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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180
한자 華西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장수로[화서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현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3월 1일연표보기 - 영천군 신녕면 화서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 3일 - 영천군 신녕면 화서동에서 영천군 신녕면 화서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5년 1월 1일 - 영천군 신녕면 화서리에서 영천시 신녕면 화서리로 개편
행정구역 화서리 -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서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5.78㎢
가구수 60호
인구[남, 여] 106명[남자 50명, 여자 56명]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화서리(華西里)화산(華山)의 서쪽이 된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형성 및 변천]

화서리는 본래 신녕군 치산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화정리(華亭里)와 도근리(道近里), 군위군 산성면의 범박리 일부와 반내리 일부가 병합되어 화서동이라 하여 영천군 신녕면에 편입되었다.

1988년 5월 3일에는 동(洞)을 이(里)로 바꾸게 되어 화서리가 되었고, 1995년 1월 1일 영천시·영천군 통합으로 새로운 영천시 신녕면 화서리로 개칭되었다.

화서리는 6·25 전쟁 당시 국군 제1군단장 유재흥(劉載興) 준장이 이끄는 군대와 인민군 제2군단장 김무정(金武亭) 준장이 이끄는 부대가 1950년 8월 30일부터 9월 15일까지 17일간 치열하게 싸운 격전지이다. 이 싸움에서 인민군은 전멸하다시피하고 북쪽으로 퇴각했다.

[자연 환경]

화서리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촌 마을로, 군위군 고로면과 접하고 있으며, 팔공산(八公山)에서 동북으로 뻗은 하나의 지맥이 낮아졌다가 다시 높아져서 구릉 야산을 이루고 있다.

화서리의 동쪽은 화산(華山)의 준령들이 연이어 있고, 갑령(甲嶺)의 서편에서 발한 개천이 마을 중앙을 흐르고 있다. 화서리 남쪽은 팔공의 영산, 동쪽은 화산의 높은 봉들이 굽어보고 있는 마을이며, 저수지로는 둔지가 있다.

[현황]

화서리신녕면의 북서부에 위치하며, 자연 마을로는 화정·도근이 마을이 있다. 화서리치산리·부산리·화남리, 군위군 산성면과 고로면에 접하고 있으며, 국도 28호선지방도 908호선이 지나고, 중앙선 철도가 화서리를 가로질러 놓여 있다. 화서리에는 기차역이 없으나, 화서리와 맞닿아 있는 군위군 산성면에 봉림역이 있다. 화서리의 면적은 5.78㎢이며, 인구는 2012년 3월 기준 60가구, 106명으로, 남자가 50명, 여자가 56명이다.

주민 편익 시설로는 화서리 경로당, 화서리 마을 회관이 있다. 화서리의 문화재로는 남강 정사가 있는데, 남강 정사경주 김씨 지사공(知事公) 종택 인근의 연못가에 위치한 종택 소유의 정사로서, 임진왜란 의병이었던 노항(魯巷) 김연(金演)[1552-1592]의 아들인 남강공(南岡公) 김취려(金就礪)가 세워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었는데, 원래 임고면 양평리에 있었던 것을 후대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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