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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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효정2리에 있는 나주 정씨 신녕파 문중 재사(齋舍). 곽남재(郭南齋)는 조선 인조 때 학자인 정민도(丁敏道)를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인 정남주가 문중산 아래에 초창을 하고 이후 후손들을 수호하기 위한 재사로 이어져 왔다고 전해진다. 곽남재는 영천시 화산면 효정2리 마을 앞 산 아래 있는 곽산저수지 옆에 있다. 효정2리 마을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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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존유(具存裕)를 시조로 하고 구규징(具規徵)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세거 성씨. 고려 광종(光宗) 때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삼중대광(三重大匡) 검교상장군(檢校上將軍)을 역임한 구존유를 시조로 하는 능주 구씨(綾州具氏)는 7세에 이르러 11개 파로 분파되었다. 영천 지역에 세거하는 능주 구씨는 좌정승공파(左政丞公派)로 파조는 고려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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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천리(大川里)는 초기에 정씨(丁氏) 조상이 중국 대천리에서 왔기 때문에 ‘대리(大里)’라 하였고, 또한 물이 맑고 차가웠기에 한내·생천(生川)이라고도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대리의 ‘대(大)’자와 생천의 ‘천(川)’을 따서 대천리라 칭하게 되었다. 대리는 정광성(丁光成)이란 선비가 16세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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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로(朴仁老)[1561~1642]는 경상북도 영천 출신으로, 가사 문학의 정수를 보여준 무인 겸 문인가객이다. 본관은 밀양이며, 자는 덕옹(德翁), 호는 노계(蘆溪) 또는 무하옹(無何翁)이다. 그의 생애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초반에는 임진왜란에 종군한 무인으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지고, 후반에는 독서와 수행으로 초연했던 선비와 문인 가객으로서의 면모가 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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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마을은 조선 인조 때 호수(湖叟) 정세아(鄭世雅)[1535~1612]의 장손인 정호례(鄭好禮)[1604~1672]가 입향해 세거한 영천의 대표적인 동족마을로, 현재 행정구역으로는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 지역이다. 선원마을은 자호천과 선원천을 곁에 두고 그 뒤로 해발 200m 내외의 학산이 병풍처럼 둘러 있어 주변 산수가 너무 아름다워 도연명(陶淵明)의 무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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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석촌리(石村里)는 마을에 멋진 바위가 있어 석촌(石村)이라 불렀다고 한다. 한때 석계정(石溪亭)이라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다시 석촌이라 하였다고 한다. 석촌은 조선 인조 때 경주 김씨 형제가 정착한 마을이며, 박연(朴淵)덤은 마을 앞의 절벽으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권응수(權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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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 속하는 법정리. 선원리(仙源里)는 조선 시대 인조 때 입향한 정호례(鄭好禮)가 ‘송내(松內)’를 도연명(陶淵明)의 무릉도원(武陵桃源)에 비유하여 ‘선원(仙源)’이라 부른 것이 마을 이름이 되었다. 선원동의 남쪽 자호천 건너편 들판에 정·김·이 세 성씨의 세 가구가 동네를 제일 먼저 형성했는데, 자연 마을 명칭은 세각단이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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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옥계리에 있는 서당. 조선 인조 때의 문인 김복천(金馥天)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서당이다. 양우당은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옥계리의 마을 내에 있다. 35번 국도를 따라가면 자양 방면[보현산 천문과학관]으로 빠지기 직전에 옥계리 버스 정류소가 나온다. 버스정류소 뒤쪽 마을 안에 있으며 주택과 같은 대지 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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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약남리 수남마을에 있는 전삼달(全三達)의 공적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정자. 전삼달[1570~1632]의 자는 군형(君炯), 호는 영고정(潁皐亭)으로 용궁 전씨(龍宮全氏) 우천공파(寓川公派)로 영천 입향조인 전영창(全永昌)의 5세손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출전해 공을 세워 훈련원주부(訓練院主簿)에 보직되고, 원종공신록(原從功臣錄)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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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해선리에 있는 이영찬(李英讚)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齋舍). 