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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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정세아(鄭世雅)의 학덕과 충의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한 정자. 정세아[1535~1612]의 본관은 영일. 자는 화숙(和叔), 호는 호수(湖叟)이다. 1558년 사마시에 급제해 진사(進士)가 된 후 임진왜란 때 창의정용군을 조직해 영천성 수복 전투와 경주성 탈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전란이 진정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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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역사적으로 일어난 호국(護國)에 관한 사실. 영천은 일찍이 고대부터 최근세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국난 극복의 보루 역할을 한 사례가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통하여 영천이 국가의 어려움이 있을 때 그를 극복하는 중요한 지역이었으며, 영천인들의 국난 극복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1. 신라 김유신(金庾信)과 호국 여신(女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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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서부동에 속하는 법정동. 대전동(大田洞)은 큰 밭[한밭]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하며, 또는 이보흠(李甫欽)의 호 대전(大田)에서 연유한다고 한다. 대전동은 원래 영천 이씨가 주류를 이루던 마을로서, 조선 말기 13도제 실시로 영천군 명산면(鳴山面)에 속하였다. 1914년 3월 1일 영천군과 신녕군을 영천군으로 통폐합하면서 상대전동(上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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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나무에 글을 새긴 인쇄용 판. 목판은 주로 사찰과 서원, 문중(門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문집 간행에 필요한 인쇄용 판을 말한다. 영천 지역에서는 고려 말 성리학이 도입되고 조선 왕조가 숭유정책을 취하면서 일찍부터 유가적 문풍(文風)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1. 고려 시대 여말 선초 영천 지역의 유풍(儒風) 진작에 영향을 끼친 인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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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의 문화 활동에 대한 소산으로서 문화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유형 무형의 자산. 문화재는 오랜 기간을 통하여 예술·과학·종교·도덕·법률·경제·민속·생활양식 등에서 문화적 가치를 이루어 온 소중한 자산이다. 우리나라는 1962년 제정한 문화재보호법에서 문화재를 역사상·예술상·학술상·관상상(觀賞上) 가치가 큰 것으로서, 다음의 네 가지로 분류하여 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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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마을은 조선 인조 때 호수(湖叟) 정세아(鄭世雅)[1535~1612]의 장손인 정호례(鄭好禮)[1604~1672]가 입향해 세거한 영천의 대표적인 동족마을로, 현재 행정구역으로는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 지역이다. 선원마을은 자호천과 선원천을 곁에 두고 그 뒤로 해발 200m 내외의 학산이 병풍처럼 둘러 있어 주변 산수가 너무 아름다워 도연명(陶淵明)의 무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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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정호신(鄭好信)이 위해 건립한 정자. 정호신[1605~1649]의 본관은 영일, 자는 덕기(德基), 호는 삼휴정(三休亭)이며, 할아버지 호수(湖叟) 정세아(鄭世雅)[1535~1612]가 살았던 삼귀리에 ‘삼휴’라는 시를 짓고 정자를 삼휴정이라 했다. 저서로는 『삼휴일고(三休逸稿)』가 전하며, 영천시 고경면 초일리에 묘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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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충신. 이국빈(李國賓)의 자는 여관(汝觀), 호는 국헌(菊軒)이며, 1560년(명종 15)에 태어나 1624년(인조 2)에 세상을 떠났다. 고려 개국공신 이능일(李能一)을 시조로 하는 성산 이씨(星山李氏)로, 고조는 수의부위(修義副尉) 이석보(李錫保), 증조는 영천으로 이주한 참봉(參奉) 이방(李芳)이며, 조부는 영릉 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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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충신. 이군빈(李君賓)의 본관은 성산. 자는 중관(中觀), 호는 남포(南浦)이며, 1568년(선조 원년)에 태어나 1640년(인조 18)에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수의부위(修義副尉) 이석보(李錫保)이고, 증조는 영천으로 이주한 참봉(參奉) 이방(李芳)이며, 조부는 영릉참봉(英陵參奉) 이언기(李彦沂)이다. 아버지는 이억령(李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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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정세아(鄭世雅)의 본관은 영일. 자는 화숙(和叔), 호는 호수(湖叟)이고, 1535년(중종 30)에 태어났다. 고조는 사성(司成) 정종소(鄭從韶)이며, 증조는 찰방(察訪) 정이휘(鄭以揮), 조부는 정차근(鄭次謹)이다. 아버지는 창릉 참봉(昌陵參奉) 정윤량(鄭允良)이며, 어머니는 의인 최씨(宜人崔氏)로 봉사(奉事) 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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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열녀. 정유인(鄭裕仁)의 처 밀양 박씨(密陽朴氏)는 박형태(朴亨泰) 딸이다. 정유인은 호수(湖叟) 정세아(鄭世雅)의 후손으로, 고조는 정기양(鄭岐陽), 증조는 정일종(鄭一宗), 조부는 정하시(鄭夏時), 아버지는 정진휴(鄭軫休), 어머니는 영산 신씨(靈山 辛氏) 신명신(辛命新)의 딸이다. 밀양 박씨는 슬하에 후사(後嗣)가 없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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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충신. 고려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는 영일 정씨(迎日鄭氏)[오천 정씨]는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를 지낸 정인언(鄭仁彦)과 그의 아들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판서(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부터 영천 전촌(錢村)에 옮겨 살았다. 정의번(鄭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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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백암(柏巖) 정의번(鄭宜藩)의 노비. 임진왜란 때 영천 지역의 의병들은 영천성 탈환의 여세를 모아 경주성 탈환 전투에 참전하게 되었다. 정의번은 늘 앞장서서 적을 공격했고, 그의 종 억수는 충실히 주인을 보필했다. 그러나 적군이 기병을 투입하여 아군의 뒤쪽을 공격하고, 앞쪽에 매복했던 병사들이 일시에 공격을 해오자 아군은 당황하기 시작하였으며, 주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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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에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정의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충효각. 정의번(鄭宜藩)[1560~1592]의 본관은 영일, 자는 위보(衛甫), 호는 백암(柏巖)으로 정세아(鄭世雅)의 아들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박소’에서 권응수와 정대임이 승리하는데 앞장섰고, 아버지 호수 정세아와 함께 의병[창의정용군]을 조직해 영천성 복성(復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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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대전동 52에 있는 조선 후기의 해남 현감 정호례(鄭好禮)가 지은 살림집. 정호례[1604-1672]의 자는 자립(子立), 호는 요산(樂山)이며, 1636년(인조 14) 무과에 급제하였는데,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임금의 수레를 호위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갔다. 이듬해 봄 어머니 상을 당하여 고향에 돌아와 상제(喪制)를 마치고 선전관(宣傳官)으로 나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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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에 있는 정일진과 정하준 부자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정사. 환고 정사는 조선 후기 유학자인 학고(鶴皐) 정일진(鄭一鎭)과 교와(郊窩) 정하준(鄭夏濬)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정자이다. 정하준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경원(景遠), 호는 교와로 경상북도 영천(永川) 출신이며 부친이 정일진이다. 문집으로 3권 1책의 『교와유집(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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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에 있는 정세아(鄭世雅)와 정의번(鄭宜藩)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 환구 세덕사(環丘世德祠)는 임진왜란 때 영천 출신 의병장이었던 정세아와 정의번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사당이다. 정세아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화숙(和叔), 호는 호수(湖叟)이며, 영천 출신으로 정윤량(鄭允良)의 아들이다. 정의번의 자는 위보(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