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2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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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董求蘭-墓- |
이칭/별칭 | 동구란의 묘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
집필자 | 한미옥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82년 - 「동구란의 묘」 『화순의 전설』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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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국동 마을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국동리 국동 마을 |
성격 | 전설|민간 신앙 |
주요 등장 인물 | 동구란|마을 사람들 |
모티프 유형 | 민간 신앙의 기원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국동 마을에 살던 동구란이라는 장사의 묘에 얽힌 이야기.
[개설]
동구란은 중국인이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화순군 동면 국동 마을에 살게 되었다. 얼굴과 덩치가 관운장과 닮았으며 술과 밥을 한 말씩 먹는 거인이었다. 마을 사람들에게서 술과 밥을 얻어먹었는데, 어느 해 마을에 흉년이 들어서 사람들이 동구란의 먹을 것을 대지 못하자 동구란이 마을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합심해서 동구란을 구덩이에 파묻어 버렸는데, 그 뒤부터 동구란의 묘 앞을 지나가면 반드시 병이 났다. 병이 나면 무덤 앞에 술과 밥으로 고사를 지내면 백약이 무효이던 병이 나았다고 한다.
[채록/수집 상황]
1982년에 강동원이 편찬한 『화순의 전설』에 「동구란의 묘」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내용]
화순군 동면 국동 마을에 동구란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동구란은 원래 중국 사람이었는데 어느 때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마을 입구 산모퉁이 으슥한 곳에 처자도 없이 홀로 집을 짓고 살았다. 힘이 장사요, 얼굴은 관운장의 풍모에 신체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거인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동장사’ 하고 받들어 모셨고, 매일 술 한 말, 밥 한 말씩 먹는 거인이었다. 어느 해 흉년이 들어 사람들이 산나물로 연명하여 동장사에게 술과 밥을 제공하지 못하자 동장사가 마을 사람들의 곡식을 빼앗아 먹고 부녀자를 희롱하는 등 횡포를 부렸다. 이에 견디다 못한 마을 사람들이 묘책을 내었다.
어느 날 술을 잘 마시는 장정 몇이서 동장사를 속여 화순장으로 함께 가서 술대접을 한다는 명목으로 취하게 한 다음 마을로 데리고 왔다. 마을 어귀 밭 언덕에는 마을 사람들이 때맞추어 웅덩이를 파고 있었다. 동장사가 그것을 보고 무엇을 하느냐고 묻자, 사람들이 호랑이를 잡기 위해 웅덩이를 파고 있다고 하였다. 동장사가 그 말을 듣고 호기심에 구덩이 가까이에 가자 마을 사람들이 동장사를 힘껏 구덩이 속에 밀어 넣고는 다투어서 돌을 구덩이에 던지기 시작했다. 동장사는 있는 힘을 다해서 돌을 밖으로 던져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렇지만 돌무덤은 사흘간이나 움직였다고 한다. 그 일이 있고난 후 이상한 일이 생겼다. 마을 사람들이 돌무덤 부근을 지나가면 반드시 병을 얻어 고생을 하는데 백약이 무효라는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한 것은 그 무덤 앞에 술과 밥으로 고사를 지내면 씻은 듯이 병이 낫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이 무덤을 지나가다가 병이 생기면 모두 제사를 지내 주었는데 지금도 당시 제기로 쓰였던 그릇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닌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동구란의 묘 이야기」의 모티프는 ‘마을 공동체 신앙의 기원’ 또는 ‘민간 신앙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동구란이 힘이 센 장수이지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고, 그로 인해 마을에 병이 돌았는데 돌무덤 앞에 제사를 지내면 병이 낫는다는 것은 전통 사회에서 마을에 있는 돌탑 또는 조탑이라고 불리는 돌무더기 앞에서 제사를 지내는 마을 신앙과 관련이 깊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마을 공동체 신앙의 유래나 기원을 설명하는 유래담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