영모재는 포항~영천 간 국도 28호선의 고경면사무소를 지나 우측에 있는 장재 못을 지나서 북서쪽으로 30m 지점의 언덕에 있다. 이영찬은 조선 인조 때 훈련원정을 지냈다. 영모재의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대청 상부 종도리 장혀에 ‘단기사천삼백년정미사월십오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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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옥계리(玉溪里)는 마을 앞개울에 구슬 같은 둥근 암반이 많고 물이 맑아 불리어진 이름이다. 일제 강점기인 1914년 군·면을 통폐합할 때 신녕군을 영천군으로 통폐합함에 따라 영천군과 신녕군의 경계 지역은 화동면·지곡면·신촌면으로 재구성하여 영천군에 편입되었다. 그래서 신녕군 신촌면(新村面) 죽전·상송·하송·용소·법화·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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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이세익(李世益)의 본관은 성산, 자는 중겸(仲謙)이다. 고조는 이억령(李億齡)이며, 증조는 장사랑 정읍훈도(將仕郞井邑訓導) 이용빈(李用賓), 조부는 이희영(李喜榮)이다. 아버지는 병자호란 때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호가(扈駕)한 공훈으로 호군(護軍)에 봉했으나 부임하지 않은 이즐(李瀄)이며, 어머니는 오천 정씨 총관(摠管)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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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이형상(李衡祥)의 본관은 전주. 자는 중옥(仲玉), 호는 병와(甁窩) 또는 순옹(順翁)이며, 1653년(효종 4) 5월 23일 인천 죽수리(竹藪里) 소암촌(疏巖村)[현 인천광역시 남구 주안6동]에서 태어나 1733년(영조 9) 11월 30일 과천(果川) 객사에서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송화현감(松禾縣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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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2년(인조 20)부터 1643년 사이에 장현광 병·배향 문제를 놓고 벌어진 지산(芝山) 문인과 여헌(旅軒) 문인의 논쟁. 임고 서원 병배 논쟁은 영천 임고 서원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병·배향을 둘러싸고 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 문인과 여헌 문인으로 나뉘어 전개한 논쟁으로 여헌학맥의 확산을 기하고 자신들의 학문적 입지를 보다 공고히 하고자 했던 여헌 문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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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에 있는 마을. 영천 임고면 선원마을은 세 개의 작은 마을로 나눌 수 있는데, 가장 북쪽의 큰 마을이 ‘선원리 큰 마을’로 불린다. 선원마을에 들어서면 고색창연한 기와지붕이 즐비하고 솟을대문이 있어 반촌(班村)으로서 손색이 없다. 선원리 큰 마을의 범위는 마을 입구 언덕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30호인 함계정사(涵溪精舍)로부터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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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조선 후기 학자 안응의(安應義)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정자. 안응의의 본관은 순흥, 호는 제오(霽梧)이며, 조선 후기 광해군 때 학자로 동궁의 시강을 지낸 영천 지역의 문인이다. 제오헌은 행정구역으로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오동리 강변마을에 있다. 화남면소재지에서 화북면소재지로 가다보면 고현천에 놓인 오산교를 지나 우측에 보이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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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최여강(崔汝崗)의 본관은 영천. 자는 중휘(仲輝), 호는 사립옹(簑笠翁)이며, 1581년(선조 14)에 태어나 1652년(효종 3) 정월 9일 7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선무랑(宣務郞) 최희여(崔希呂)이며, 증조는 예빈시봉사(禮賓寺奉事) 최덕준(崔德峻), 조부는 참봉(參奉) 최경운(崔慶雲)이다. 부친은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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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정시간(鄭時衎)이 강학을 위해 건립한 정자. 정시간[1635~1690]의 본관은 영일, 자는 열지(悅之), 호는 취성당(醉醒堂)이다. 효성이 지극했고 1669년 성균관 생원(生員)이 되었으나 자양(紫陽)의 구계산(龜溪山)에 은거하며 학문에 전념했다. 술을 좋아해 당호를 취성당이라 했다. 저서로는 『취성당일고(醉醒堂逸稿)』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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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연정리에 있는 정응백과 정응숙의 묘소에 있는 재사(齋舍). 품산재는 조선 인조 때 가선대부 행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한 정응백과 통례원인의를 지낸 정응숙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이다. 품산재는 신녕 초등학교 앞 신화로를 따라 연정리 방향으로 1.2km 정도 이동하여 우측 방향에 있는 농로를 따라 200여m 직진한 후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