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9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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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梁居安 |
이칭/별칭 | 천백(遷伯),육화(六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안동교 |
출생 시기/일시 | 1652년 - 양거안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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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87년 - 양거안 생원시 합격 |
몰년 시기/일시 | 1731년 - 양거안 사망 |
출생지 | 양거안 출생지 - 전라남도 화순군 |
서재 | 양거안 서재 경학재(耕學齋)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 |
성격 | 문인 |
성별 | 남 |
본관 | 제주(濟州) |
[정의]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인.
[가계]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천백(遷伯), 호는 육화(六化).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후예이다. 할아버지는 남주 고사(南州高士) 양지남(梁砥南)이며, 아버지는 부호군(副護軍) 양우규(梁禹圭)이다. 양지남은 은봉(隱峰) 안방준(安邦俊)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활동 사항]
양거안(梁居安)[1652~1731]은 경사(經史)를 널리 섭렵하여 문사(文辭)가 날로 성취되자, 박세당(朴世堂)과 윤증(尹拯)의 문하에 나아가 성리학을 연구하였다. 1687년(숙종 13)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였다.
벼슬에 뜻이 없어 화순의 천태사(天台寺)와 쌍봉사(雙峰寺)에 들어가 학문에 열중하면서 박태보(朴泰輔)·황신구(黃信龜)·양득중(梁得中) 등과 교유하였다. 만년에는 쌍봉동(雙峰洞)에 경학재(耕學齋)를 세우고 동지들과 선속계(善俗契)를 결성하였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 『육화집(六化集)』 1책을 남겼는데 1903년에 간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