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 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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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거세(朴赫居世)의 44세손 구산군(龜山君) 박석보(朴碩輔)를 시조로 하고, 박후(朴 土+厚)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세거 성씨. 구산 박씨(龜山朴氏)는 박혁거세의 44세손 구산군 박석보를 시조로 하는 후예로 영천 입향조는 박후이다. 봉어직장(奉御直長)을 지낸 박후가 현 경상북도 군위군 의흥현에서 비옥한 평야 지역인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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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 문인. 권응규(權應奎)의 본관은 안동. 자는 백종(伯宗)이다. 신라 말 권행(權幸)을 시조로 하는 안동 권씨 후손이다. 1651년(효종 2) 문과에 급제하여 춘추관(春秋館)의 편수관(編修官)을 지낸 권론(權碖)이 고조이고, 증조는 통덕랑(通德郞) 권성(權偗)이며, 조부는 통덕랑 권석(權䄷)이다. 수직(守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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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 속하는 법정리. 금대리(金大里)는 본터가 가장 일찍 생긴 마을로 현재 20여 가구의 의성 김씨(金氏)들이 살고 있다. 찜대[蒸大]는 뒷산에 은(銀)을 제련하는 은점이 있었다고 전하며, 삼[大麻]을 찐 곳이라 하여 찜대리라 했다 한다. 금대리의 명칭은 김씨(金氏)와 찜대[蒸大]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금대리는 금대(金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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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염(許琰)을 시조로 하고 허국양(許國讓)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세거 성씨. 김해 허씨(金海許氏)는 고려 때 삼중대광(三重大匡)을 지내고 가락군(駕洛君)에 봉해진 허염을 시조로 한 성씨로 가락국의 김수로왕(金首露王)의 35세손이다. 허씨(許氏)의 연원은 멀리 가락국 출신으로 김수로왕의 비(妃)인 허황옥(許黃玉)에 두고 있는데, 10명의 아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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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성(丁德盛)을 시조로 하고, 정천학(丁千鶴)을 중조(中祖)로 하며, 정몽길(丁夢吉)과 정몽상(丁夢祥)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세거 성씨. 나주 정씨(羅州丁氏)의 시조는 정덕성(丁德盛)으로 당나라에서 신라의 압해(押海)로 유배를 당하여 정착하게 되었다. 압해가 나주에 소속되면서 후손들이 나주를 관향으로 하게 되었다. 후손들은 압해 정씨(押海丁氏)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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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노성기(盧成基)의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성오(聖五), 호는 침계당(沈溪堂)이며, 1845년(헌종 11) 현재의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직천리에서 태어났다. 증조는 부호군(副護軍) 노사속(盧思涑)이며, 아버지는 노정갑(盧鼎甲), 어머니는 평산 신씨(平山申氏)로 신상훈(申相勳)의 딸이다. 부인은 오천 정씨(烏川鄭氏)로 정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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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당지리(唐池里)는 부주골[浮舟谷] 또는 당지동이라고도 하며, 옛날에 닥나무가 많았고 당지 저수지[신화 저수지]의 안쪽 골에 있는 마을로, 땅골 또는 당리(唐里)라 불렀다. 당지리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약 500여 년 전부터라고 전한다. 땅골 또는 당리에는 500여 년 전 경주 이씨가 정착하였으며, 부주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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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천 지역의 무신. 본관은 구산(龜山), 자는 치서(致瑞), 호는 괴암(槐庵). 고조할아버지는 박이종(朴以宗), 증조할아버지는 박수창(朴壽昌), 할아버지는 박자형(朴自亨)이다. 아버지는 박세방(朴世芳)이며, 어머니는 오천 정씨(烏川鄭氏)이다. 부인은 숙부인(淑夫人) 영천 이씨(永川李氏)이며, 아들은 박몽렴(朴夢濂)와 박몽설(朴夢卨)이며, 사위는 주덕창(周德昌)과 정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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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효자. 박수항(朴守恒)의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이경(彛卿), 호는 백원재(百源齋)이다. 고조는 생원(生員) 박순효(朴舜孝)이며, 증조는 생원(生員) 박전(朴 專아래 心), 조부는 학정(學正) 박성세(朴聖世)이다. 아버지는 박평(朴枰)이며, 어머니는 오천 정씨(烏川鄭氏)로 지평(持平) 정만양(鄭萬陽)의 딸이다. 부인은 월성 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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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사천리에 있는 경주 김씨·구산 박씨·순흥 안씨·오천 정씨 등 네 문중의 친화를 도모하기 위해 세운 재사(齋舍). 