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1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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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有一 |
이칭/별칭 | 무이(無二),연담(蓮潭) |
분야 | 종교/불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미선 |
[정의]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승려.
[가계]
자는 무이(無二), 법호는 연담(蓮潭). 속세의 성은 천씨(千氏)이다.
[활동 사항]
유일(有一)[1720~1799]은 화순군 적천리에서 태어났다. 『통감』·『대학』·『맹자』·『중용』 등 유가 경전을 공부하였다. 1737년 18세에 승달산 법천사(法泉寺)의 성철(性哲)을 따라 출가하였고, 이듬해 안빈 노사(安賓老師)에게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보흥사(普興寺)의 영허 대사에 『사집(四集)』을 배우고, 1739년 봄 대둔사(大芚寺) 벽하(碧霞)로부터 『능엄경』을 배웠다. 또 보림사로 가서 용암(龍巖) 밑에서 『기신론(起信論)』·『금강경』을 배웠으며, 이듬해에는 취서사(鷲棲寺)로 가서 영곡(靈谷)으로부터 『원각경(圓覺經)』을 배우기도 하였다. 1741년 해인사로 가서 체정(體淨)을 뵙고 『염송(拈頌)』 등을 3년 동안 공부하여 선지(禪旨)를 터득하는 등 이후에도 공부를 지속하였다. 1750년 31세 때 보림사(寶林寺)의 초청을 받아 부도암에서 처음으로 『반야경』과 『원각경』 등을 강의한 이래 61세까지 30여 년 동안 선(禪)과 교(敎)를 강설하였다.
1777년에 밀양 표충사(表忠祠)의 원장으로 추대되기도 하였고, 1779년 60세 때 창평 서봉사의 주지로 있으면서 시기하는 승려의 투서 때문에 퇴암(退庵)과 함께 옥에 갇히기도 하였으나 무죄로 판명되어 풀려 나왔다. 1799년 장흥 보림사 삼성암(三聖庵)에서 입적하였다.
[사상과 저술]
저술로는 『서장 사기(書狀私記)』 1권, 『도서 사기(都序私記)』 1권, 『선요 사기(禪要私記)』 1권, 『절요 사기(節要私記)』 1권, 『기신 사족(起信蛇足)』 1권, 『금강 하목(金剛 蝦目)』 1권, 『원각경 사기(圓覺經私記)』 2권, 『현담 사기(玄談 私記)』 2권, 『대교 유망기(大敎遺忘記)』 5권, 『제경 회요(諸經 會要)』 1권, 『염송 착병(拈頌着柄)』 2권, 『임하록(林下錄)』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서산(西山)의 의발(衣鉢)을 전수하였고, 전라남도 해남군 대흥사(大興寺)의 12대종사(大宗師) 중 1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