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2101 |
---|---|
한자 | 映碧亭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학포로 1922-53[관영리 1]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대현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관영리에 있는 영벽정에 대해 양팽손, 김종직, 정의림 등이 읊은 한시.
[개설]
시의 배경인 ‘영벽정’은 계절에 따라 변하는 연주산(聯珠山)의 경치가 맑은 지석 강물에 투영되어 운치 있게 바라볼 수 있다 하여 이름이 붙여진 정자이다. 능주 팔경의 하나로 연주산 밑 지석강의 상류 영벽 강변(映碧江邊)에 있다. 정자의 건립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양팽손(梁彭孫) 등이 쓴 제영과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실린 김종직(金宗直)의 시 등으로 볼 때 15세기 후반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능주목[능주군], 즉 관청이 주도하여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1632년(인조 10) 목사 정윤이 아전들의 휴식처로 개수하였으며, 1872년(고종 9)에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이듬해 목사 한치조(韓致肇)가 중건하였다. 이후 보수를 거듭해오다가 1982년과 1983년에 각각 보수하였으며, 1988년에 해체하여 복원하였다. 양팽손 외에도 양재해, 양교묵, 한치조, 정의림, 김종직 등이 영벽정에 대해 읊은 시가 있다.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67호로 지정되었다.
[구성]
양팽손과 정의림이 쓴 시는 모두 칠언 절구로 운자는 녕(寧), 정(亭)으로 같다. 한치조가 쓴 시는 칠언 율시로 관(觀), 단(端), 관(寬), 환(歡)이다.
[내용]
「영벽정(映碧亭)」 / 양팽손
태평종고개무형(太平從古豈無形)[태평세월 예로부터 어찌 모습이 없으랴]
백리상마자제녕(百里桑麻子弟寧)[백리들에 상마를 가꾸니 자제들 편안하도다]
대안벽봉당현곽(擡眼碧峯當縣郭)[눈을 들어보니 푸른 봉우리가 성곽처럼 되어서]
영군진유차강정(令君眞有此江亭)[그대로 하여금 진실로 이 정자를 두었다네]
「영벽정(映碧亭)」 / 정의림
홍능산수화난형(紅綾山水畵難形)[비단 같은 산수는 그리기가 어렵고]
민부물풍백리녕(民富物豊百里寧)[백성 부유하고 물산 풍족해 백리가 평안하네]
남주승상간하처(南州勝狀看何處)[남쪽의 절경을 어디서 찾아볼까]
서석귀로우차정(瑞石歸路又此亭)[서석산 돌아 나오는 길 또 이 정자 있다네]
「영벽정에 부쳐(題映碧亭)」 / 한치조
산광수색동주란(山光水色動朱欄)[산수가 아름다워 붉은 난간 더욱 좋다]
구제중신요후관(舊制重新耀後觀)[옛것을 다시 꾸몄으니 이제 보기 새롭구나]
금일고성응유수(今日告成應有數)[오늘에야 낙성을 알리니 하늘의 도움이요]
향래회록태무단(向來回祿太無端)[지난번 화재는 뜻밖의 일이었네]
공여휴객등임호(公餘携客登臨好)[공무여가엔 객과 함께 오르기 좋으며]
농극조병진퇴관(農隙調兵進退寬)[농한기 때는 군대를 점검해 연병장으로 쓰이리라]
각여봉서루공치(却與鳳棲樓共峙)[이제 봉서루와 마주보게 되었으니]
항주미목사인환(杭州眉目使人歡)[항주의 풍경인 듯 사람을 기쁘게 하네]
‘회록(回祿)’은 화재(火災)를 뜻하며, ‘항주(杭州)’는 중국 절강성(浙江省)에 있는 명승지이다.
[의의]
영벽정을 읊은 한시는 능주 문학의 중요한 부분으로 영벽정은 물론 주변 풍광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들이다. 양팽손은 태평성대 시절 아름다운 영벽정의 모습을 그려냈고, 능주의 무등산 산자락에 자리한 영벽정을 노래했다. 한치조(韓致肇)는 1872년(고종 9) 화재로 영벽정이 소실되자 그 이듬해 중건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시를 썼다. 한치조의 시를 보면 당시의 영벽정이 농한기를 빌어 군사 훈련장으로도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흥미롭다.
소개한 작품 이외에도 영벽정에는 많은 차운시(次韻詩)들이 남아있다. 양팽손의 「영벽정」과 운자가 같은 시를 지은 문인들로는 양치영(梁致永)·양진영(梁進永)·양교묵(梁敎黙)·정의림(鄭義林)·조세현(曺世鉉) 등이 있고, 중건을 기념한 목사 한치조가 쓴 시에도 양재해(梁在海)·주윤술(朱允述)·양재국(梁在國) 등이 차운한 시들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