방화재(芳華齋)는 영천시 화남면 사천리 영천 중앙 초등학교 화남 분교장 뒤편에 있다. 방화재는 대청 종도리 장혀 하부에 상량 묵서가 기록되어 있으나 희미하여 판독이 어렵고 상량기문, 편액 등도 없어 건립연대를 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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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 속하는 법정리. 삼매리(三梅里) 마을의 풍수를 보면, 마을 뒷산은 매화 가지가 뻗어 있는 형상이고, 앞산은 매화꽃을 향하여 날아드는 형상이라 매곡(梅谷)이라 칭하다가, 3개 이(里)가 합쳐서 삼매(三梅)라는 지명이 생겼다. 삼매리의 매곡마을은 조선 영조 때 형조 참의를 지낸 정중기(鄭重器)가 개척한 마을로, 270여 년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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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서옥(徐沃)은 본관은 이천. 자는 관부(灌夫), 호는 추암(秋庵)이다. 고조는 참군(參軍) 서건손(徐建孫)이며, 증조는 부사맹(副司猛) 서승(徐繩), 조부는 조산대부(朝散大夫) 영천교수(永川敎授) 서백령(徐百齡)이니 영천 입향조이다. 서옥의 아버지는 내자시직장(內資寺直長) 서자이(徐自邇)이며, 어머니는 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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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서유대(徐惟岱)의 본관은 달성. 자는 맹담(孟澹), 호는 학와(壑窩)이며, 1761년(영조 37)에 태어나 1822년(순조 22) 12월 17일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서진후(徐振後)이며, 증조는 서원징(徐元徵), 조부는 서시대(徐始大)이다. 부친은 서루(徐婁)이며, 모친은 팔거 도씨(八莒都氏)로 도세범(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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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이천 서씨(利川 徐氏)는 신라의 국운이 기울자 아우 서신통(徐神通)과 더불어 이천의 효양산에 들어가 스스로 처사라 하고 희성당(希聖堂)을 짓고 후진교육에 여생을 보낸 아간(阿干) 서신일(徐神逸)을 시조로 하고 있다. 서자이(徐自爾)의 자는 원지(遠之), 호는 심계(心溪)이다. 고조는 부사(府使) 서극인(徐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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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서필규(徐必規)의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내원(乃圓)이다. 고조는 서건(徐鍵)이며, 증조는 서중후(徐重後), 조부는 서원득(徐元得)이다. 부친은 서익대(徐益大)이며, 모친은 밀양 박씨(密陽 朴氏)로 박태제(朴泰濟)의 딸이다. 부인은 오천 정씨(烏川鄭氏)로 정중운(鄭重運)의 딸이며, 슬하에 3남 3녀를 두었다. 아들은 서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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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서희록(徐希祿)은 고려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내고 달성군(達城君)에 봉군된 서진(徐晋)을 시조로 하는 달성 서씨(達城 徐氏)의 후손이다. 고조는 승사랑(丞仕郞) 광흥창(廣興倉) 부승(副丞) 서문한(徐文翰), 증조는 영천 입향조인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 서도(徐渡)이다. 조부는 창녕훈도(昌寧訓導) 서숙원(徐叔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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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성곡리(聖谷里)는 마을 뒤 기룡산 중턱에 성현암(聖賢岩)이란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의 이름에서 성(聖)자를 따고, 골짜기를 뜻하는 한자 곡(谷)을 합해 성곡리가 되었다 한다. 성곡리는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회룡동·관봉동·토동을 병합하여 영천군 자양면 성곡동이 되었고, 1995년 1월 1일 영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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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성이직(成以直)의 본관은 창녕. 자는 여방(汝方), 호는 경재(敬齋)이다. 고조는 창녕 성씨(昌寧 成氏)의 영천 입향조(入鄕祖)인 성영준(成永俊)이며, 증조는 장사랑(將仕郞) 성열(成烈), 조부는 선무랑(宣務郞) 성익수(成益壽)이다. 임진왜란 때 곽망우당(郭忘憂堂)의 의진에 참전하였던 아버지 성립(成立)과 참봉 신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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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학자. 손우남(孫宇男)의 본관은 일직(一直). 초명(初名)은 경남(慶男)이며, 자(字)는 덕보(德甫), 호는 윤암(綸庵)이다. 1564년(명종 19) 12월 9일 영천 임고 매호리 동산마을에서 태어나 1623년(인조 원년) 9월 25일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무공랑(務功郞) 예문관(藝文館) 봉교(奉敎)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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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에 있는 송고헌(松皐軒) 정치술(鄭致述)의 주택. 