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1062
한자 金鍾國
이칭/별칭 성가(聖可),율재(栗齋)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만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866년연표보기 - 김종국 의병 활동
특기 사항 시기/일시 1867년 11월 6일 - 모의정 건립
활동지 김종국 활동지 - 전라남도 화순군
묘소 모의정 -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가봉리 지도보기
성격 의병
성별
대표 경력 병인양요 때 의병 활동

[정의]

개항기 병인양요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개설]

조선 후기 1866년(고종 3)에 발생한 병인양요 때에 인근의 유생들과 함께 거의(擧義)한 의병이다.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성가(聖可), 호는 율재(栗齋). 진사(進士) 김대기(大器)의 후손이다.

[활동 사항]

김종국(金鍾國)[?~?]은 1866년(고종 3)에 발생한 병인양요 때 족숙(族叔)인 김인기(金仁基)가 같은 고을의 유생(儒生)인 홍기주(洪璣周), 김종룡(金鍾龍), 김종천(金鍾天), 김종문(金鍾文), 윤학모(尹學模) 등 약 200여 명과 함께 현재 화순군 춘양면 가봉리 가승동에서 창의할 것을 다짐할 때 함께 하였다. 하지만 프랑스군이 이미 토벌되어 기병(起兵) 단계에까지 가지는 못했다.

[상훈과 추모]

김종국 등이 창의할 것을 다짐한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1867년(고종 4) 11월 6일 화순군 춘양면 가봉리 동북편에 있는 호미산(虎尾山)에 모의정(募義亭)을 건립하였다. 그 후 모의정은 비바람에 무너져 가봉리 마을 앞 도로변으로 이건하였다가 후에 퇴락하였는데, 1988년 다시 복원되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