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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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시대 화순 지역에서 부모를 섬기는 데 정성을 다한 자녀. 효(孝)는 예로부터 백행(百行)의 근본으로 강조되었으며, 가정 질서의 기본이 됨은 물론 국가를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인식되었다. 효에 대하여 『소학(小學)』에서는 ‘부모를 지성으로 섬기는 것’이라 하였고, 『논어(論語)』에서는 ‘예(禮)에 어긋남이 없게 하는 것’이라 정의하였다. 또한 『효경(孝經)』의 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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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화순군의 효자. 본관은 장흥(長興). 자(字)는 성겸(聖兼), 호(號)는 운재(芸齋). 고현(高鉉)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고세은(高世殷)이다. 고진표(高鎭表)[?~?]는 자질이 영특하여 경학을 연구하여 조예가 깊었다. 효성과 우애가 깊었고, 순리대로 부모님을 모실 때 효성스러움이 육적(陸績)[회귤고사로 유명한 효자]과 황향(黃香)[아버지를 봉양할 때 더울 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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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에서 활동한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반계(盤溪). 충의공(忠毅公) 김문기(金文起)의 12세손이고, 덕준(德俊)의 아들이다. 김학린(金學隣)[?~?]은 성품이 순수하였고, 아우 김성린(金聖麟), 김벽린(金堛麟), 김필린(金弼麟), 김명린(金命麟), 김수린(金壽麟)과 함께 어버이를 효성으로 봉양하였다. 머리카락을 팔아 쌀을 구해 정성으로 모셨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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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에서 활동한 효자. 본관은 남평(南平), 자(字)는 성화(聖和), 호(號)는 둔계(遯溪). 문자수(文自修)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문사신(文思臣)이다. 문명규(文命圭)[?~?]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깊었다. 어버이가 병이 나니 천태산에서 약을 찾아다니다 산삼을 얻었다. 기뻐하며 부모님께 드리니 묵은 병이 즉시 나았다. 부모의 상(喪)을 당하고 묘 곁에 움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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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화순에서 활동한 효자. 부모에게 효도하고 십호정(十皓亭)을 지어 고을 사람들에게 학문을 권하니 고을에서 천거를 받았다. 본관은 달성(達城). 자(字)는 중초(重初). 배을서(裵乙瑞)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배서(裵恕)이다. 배경복(裵景復)[?~?]은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가 지극하였다. 부모님께 병이 생기자 정성을 다하여 보살폈다. 부모님의 상(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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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화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신평(新平). 자(字)는 여진(汝眞)이고, 호(號)는 운호(雲湖). 사헌부(司憲府) 집의(執義)를 지낸 송자은(宋自殷)의 후손이다. 송상언(宋相彦)[?~?]은 어버이를 섬김에 지극한 효도로써 하고, 부모님께서 병에 드시니 수십 년 동안 약 시중을 한결같이 하였다. 병이 매우 심해져서 하늘에 기원하니 천신(天神)이 감응하였다. 부모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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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보성(寶城). 자(字)는 찬형(贊亨), 호(號)는 지암(芝庵). 오현필(吳賢弼)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첨중추(僉中樞) 오경관(吳慶寬)이다. 오인혁(吳仁爀)[?~?]은 부모님의 병환에 눈물 흘리고 근심하며 먹지 않고 정성으로 돌보았다. 병이 깊어지니 하늘에 빌고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드려서 부모님께서 수일 간 연명하게 하였다. 부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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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효자. 유광재(柳光載)의 현손(玄孫)이고, 아버지는 유사동(柳思東)이다. 유성오(柳成五)[?~?]는 효성과 우애가 순수하고 독실하였다. 달고 맛있는 음식으로 부모님을 봉양하였다. 화재가 나서 사당을 구원하려고 신주를 안고 나오다 죽었다. 고을 사람들이 이를 슬퍼하고 불쌍히 여겼다. 고을에서 천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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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인동(仁同). 자(字)는 원서(元瑞), 호(號)는 근암(謹庵). 교위(校尉) 장세재(張世梓)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장일명(張一明)이다. 장표황(張表晃)[?~?]은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어머니가 병환이 든 지 삼 년에 백약이 무효하고 위급해지자 아우들과 연이어 손가락을 끊고, 허벅지 살을 베어 피를 드려 수일 간 연명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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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효자.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무신난(戊申亂)]에 의병을 일으켰고, 고종 무신(戊申)년에 충효가 지극하여 동몽 교관을 증하였다. 본관이 창원(昌原), 자(字)는 경천(敬天), 호(號)는 백인당(百忍堂). 판결사(判決事) 정인례(丁仁禮)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정수규(丁壽奎)이다. 정치업(丁致業)[?~?]