송고헌고택은 정치술(鄭致述)이 1863년에 건립한 살림집으로 안채·사랑채·아래채·고 방채가 튼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고, 사랑채 전방으로 솟을대문, 기타 부속건물 등이 있어 상류주택의 면모를 갖고 있다. 송고헌고택은 영천 지역의 대표 씨족인 오천 정씨(烏川 鄭氏)의 동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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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자미(安子美)를 시조로 하고 안종신(安從信)을 파조로 하며 안우곤(安遇坤)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세거성씨. 순흥 안씨(順興 安氏)는 고려 신종(神宗) 때 흥위위보승별장(興威衛保勝別將)을 지내고 손자 판도판서(版圖判書) 안부(安孚)와 증손 안향(安珦)의 귀함(貴函)[상대를 높여 그의 편지를 이르는 말]으로 신호위상호군(神虎衛上護軍)에 추봉된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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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신억(辛檍)의 본관은 영산. 자는 자미(子美), 호는 영좌(潁左), 초명(初名)은 장식(章植)이며, 1902년 9월 1일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가수리에서 태어났다. 증조는 신재성(辛載誠)이며, 조부는 신석화(辛錫和), 아버지는 신해진(辛海鎭), 어머니는 이천 서씨(利川徐氏)로 서태수(徐泰洙)의 딸이다. 부인은 오천 정씨(烏川鄭氏)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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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호리는 기룡산(騎龍山) 기슭에서 발한 시냇물이 마을 앞을 흐르면서 큰 못을 막아, 마치 못 안에 뜬 마을처럼 새로운 호수가 형성되어 매우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뜻에서 이름 지은 것으로 보인다. 신호리(新湖里)는 사라들[沙羅谷]·야수골[也水谷]·신흥(新興)·대내실[다내곡(多內谷)] 등의 마을이 있다. 그 중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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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안천리(安川里)는 신녕 땅 ‘안천’라는 뜻에서 이름 붙인 신안천(新安川)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안천리에 있는 자연 마을 중 신안은 신라 경명왕의 여덟째 아들인 월성 대군(月城大君)의 후손이 약 420년 전 능계에 거주하였는데, 박시량(朴時亮)이 이곳에 새로 마을의 터를 잡아 정착하였다고 하여 신안이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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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윤천각(尹天覺)의 본관은 영천. 자는 여선(汝先), 호는 영빈(穎濱)이며, 1710년(숙종 36) 9월 10일에 태어났다. 고조는 윤석린(尹石麟)이며, 증조는 윤응삼(尹應三), 조부는 윤상뢰(尹商賚)이다.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윤함(尹諴)이며, 어머니는 밀양 박씨(密陽朴氏)로 박계세(朴繼世)의 딸이다. 첫째부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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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이근기(李謹基)의 본관은 성산. 자는 경춘(景春), 호는 돈산(遯山)으로 1887년(고종 24) 경상북도 영천시 완산동에서 태어나 1947년 6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이우인(李友仁)이며, 증조는 이호성(李浩成), 조부는 이광표(李光杓)이다. 아버지는 이희구(李熙球)이며, 어머니는 용궁 전씨(龍宮全氏)로 전병두(全秉斗)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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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이세익(李世益)의 본관은 성산, 자는 중겸(仲謙)이다. 고조는 이억령(李億齡)이며, 증조는 장사랑 정읍훈도(將仕郞井邑訓導) 이용빈(李用賓), 조부는 이희영(李喜榮)이다. 아버지는 병자호란 때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호가(扈駕)한 공훈으로 호군(護軍)에 봉했으나 부임하지 않은 이즐(李瀄)이며, 어머니는 오천 정씨 총관(摠管)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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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영일 정씨(迎日鄭氏)[오천 정씨]는 고려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고 있다. 영천 전촌(錢村)에 옮겨 살게 된 것은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인 정인언(鄭仁彦)과 그의 아들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판서(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 때부터이다.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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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삼매리 매곡마을에 있는 주택. 정수용 가옥은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고 조선 시대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은 6칸 一자형 큰 채와 블록조의 아래채 1동이 튼 ㄱ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건물 주위로는 토석 담장을 쌓아 막고 전면에 철 대문을 두어 출입한다. 