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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영천문화대전 > 영천향토문화백과 > 삶의 내력(역사) > 근현대 > 근대

  • 근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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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항기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까지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역사. 우리나라에서의 근대(近代)는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이후 대한제국기와 일제 강점기를 거쳐 1945년 8월 15일 광복까지의 기간을 가리킨다. 학자에 따라서는 근대의 시점을 1876년(고종 13) 개항 이후로 보기도 한다. 1. 대한제국기 현재의 영천 지역은 1894년(고종 31) 7월 갑오개혁으로 영천...

  • 신녕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895년부터 1913년까지 경상북도 신녕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1895년(고종 32) 갑오개혁 당시 지방 제도 개정건이 공포되어 새로운 지방 행정 제도가 설치되면서 신녕현이 신녕군이 되었다. 신녕현의 옛 이름인 사정화(史丁火)는 지형이 배[舟]와 같고 한들[현 완전동(莞田洞)]에 3m 높이의 자연석 바위가 우뚝 솟아 있고, 봉화제(烽火堤) 바람이 세차게 불면 갑령제(甲嶺堤)를...

  • 영천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895년부터 1913년까지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영천군(永川郡)은 1895년(고종 32) 갑오개혁 당시 지방 제도 개정건이 공포되어 새로운 지방 행정 제도가 설치되면서 영천군이 되었다. 고려 시대 영주(永州)로 불렸던 영천은 조선 개국 후 1413년(태종 13) 작은 군현은 ‘주’라는 명칭을 금지하고 대신 ‘천’과 ‘산’을 사용하도록 명하자 천을 선택해 영천(永...

  • 독립운동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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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5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의 침략과 강점에 대항하여 영천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민족 해방 운동. 영천 지역의 독립 운동은 1895년(고종 32) 을미의병(乙未義兵)에서 1945년 해방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는데, 1895년 을미의병과 1906년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의병 투쟁, 1919년 3·1 독립운동, 1920년대 대중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 1930년대 해외 독...

  • 영천 소년 운동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전개된 소년 운동. 일제 강점기 때의 소년 운동은 1920년을 전후로 전개되었으며,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몰아내고 조국 광복을 목적으로 한 실력 양성 운동이다. 1919년 조직된 안변소년회와 왜관소년회는 동화나 학습을 목적으로 한 최초의 소년 운동 단체였으며, 1920년 조직된 진주소년회는 20세 이하의 학생들이 조선 독립을 목적으로 만세 운동을...

  • 영천 청년 운동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청년들의 사회운동. 1919년 3·1 독립운동 이후 대중의 힘을 효과적으로 결집하고 항일 역량을 지속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조직제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으며, 이에 따라 전국 각처에서 청년회가 조직되어 계몽적인 성격의 실력 양성 운동 및 문화 운동이 전개되었다. 영천 지역에서는 3·1 독립운동 이후 영천청년회(永川靑年會)·영천엡웟청년회(永川...

  • 비밀결사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25년경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조재만(曺在萬)이 항일독립운동을 위해 대구에서 조직한 비밀결사.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삼창리 출신의 조재만은 1922년 설립된 영천 백학학원(白鶴學院)에서 이원록(李源祿)을 만나 민족의식에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 이원록은 1921년 영천군 화북면 오동리의 대지주 안용락(安庸洛)의 딸 안일양(安一陽)과 결혼하면서 백학학원에 다녔으며, 조재만은 19...

  • 3·1 운동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19년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시위운동. 3·1 운동은 국내외의 정세에서 발생 배경을 찾을 수 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성공 등으로 한반도를 비롯한 피압박 약소 민족의 해방을 고무시켰다. 뿐만 아니라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종결 이후 미국 윌슨(Wilson) 대통령의 민족 자결주의는 피억압 민족의 독립에 대한 열망...

  • 형평 운동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조직된 조선형평사의 영천형평분사에서 전개한 백정의 신분 해방 운동. 형평 운동은 일제 강점기인 1923년 4월 경상남도 진주에서 조직된 조선형평사가 전개한 백정의 신분 해방 운동이다. 형평사 혹은 조선형평사는 1923년 5월부터 지·분사를 설립하기 시작하여 1923년 12월까지 전국적으로 80여 지·분사가 설립되었고, 1926년 126개, 193...

  • 근우회 영천지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조직된 근우회 지회. 1926년 이래 국내·외에서 추진된 민족유일당운동(民族唯一黨運動)의 결과, 1927년 2월 민족협동단체인 신간회(新幹會)가 결성되었다. 여성운동계에서도 1926년 말부터 여성유일당 운동을 전개하여 여성운동계의 통합 단일화를 위해 1927년 5월 27일 근우회가 창립되었다. 근우회의 창립 이념과 활동의 기본 방향은 강령에 제시...

