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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620
한자 永川公德洞三層石塔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탑과 부도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공덕리 173-1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박홍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고려 시대 - 영천 공덕동 삼층 석탑 건립
복원 시기/일시 1974년연표보기 - 영천 공덕동 삼층 석탑 재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85년 8월 5일연표보기 - 영천 공덕동 삼층 석탑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03호로 지정
훼손 시기/일시 1999년 8월 6일~9일 사이 - 영천 공덕동 삼층 석탑 삼층 옥신석 및 옥개석 도난
현 소재지 영천 공덕동 삼층 석탑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공덕리 173-1 지도보기
성격 석탑
재질 화강암
크기(높이) 150㎝[도난 전 240㎝]
소유자 국유
관리자 영천시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03호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공덕리의 옛 절터에 있는 고려 시대의 삼층 석탑.

[개설]

영천 공덕동 삼층 석탑은 고려 시대의 석탑으로 단층기단 위에 삼층의 탑신을 올린 소탑(小塔)이다. 이 절터가 있는 마을 이름이 공덕리라는 점을 볼 때 공덕리 마을에 공덕사(公德寺)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위치]

영천에서 보현산 천문대로 가는 도중 오산교를 건너자마자 공덕리 방향으로 4.9㎞ 진행하면 2차선 도로가 끝나고 좁은 길이 시작되는데, 이 길을 1.6㎞ 직진하면 탑골지의 담수구역이 끝나는 곳에 남서향 구릉 말단부가 보인다. 이곳 절터에 영천 공덕동 삼층 석탑이 있다.

[건립 경위]

영천 공덕동 삼층 석탑은 고려 시대 법명(法名) 미상의 승려가 지은 공덕사(公德寺)란 절에 있었다고 한다. 공덕리 삼층 석탑은 절이 없어진 뒤 서씨 문중의 송계정사로 옮겨졌다가 1974년에 다시 현재의 위치에 세워졌다고 한다.

이 탑을 송계정사로 옮긴 뒤에 흉사(凶事)가 자주 생겨 동리 입구로 옮겼으나, 이번에는 동민들이 반대하여 불과 1년 뒤에 현재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삼층 석탑 건립 당시의 자세한 경위는 자료를 찾을 수 없어 알 수 없지만 이 시기 공덕사 건립과 함께 석탑도 함께 건립되었으리라 판단된다

[형태]

영천 공덕동 삼층 석탑은 전체적으로 단층의 기단부, 3층의 탑신부 그리고 상륜부로 이루어졌으나 현재 3층 탑신 이상은 사라지고 2층 옥개석까지만 남아있다. 도난 전 전체 높이는 240㎝였으나 현재의 높이는 150㎝이다.

기단부의 지대석은 크기가 다른 2매의 석재로 결구하였으며, 상면에 1단의 기단 면석(基壇 面石) 받침[괴임]이 있다. 기단의 면석[중석]은 없어져 그 형태를 알 수 없다.

갑석은 1매의 석재로 만들었는데 하면에는 기단면석과 만나는 자리에 1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상면에는 1단의 옥신받침을 두었다. 기단 갑석 위에는 1·2층의 탑신부[옥신석과 옥개석]가 올려져 있다. 1·2층 옥신석은 모서리에 우주[모서리 기둥]가 새겨져 있다. 1·2층 옥개석은 하부에 4단의 층급 받침을 두었고, 상부에 1단의 받침을 두었다.

옥개석 각 모서리[추녀부]에 풍령공[풍탁공, 풍탁홈]은 보이지 않는다. 상륜부는 없어져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노반 위에 보주를 얹은 간략한 형태로 추정된다.

[현황]

영천 공덕동 삼층 석탑은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03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기단 면석이 없고 탑신부도 2층까지만 남아 있다. 1999년 8월 6일에서 9일 사이에 삼층 옥신과 옥개석이 도난당했다. 탑은 일변 4.3m의 철책으로 보호되고 있으며, 설명 판이 세워져 있다.

[의의와 평가]

영천 공덕동 삼층 석탑은 현재 기단 면석과 3층 옥신 이상이 모두 없어진 상태로 온전한 모습을 찾기 어렵다. 완전하더라도 소탑에 속하며, 석탑 각부의 치석 솜씨도 떨어져 보인다. 하지만 공덕리 인근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화강암 석재로 건립하였다는 점이 특기할만 하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