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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667
한자 夏泉齋-附碑閣-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포은로 1611-15[성곡리 산78]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정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637년연표보기 - 하천재[부비각] 건립
문물 지정 일시 1975년 8월 18일 - 하천재[부비각]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73호로 지정
이전 시기/일시 1976년 7월 - 하천재[부비각] 이전
현 소재지 하천재[비각]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포은로 1611-15[성곡리 산78]지도보기
성격 비 및 비각
양식 하천재: 홑처마 맞배지붕|추원당: 맞배지붕|비각: 겹처마 팔작지붕
정면 칸수 하천재 : 3칸|추원당 : 4칸|비각 : 1칸
측면 칸수 하천재 : 1칸|추원당 : 1칸|비각 : 1칸
소유자 정재종
관리자 정재종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73호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에 있는 오천 정씨 집안의 묘와 정세아의 묘비를 보호하기 위하여 지은 재실과 비각.

[개설]

강의공(剛義公) 정세아(鄭世雅)는 임진왜란 때 의병 대장에 추천되어 영천성 복성 전투, 경주성 전투 등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 정세아는 임진왜란이 끝난 후 논공행상(論功行賞)에 참여하지 않고 강호정사(江湖精舍)에서 제자를 기르며 학문을 닦아 덕망이 높았던 선비였다.

[위치]

하천재[부비각]는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 산78번지영천댐을 내려다보고 있다. 영천 시내에서 임고면을 통과해 영천댐으로 올라가면 자양면 소재지가 나온다. 면소재지 직전 100m에 좌측으로 난 산길을 올라가면 문화재 이전 단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첫 번째 건물이 하천재이고 재실에서 서남쪽 20m 지점의 능선에 비각이 있다.

[변천]

하천재[부비각]는 오천 정씨(烏川鄭氏) 문중의 묘소와 정세아의 신도비(神道碑)를 수호하기 위해 진주 목사(晋州牧使) 정호인(鄭好仁)이 1637년 건립하였다. 후에 중수 또는 중건 된 것을 1976년 7월 영천댐 공사로 수몰됨에 따라 이곳으로 옮겨졌다.

[형태]

하천재[부비각]는 경사진 지형을 이용해 돌담으로 경계를 짓고 추원당(追遠堂)·하천재(夏泉齋)·부속 건물이 튼口자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하천재 일곽 상부로는 계단을 통해 정세아 신도비각(神道碑閣)으로 오른다.

하천재를 비롯한 건물은 모두 단순하고 소박하게 지은 건물이다. 입구에서 보면 맨 먼저 하천재에 이른다. 하천재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정면 어칸 상부에는 ‘하천재(夏泉齋)’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자연석 바른층 쌓기로 한 기단은 정면이 여섯 벌대로 배면의 외벌대보다 상당히 높게 처리했는데 이는 경사진 대지로 인한 것이다. 건물은 단출하고 장식이 없다. 주 상부는 도리와 장여로만 처리했는데 좌우 협칸 우주[모서리 기둥] 위에는 단여[짧은 장여]를 덧 수장했다. 심벽으로 처리한 벽체에는 보강용 벽선이 많이 있다.

창호는 정면 쪽은 각 칸 중앙에 외여닫이 세살문을 달고 배면 쪽은 쌍여닫이 세살문을 달았으며, 우측면에는 외여닫이 세살창이 있다. 배면의 전체에 쪽마루를 달아 출입의 편의를 도모했다.

마당을 중심으로 하천재 위에 있는 추원당은 정면 4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전체적으로 하천재 건물과 양식이 동일하다. 정면 중앙의 두 칸을 대청으로 두고 양 쪽으로 온돌방을 드린 중당협실형의 추원당은 대청 전면에 쌍여닫이 굽널 세살문으로 출입한다.

양 온돌방 전면으로는 통머름 위에 쌍여닫이 세살창을 두었고 배면에는 대청 칸에만 판벽에 당판창을 달았다. 추원당과 하천재 양 측면의 부속 건물은 각각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정세아 신도비각은 일직선상의 높은 계단 끝에 일각문을 통해 드나든다. 별도의 영역으로 외곽을 토석 담으로 두르고 겹처마 팔작지붕의 비각을 세웠다. 비각 역시 경사진 부지를 이용해 앞쪽에 축대와 높은 기단을 쌓고 단칸 규모의 비각을 세웠다. 원형으로 가공한 초석 위에 원형기둥을 세우고 추녀 아래 각 모서리에는 팔각형의 활주를 세웠다.

특이하게 주 상부는 일출목의 주심포 양식으로 처리했는데 주간에도 공포를 두어 전체적으로 다포양식을 취하고 있다. 비각의 벽체는 모두 홍살벽으로 처리해 내부의 비가 잘 보이도록 했다. 비는 귀부·비신·이수로 구성한 제대로 갖춘 형식이다. 귀부는 화강석으로 육각형의 귀갑문을 선명하게 조각하고 꼬리를 틀어 올렸으며, 머리는 고개를 바짝 들고 있는 용의 머리와 유사하게 조각했다. 이수는 쌍용이 여의주를 서로 마주보고 물고 있는 모습으로 조각했다.

비신의 정면·배면·우측면에 각각 비문을 새겼다. 정면에는 상부에 가로로 ‘증병조판서(贈兵曹判書)’라는 비명을 새기고 그 아래에 세로 13열로 비문을 새겼다. 배면에는 ‘정공신도비(鄭公神道碑)’라고 가로로 전서체로 비명을 새기고 그 아래 세로 13열의 비문을 새겼다.

[현황]

하천재[부비각]는 영천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문화재 이주 단지를 조성한 곳에 있다. 하천재와 접한 북쪽에는 오회공 종택이 있다. 1776년 영천댐 건설로 이곳으로 이건하면서 건물의 부재가 많이 교체되었고 지형도 원래 보다 가파른 지형에 하천재·추원당·비각 등이 배치되어 있다. 하천재[부비각]는 1975년 8월 18일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73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