정수용 가옥은 임고면 내에서 영천댐 쪽으로 난 69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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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삼매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주택. 정옥창 가옥은 조선 시대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6칸 一자형 큰 채이다. 큰 채 앞에는 2칸 규모의 초가 아래채[방앗간+마구]가 있었으나 2001년경에 붕괴되어 철거되었다. 배치는 큰 채와 아래채가 튼 ㄱ자형으로 배치되었다. 정옥창 가옥은 임고면 내에서 영천댐 쪽으로 난 69번 지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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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효정리에 있는 정응기 처 오천 정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열각. 정응기(丁應璣)의 처 오천 정씨(烏川鄭氏)[영일 정씨(迎日鄭氏)]는 정유재란 때 왜군의 침입을 피해 신산[노고산]으로 시부모와 함께 피신했다. 하지만 왜군에게 붙잡혀 시아버지는 왜군에게 죽고 시어머니도 죽이려 하면서 자신을 핍박하자 기지를 발휘해 시어머니를 보내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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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충신. 고려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는 영일 정씨(迎日鄭氏)[오천 정씨]는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를 지낸 정인언(鄭仁彦)과 그의 아들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판서(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부터 영천 전촌(錢村)에 옮겨 살았다. 정의번(鄭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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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창녕 조씨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하고,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여 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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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최석기(崔碩基)의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응도(應度), 호는 동주(東洲)이며, 1904년(고종 41) 9월 25일 현재의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노항리에서 3형제 중 2남으로 태어났고, 1987년 윤 6월 21일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최달효(崔達孝)이며, 증조는 최학조(崔學祚), 조부는 최계규(崔啓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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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에 있는 오천 정씨 집안의 묘와 정세아의 묘비를 보호하기 위하여 지은 재실과 비각. 강의공(剛義公) 정세아(鄭世雅)는 임진왜란 때 의병 대장에 추천되어 영천성 복성 전투, 경주성 전투 등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 정세아는 임진왜란이 끝난 후 논공행상(論功行賞)에 참여하지 않고 강호정사(江湖精舍)에서 제자를 기르며 학문을 닦아 덕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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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화남면(華南面)은 1986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설된 면으로서, 화북면(華北面)의 남쪽이라는 의미에서 화남면으로 명명되었다. 옛날에는 화주현(華州縣)에 속했으며, 현 소재지가 신녕으로 이전됨에 따라 이곳을 ‘옛 현’ 즉 ‘고현(古縣)’이라 했다. 화북면은 조선 시대 때 영천군의 북부에 있었던 명산면(鳴山面)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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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횡계리(橫溪里)는 마을 한가운데를 동서로 내[川]가 가로질러 흐른다 하여 ‘빗거랑’이라 하였으며, 한자화하면서 횡계리(橫溪里)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횡계리에는 1664년(현종 5)경 김해 허씨(金海許氏)가 처음 정착하였고, 1700년(숙종 20)경 오천 정씨(烏川鄭氏)인 정만양(鄭萬陽)·정규양(鄭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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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 속하는 법정리. 효리(曉里)는 조선 숙종이 민정 시찰을 하기 위해 이곳까지 오니 날이 새었다고 하여 ‘새벽골’이라 불리어진다. 또 마을이 동향으로 앉아 일광을 잘 받으므로 ‘효곡(曉谷)’이란 이름이 생겼다고 하는 설도 있는데, 지금은 ‘효리’로 바뀌었다. 임고면 삼매리에서 분리된 대곡(大谷)은 한때 60가구의 큰 마을이었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