금전리 고인돌[1기]로 기록되어 있으며, 1996년에는 모산리로 지명 변경되었다. 1999년에는 금전리 금전 마을과 모산리 모산 마을 사이의 경지 정리된 논 가운데 남아 있는 ‘정지등’이라 하는 곳[283번지]에서 고인돌 8기와 금전 마을[쇳골] 금전 교회 주변[250, 250-1번지]에서 4기의 고인돌이 새로이 보고되었다. 2002년에는 2기와 4기가 분포한 것으로 보았고, 모두 모산리 고인돌 떼로 정정되었다.
[형태]
모산 마을 입구에 있는 고인돌은 원래 2기였지만 농지 정리로 유실된 상태다. 처음 조사 시 일부 노출된 고인돌 아래에 받침돌로 보아 기반식 고인돌이며, 크기는 길이 280㎝, 너비 150㎝, 두께 80㎝로 덮개돌 상면에는 직경 5~10㎝, 길이 3~5㎝의 성혈이 있었다고 한다. 금전 마을 고인돌 중 가장 큰 것은 길이 510㎝, 너비 276㎝, 두께 234㎝의 괴석형 덮개돌 하에는 받침돌 7개가, 바로 옆 고인돌도 길이 300㎝, 너비 273㎝, 두께 85㎝로 받침돌 4개가 고이고 있는데, 받침돌의 크기는 길이 70㎝, 너비 48㎝, 높이 35㎝로 크다. 이런 형태는 전형적인 기반식 고인돌이다. 이외 길이 154㎝와 280㎝인 덮개돌이 있어 규모가 큰 것과 소형들이 군집된 양상이다.
[현황]
모산 마을 고인돌은 논 가운데에 묻혀 있지만 농지 정리 시 길가로 옮겨 놓았다가 지금은 없어져서 확인할 수 없다. 마을 주위에도 고인돌로 보이는 것들이 여러 기 있다. 정지등 고인돌은 묘역의 북쪽 경계면에 모두 8기의 고인돌이 묘역을 따라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지만 그 중 일부는 경지정리 당시 주변 경작지에서 옮겨다 모아 놓은 것으로 보았다.
2002년에는 2기만 보고하여 대부분의 고인돌이 이동된 것으로 보인다. 금전 마을 고인돌은 모두 4기인데,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금전 교회 뒤편으로 민가 안과 밖의 밭, 산기슭 하에서 남북 1열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고인돌의 군집과 배치 상으로 보아 주변에 작은 규모의 고인돌이 몇 기 더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고인돌 군의 남동쪽 산기슭에는 채석장으로 보이는 유적이 확인되었다.
[의의와 평가]
모산리 고인돌은 농지 정리로 유실되거나 이동된 사례에 속한다. 금전 고인돌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고, 대형 고인돌과 소형이 한 군집을 이룬 예이다. 특히 길이 5m 이상에 두께가 2m가 넘는 초대형 덮개돌과 받침돌 7개가 고인 전형적인 기반식 고인돌로 보기 드문 것이다. 기반식 고인돌의 받침돌이 4개가 기본인 것과 함께 7개가 고인 것은 덮개돌의 규모와 관련하여 당시 고인돌 축조 기술의 일면을 보여준다. 또 인근의 채석장은 고인돌의 채석과 운반을 살피는 데 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