  • 백학 학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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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영천에 1921년 1월 사립으로 설립된 신교육 기관. 백학 학원은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안천리에 있는 백학서당[옛 백학서원의 후신]에서 1921년 1월 설립된 신학문 교육 기관으로 민족 교육을 통해 이육사(李陸史)[이원록(李源祿)]·조재만(曺再萬)[조용찬]·안병철(安柄喆)·이진영(李進榮) 등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민족 교육 기관이다. 백학 학원은 1921년 1월 신...

  • 산남의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06년 3월 경상북도 영천에서 조직된 항일 의병 부대. 산남의진(山南義陣)은 중추원 의관 정환직(鄭煥直)이 광무황제로부터 의병 봉기의 밀지를 받고 아들 정용기(鄭鏞基)와 함께 영천을 중심으로 거병한 의병 부대이다. 초기에 정용기가 관군에게 체포되기도 하였으나 1906년 9월 그의 석방을 계기로 의병진을 재편하여 영천·경주·청하·청송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산남의진은 신돌석(申乭石...

  • 신간회 영천지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조직된 신간회 지회. 민족주의 좌파와 사회주의자들의 민족협동전선으로 1927년 2월 15일 창립된 신간회는 1931년까지 존속하였다. 신간회는 서울에 본부를 두고 전국적으로 120~150여 개의 지회와 2~4만의 회원을 두고 있었다. 경상북도의 경우 1927년 6월부터 1929년 7월까지 신간회 김천지회를 시작으로 모두 21개의 지회가 결성되었으...

  • 영천 청년 동맹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결성된 청년운동 단체.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는 3·1 독립 운동 이후 영천 청년회(永川靑年會)·영천 기독 청년회(永川基督靑年會)·영천 기독 여자 청년회·영양 청년회(永陽靑年會)·영천 구락부(永川俱樂部)·금호 청년회(琴湖靑年會)·신녕 청년회(新寧靑年會) 등이 조직되었다. 1920년대 사회주의 사상이 수용되면서 사상계는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

  • 오산 불교 학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 강점기인 1940년 경상북도 영천군 은해사에 설립된 불교학교. 오산 불교 학교(五山佛敎學校)는 1939년 10월 대한불교 조계종 경상북도 5본산이 영천 은해사 경내에 설립한 중등 정도의 불교학교이다. 1940년 4월 8일 개교 이래 근대 교육에 입각한 민족 계몽 운동을 실시하였다. 중일 전쟁 발발 이후 일제의 식민지 조선에 대한 문화 말살 정책이 극에 달하여 젊은 청년들이 진...

  • 항일운동

  • 신녕공립보통학교 만세 운동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19년 3월 6일부터 4월 8일까지 경상북도 영천군 신녕면 신녕공립보통학교의 교사 및 학생들이 전개한 만세 시위 운동. 신녕공립보통학교 만세 운동은 교사와 학생들이 야간에 전개한 만세 시위 운동이다. 3·1 운동은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되어 5월 중순까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만주·하와이 등 국외에서도 계속되었다. 비폭력·일원화·대중화 등을 원칙으로 한 3·1 운...

  • 신사 방화 미수 사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43년 5월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박만선(朴晩善)이 영천의 신사(神社)에 방화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 서울중동중학교 재학 중이던 박만선은 1942년 3월 일제가 시행한 강제 징병에 반대하는 지하선전 활동을 하다가 중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장춘 주재원(長春駐在員)인 박동만(朴東萬)을 만나 밀명을 받고 입국했다. 1943년 5월 박만선은 명령 받은 대로 경상북도...

  • 영천경찰서 폭탄 투척 미수 사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27년 10월 18일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사건 후 장진홍(張鎭弘)이 제2차 계획으로 추진한 영천경찰서 폭탄 거사. 1927년 10월 18일 정오 경상북도 칠곡 출신의 장진홍이 대구의 일제기관 4개소를 폭파할 목적으로 배달시킨 점화식 폭탄 4개 중 3개가 폭발하여 경관 4명이 중경상을 입고 은행 창문 70여 개가 파손되었다. 그 후 장진홍은 안동과 영천에서도 폭탄 거사를 추진...

  • 영천장날 만세 운동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19년 4월 12일 영천읍 장날에 전개된 만세 시위 운동. 영천장날 만세 운동은 1919년 4월 12일 영천읍 시장에서 농부 홍종현(洪鍾顯)이 만세 시위운동을 계획하여 군중을 선동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1919년 3월 1일 일어난 3·1 운동은 서울에서 시작되어 5월 중순까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만주·하와이 등 국외에서도 계속되었다. 비폭력·일원화·대중화 등을 원칙으로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