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8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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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龜巖里押海丁氏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구암리 |
집필자 | 최성은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구암리에 있는 압해 정씨 집성촌.
[명칭 유래]
구암리는 예전부터 마을 앞에 고인돌이 많아 자갈 바위라 불렸다. 구암 마을의 뜻은 이곳에 굴바위가 있어 굴암이라 하다가 구암으로 변했다고 한다. 혹은 마을 앞에 있는 등성이가 자래등이라 하여 구암 마을이라 했다고도 한다.
[형성 및 변천]
압해 정씨 정치업(丁致業)[1691~1768]을 입향조로 하면서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구암리를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정치업의 자는 경천(敬天), 호는 백인당(百忍堂)이다. 판결사 정인례(丁仁禮)의 후손이며 도암 이재(李縡)의 문인이다. 경학에 전심하고 영리를 구하지 않았다. 천성이 지효하여 특이한 영감이 많았다. 「경몽가(警蒙歌)」를 지어 자손에게 훈시하였다. 1728년 무신난[이인좌의 난]에 개연히 의병에 참여하였고 후에 동몽교관에 추증되었다. 『백인당문집』[1787]이 있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이 유집의 서문을 지었고 연재 송병선(宋秉璿)이 묘표를 지었다. 진주 강씨 처가를 따라 동복현 내서면 창랑에서 읍내면 구암리로 입향하여 정착하였다.
정영억(丁榮億)은 정치업의 증손이며 정효달(丁孝達)의 아들로 호는 십괴헌(十愧軒)이다. 선훈을 이어받아 성학에 잠심하고 「십괴문」을 지어 자손을 훈계하였다. 기정진이 행장(行狀)을 지었다.
정시룡(丁時龍)은 정치업의 5세손이며 정남주(丁南柱)의 아들로 호는 강재(强齋)이다. 효우로 제가하고 풍속을 위하여 향약을 시설하였다. 송병선이 서문을 지어 망미(望美) 두 글자를 석면에 새겨서 충국애군(忠國愛君)한 뜻을 사모하였다.
정극섭(丁克燮)은 정치업의 6세손이며 정시해(丁時海)의 아들로 호는 매학(梅鶴)이다. 경학을 전심하여 문예가 조성하였다. 마음이 안정되고 중후하며 효우가 겸전하였다. 정규명(丁奎明)은 정동섭(丁東燮)의 아들로 호는 강와(剛窩)이다. 송병선(宋秉璿)을 스승으로 섬겨 위기지학을 얻어 듣고 심석 송병순(宋秉珣)이 호를 지어주고 기(記)를 지어서 권장하였다.
정시욱(丁時郁)은 정치업의 5세손으로 정남규(丁南圭)의 아들이며 호는 원옹(願翁)이다. 용모는 괴걸하고 성행은 겸공하며 평생 지성이 오직 양친한데 있었다. 근검으로 집안을 다스리며 자녀를 가르침에 법도가 있었다. 1893년(고종 30)에 고을 사람들이 공의 행의를 들어 도사에 천거하려 하자 장자 정동섭(丁東燮)을 명하여 그치게 하니 세상 사람이 칭찬하였다.
정시모(丁時模)는 정치업의 5세손이며 통정 정남회(丁南繪)의 아들로 호는 연호(蓮湖)이다. 품행이 다른 이와 다르며 마음이 온화하고 효우 돈목하고 모든 물건과 사람을 사랑하니 세상의 표준이 되었다. 수직으로 통정대부를 제수받았다.
정시호(丁時豪)는 정남훈(丁南勳)의 아들로 호는 신암(愼庵)이다. 천성이 온화하고 효우로 가정에 전하며 예의로서 몸가짐을 다스렸다. 기정진과 면암 최익현(崔益鉉)의 문하에서 수업하여 의리를 강마하였다. 수직으로 통정대부를 제수받았다. 유고집이 있다.
정두섭(丁斗燮)은 정시호의 아들로 호는 동광(東狂)이다. 효우하고 돈목하며 문사가 어려서부터 남달랐다. 최익현의 문하에서 종학하여 경의를 강론함에 누차 칭찬을 받았으며 운월정(雲月亭)을 지어 소요하였다.
정병섭(丁秉燮)은 정치업의 6세손이며 정시룡의 아들로 호는 국포(菊圃)이다. 성품이 순박하고 학문이 넓으며 효우가 겸비하였다. 임천에서 뜻을 기르며 벼슬을 구하지 아니하니 향당이 추앙하여 존중히 여겼다.
정남운(丁南運)은 정치업의 현손으로 정영국(丁榮國)의 아들이며 호는 애련당(愛蓮堂)이다. 평생에 학문을 좋아하여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근검함으로 몸을 가지고 겸양과 공손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사랑하였다.
정규호(丁奎鎬)는 정치업의 7세손이며 정인섭(丁仁燮)의 아들이다. 호는 농은(農隱)이다. 용모가 단아하고 문예를 일찍이 터득하였다. 효우가 겸비하고 선조를 돌보며 친족을 돈목하였다.
[자연환경]
구암 마을은 동으로는 시루봉, 서쪽으로는 작살봉, 남쪽으로는 원까끔, 북쪽으로는 용령등이 있다. 동쪽으로는 멀리 모후산이 있고 서쪽으로는 약간의 평야가 펼쳐져 있으며 서쪽 끝 무렵에 동복천이 북에서 남으로 흐른다.
[현황]
2012년 현재 5가구 8명이 압해 정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정치업의 후손 정찬진 소유의 집은 2011년 화순군에서 매입하여 김삿갓이 마지막으로 묵고 숨을 거두었다는 점을 들어 김삿갓 종명지로 활용되고 있다. 인근에 정시룡이 건립했다가 퇴락해 훼철되었던 망미정(望美亭)이 복원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