은 아버지가 병이 들어 여름에 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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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창녕(昌寧), 호는 송파(松坡). 조엽(曺熀)의 후손이다. 조기태(曺基泰)[?~?]는 어머니가 일찍이 홀로 된 후 어린 아이 넷을 스스로 맡아 기르면서 매일 10전씩을 10년 간 저축하여 어머니께 금강산 절경을 관광하시는 데 사용하게 하였다. 또 어머니의 생일을 대비하여 9년을 저축하여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렸으며, 양친을 위해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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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字)는 광중(光衆), 호(號)는 노가정(老稼亭). 정자(正字)를 지낸 조수홍(曺守弘)의 7대손이고, 아버지는 조진필(曺縉弼)이다. 조석윤(曺錫胤)[?~?]은 어릴 때부터 밖에서 과일을 얻으면 품고 돌아와 어버이께 드려서 당시에 효자주(孝子酒)[효자의 술]와 효자어(孝子漁)[효자의 고기]의 이름이 있었다. 어머니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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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화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字)는 약우(若祐), 호(號)는 수졸(守拙). 교리(校理) 운곡(雲谷) 조호(曺浩)의 8세손이고, 조창적(曺昌績)의 아들이다. 조홍천(曺弘天)[?~?]은 천성이 인자하고 효성스러워 몸소 음식을 바치고 봉양하였다. 부모님의 병환이 위급하여 손가락을 끊어 피를 드려 회생시켰다. 부모의 상(喪)을 당하여 묘에 움막을 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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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에서 활동한 효부. 본관은 수원(水原). 이택화(李宅和)의 며느리이다 이택화(李宅和) 자부 수원 백씨(水原 白氏)[?~?]는 시아버지가 황해도에서 죽었다는 부음을 듣고 시동생과 같이 시신을 운반해 오는데 이동 중 시동생도 죽었다. 이에 백씨가 두 시신을 담은 널을 짊어지고 머리에 이고 울부짖으며 왔다. 가는 곳마다 지방수령들이 운반하는 데 호송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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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에서 활동한 효부. 본관은 단양(丹陽). 임남수(林南洙)의 부인이다. 임남수 처 단양 우씨(林南洙 妻 丹陽 禹氏)[?~?]는 40살이 못 되어서 남편이 죽었다. 시부모를 모시고 어린 아이를 양육하려고 고기를 잡고, 나무를 하고, 밭도 갈고, 길쌈도 하며 성실하게 살았다. 시어머니의 성격이 가혹했으나 시어머니의 뜻을 잘 받들고 시어머니를 기쁘게 하는 데 힘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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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에서 활동한 효부. 본적은 경주(慶州). 황재출(黃再出)의 부인이다. 황재출 처 경주 최씨(黃再出 妻 慶州 崔氏)[?~?]는 여자의 덕을 잘 갖추고 시부모를 정성스럽게 섬기며 효도하였다. 집에 불이 나서 늙으신 시어머니를 구하러 방에 들어갔다. 시어머니를 업고 나오다가 불길을 뚫고 나오지 못하고 죽었다. 조정에서 1794년(정조 18)에 정려(旌閭)를 내렸...
열녀·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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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시대 화순에서 남편을 잘 섬기고 절개를 지킨 부녀자. 열녀(烈女)는 오랜 세월 고난과 싸우며 수절하거나 위급할 때 목숨으로 정조를 지킨 부녀자를 일컫는 말이다. 열부(烈婦)라 하기도 한다. 조선 시대 들어 성리학이 뿌리를 내리면서 “부녀자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는 정절 사상이 일종의 계율로 장려되었고, 수절은 부인이 마땅히 지켜야 할 기본 덕목으로 간주되었다. 제도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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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열녀. 전라도 장수군 출생으로 최경회의 부실인 논개는 임진왜란에 최경회가 진주성에서 순절하자 촉석루에서 전승 잔치를 벌이던 왜장을 끌어안고 강물로 몸을 던졌다. 본관은 신안(新安). 진사(進士) 주달문(朱達文)의 딸이다. 논개(論介)[1574~1593]는 재주와 지혜가 뛰어나고 시문(詩文)에 능하였다. 13세에 부친을 잃고 모녀가 숙부인 주달무(朱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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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에서 활동한 열녀. 본관은 곡부(曲阜). 공이천(孔伊川)의 딸로, 생원(生員) 조위중(曺偉中)의 처(妻)이다. 조위중 처 곡부 공씨(曺偉中 妻 曲阜 孔氏)[?~1597]는 여자가 지켜야 할 떳떳하고 옳은 도리를 따르며 살아왔다. 정유재란 때에 왜군이 전라도를 휩쓸며 화순 땅에 들어와 공씨를 핍박하려 하자,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자결하였다. 사문에 정려(旌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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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에서 활동한 열녀. 본관은 문화(文化). 참의(參議) 덕용(德容)의 딸로 최서생(崔瑞生)의 부인이다. 최서생 처 문화 유씨(崔瑞生 妻 文化 柳氏)[?~1597]는 정유재란 때에 피란을 가려고 남편과 함께 흥덕(興德) 사진포(沙津浦)에 이르렀다. 그때 적의 무리가 몰려와 남편을 죽였다. 이에 세 살 된 어린 아들을 가노(家奴)인 순동에게 부탁하고 물에 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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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정유재란 때 주인을 따라 죽은 화순 출신의 충노(忠奴). 목산(木山)[?~?]은 하대붕(河大鵬)의 노(奴)이다. 정유재란 때 하대붕의 부인인 오씨(吳氏)가 하대붕이 왜병에 포로로 잡혔다는 소식을 잘못 전해 듣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목산은 “외주(外主)는 피로(被擄)되었고, 내주(內主)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니 내 어찌 혼자 살겠는가.”하고 주인을 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