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B030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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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생활·민속/생활,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마을/마을 이야기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복암리 구암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한미옥 |
최병철 씨 출생 | 1953년 - 최병철 씨가 충남 공주에서 출생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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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철과 조효순씨 혼인 | 1976년 - 최병철과 조효순이 혼인하였다. |
최병철과 조효순 부부 화순으로 귀향 | 1979년 - 최병철, 조효순 부부가 화순으로 귀향하였다. |
최병철, 광부가 되다. | 1980년 - 최병철 씨가 화순광업소 광부가 되었다. |
최병철, 천운 마을 이장이 되다. | 2006년 - 최병철 씨가 천운 마을 이장이 되었다. |
마을지 | 천운동 마을회관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천운길 12 |
마을지 | 포장된 마을길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복암리 |
마을지 | 꽃길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복암리 |
[전국에 안가본데가 없을 정도로 살아온 사람]
천운 마을 최병철 이장은 1953년에 충청도 공주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아홉이나 되는 자식들을 두고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탓에 어머니 혼자서 자식들 키우고 생활을 꾸려가다 보니 그 고생이야 말로 할 수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최병철 씨는 열여덟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집을 나와 버렸다. 어린 나이에 사회에 나와 혼자 살아가게 된 최병철 씨는 전국 각지 안다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그때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꿀벌을 치는 ‘이동양봉’이라는 것을 했는데, 2월 초에 제주도에서 텐트를 치고 자면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리곤 했다며 몸서리치는 지난 가난을 회상했다.
그렇게 살다가, 다시 공주로 가서 한약방에 취직을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던 부인 조효순 씨를 만났다. 스물네 살 동갑으로 만나서 혼인을 하고, 다시 서울로 공주로 생계를 위해 돌아다녔던 지난 세월이었다. 여러 번의 부침 끝에 결국 스물일곱 살에 무작정 처가가 있는 화순으로 내려왔다. 그것이 최병철 씨와 천운 마을과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하루 스물 네 시간이 바쁜 천운 마을 이장님]
1979년에 처가인 화순군 동면 서석리로 들어와 천운 마을에 터를 잡고 광부로 살아온 지 벌써 31년이 넘어간다. 처음 화순으로 왔을 때의 막막함도 이제는 옛이야기가 된지 오래다. 1999년 아이엠에프 때 할 수 없이 명예 퇴직을 하고 그 뒤로는 하청 직원으로 다니고 있지만, 그래도 삼십 년을 넘게 한 직장을 다니고 있는 셈이니 그 세월만큼 탄광에 대한 애정도 깊다. 어디 탄광에만 그러겠는가. 그가 살고 있는 천운 마을에 대한 애정은 또 얼마나 깊은지 모른다.
최병철 씨가 천운 마을 이장이 된 지는 올해로 육년 째다. 처음 마을 일을 맡으라는 제안을 받고 잘 할 수 있을까 고민도 많았다. 일단 맡고 보니 쌓여있는 마을 일에 후회할 시간도 부족했다. 비가 새는 천운 마을 회관도 수리해야 하고, 도로 포장에, 마을 정비에, 혼자 사는 노인들 걱정에 하루 스물네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일을 했다. 새벽 다섯시면 아침밥을 먹고 나가서 밤 열시, 열한 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들어오는 남편 때문에 부인 조효순씨는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다고도 한다.
최병철 씨는 마을의 여러 가지 일들은 물론이고, 외지 사람들이 마을 소개를 부탁하거나 탄광에 관련한 일을 부탁하면 누구보다도 먼저 발 벗고 나서곤 한다. 최근에는 EBS 방송국에서 화순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들의 작업을 촬영하러 왔는데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그때 최병철 씨 자신이 직접 광부로 작업하는 모습을 촬영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서 방송이 무사히 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천운 마을 이장의 희망]
천운 마을 주민들에게 이장님은 든든한 보호자다. 2012년 현재 아파트를 제외한 47가구 중에 17가구가 혼자 사는 노인들인데 혹시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이장님 부부는 한밤중이라도 병원이 있는 화순읍이나 광주로 모시고 가곤 한다.
밤이고 낮이고 가리지 않고 천운 마을을 위해 지내온 지난 시간들. 이제는 탄광도 사양길로 접어든지 오래고, 천운 마을도 자꾸만 비어간다. 안타까운 마음에 이장님은 몇 년 전부터 관공서를 찾아다니며 마을의 미래를 새롭게 꾸며가고 있는 중이다.
현재 2015년까지 화순 광업소를 폐광하기로 이미 결정이 난 상태다. 탄광 말고는 딱히 수입원이 없는 마을이 비는 것은 순식간의 일일 것이다. 이장님은 그런 마을을 살리기 위해 대한 석탄 공사가 나간 뒤에 그 자리에 다른 공장이 들어오도록 추진해줄 것을 화순군청은 물론 광해 산업 공단과 지식 경제부에 청원을 넣었다.
마을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놓을 줄 아는 천운 마을 최병철 이장은 오늘도 이렇게 말한다. “나는 먹고 살만 하고, 그러니 나보다 못한 사람을 도와야겠다고 마음 먹어서, 마을 사람들을 위해 마음을 쓰다 보니 마을이 좋아진 것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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