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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남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1724
한자 郭南齋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덕암길 196-5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우경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세기 - 곽남재 창건
이전 시기/일시 19세기 말경 - 곽남재를 현 장소에 이건하면서 중건
현 소재지 곽남재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덕암길 196-51[효정리 44]지도보기
성격 재사
양식 팔작 기와집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2칸
지붕 홑처마 팔작지붕
소유자 나주 정씨 신녕파 문중
관리자 정삼봉[010-2640-9786]|정돈호[소곽사]
문화재 지정 번호 비지정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효정2리에 있는 나주 정씨 신녕파 문중 재사(齋舍).

[개설]

곽남재(郭南齋)는 조선 인조 때 학자인 정민도(丁敏道)를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인 정남주가 문중산 아래에 초창을 하고 이후 후손들을 수호하기 위한 재사로 이어져 왔다고 전해진다.

[위치]

곽남재는 영천시 화산면 효정2리 마을 앞 산 아래 있는 곽산저수지 옆에 있다. 효정2리 마을 어귀에서 소곽사 이정표를 따라 1.4㎞ 정도 농로를 따라 가다보면 곽남저수지를 두고 소곽사와 마주하고 있다.

[변천]

곽남재의 연혁을 알 수 있는 자료는 없어 정확한 건립연대를 밝히기가 어렵다. 나주 정씨 신녕파 45대손 정돈호와 정삼봉에 의하면 정민도(丁敏道)의 아들인 정남주가 부친을 위해 재사를 건립한 것으로 전한다.

이후 여러 차례의 중수(重修)를 거치다 퇴락된 것을 흥선 대원군 시절 신녕향교 보수 시 교체된 목부재를 옮겨와 새로 현재의 자리에 지었다고 전한다. 정민도의 묘는 곽남재와 산을 경계로 효정리 본 마을에 있다. 현재 묘제(墓祭)는 묘소에서 이루어지며 곽남재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형태]

곽남재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겹집 형태의 팔작 기와집이다. 건물 주변은 방형의 토석담장을 둘렀는데 서쪽면의 담장 중앙부에 난 출입구[협문터로 추정됨]로 드나들도록 되어 있다. 재사 서편에 ‘一’자형의 맞배집 건물[관리사로 추정됨]이 남아 있는데, 이 두 건물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곽남재의 평면은 좌측 협칸 전·후칸에 온돌방을 두고 우측 협칸에는 전·후칸에 대청, 어칸은 전면칸에 마루칸, 후면칸에 온돌방을 두어 방과 마루가 ‘ㄱ’자와 ‘ㄴ’자가 겹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영천 지역의 일반적인 ’一자‘형 재사의 평면에서 벗어난 정자(亭子) 형태의 평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조는 시멘트 모르타르로 마감한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앉힌 다음 4면에 대부분 원주를 세웠는데 온돌방 배면 기둥 2개는 각주를 세웠다. 추녀 4곳에 모두 활주를 세웠다. 기둥 상부는 장혀 위에 납도리를 돌리고 대들보를 결구한 간략한 민도리 형식이다. 가구는 5량가로 단아한 구성을 하고 있고 지붕은 홑처마에 팔작지붕을 취하고 있다.

[현황]

곽남재의 건물이 노후되고 관리 소홀로 벽체 및 아궁이, 창호 등이 훼손되어 방치되어있다. 기단 외피는 시멘트 모르타르로 마감하여 원형을 알 수가 없으나 자연석 2단 정도의 높이를 하고 있다. 주요 목부재의 상태는 동일하지 않은 시기의 부재가 여럿 사용된 것으로 보아 수리과정에서 교체된 부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루 청판은 비교적 양호하나 대청 일부에 청판이 떨어져 있고 쪽마루에 설치된 장마루는 군데군데 비워져 있다. 벽체는 측면과 배면에서 회벽 마감이 떨어져 있고 일부 벽체는 중깃이 노출되어 있다. 연목(椽木) 사이 앙토바름 또한 처마쪽으로 흙이 탈락되어 산자(橵子) 일부가 노출되어 있다.

처마의 곡은 정연하지 못하고 물결 모양으로 변형되어 처마 대부분이 처져 있다. 지붕에 사용된 기와는 대부분이 노후되고 퇴색되어 있으며 표면 박리된 것이 많다. 현판 및 편액은 도난당해 없으며 대청 문짝도 도난당해서 합판으로 가려져 있다.

[의의와 평가]

곽남재는 재실의 기능을 가진 정자형 건물로 문중의 규합과 강학의 기능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목부재는 중건 당시 구부재를 사용하여 건립된 것으로 연도가 오래되어 보이나 초창과 중건에 대한 명확한 기문과 자료 등이 없어 안타깝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