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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669
한자 永川銀海寺百興庵極樂殿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청통로 951-792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찬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546년연표보기 - 영천 은해사 백흥암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685년 - 영천 은해사 백흥암 극락전 중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730년 - 영천 은해사 백흥암 보화루 중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858년 - 영천 은해사 백흥암 영산전 중수
문화재 지정 일시 1984년 7월 5일연표보기 - 영천 은해사 백흥암 극락전 보물 제790호로 지정
현 소재지 은해사 백흥암 극락전 -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청통로 951-792[치일리 549]지도보기
성격 불전
양식 다포계 팔작집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3칸
소유자 은해사
관리자 은해사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제790호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백흥암에 있는 조선 시대 불전.

[개설]

은해사 백흥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영천 은해사 백흥암 극락전백흥암의 주 불전으로 1546년(명종 1)에 건립되고 1685년(숙종 1)에 중건한 조선 전·후기 다포계의 대표적인 건축 수법을 잘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다.

[위치]

백흥암은해사 서편에 위치한다. 은해사 뒷길로 900m 가량 올라가면 신일지가 나오고 여기에 세 갈래 길이 있다. 산길로 가면 태실봉·인종대왕태실, 신일지를 끼고 우측[서북쪽] 택골로 가면 운부암, 좌측[서쪽] 절골로는 백흥암·기기암·중암암으로 갈 수 있다. 백흥암은 신일지의 좌측 길인 태실봉 남쪽 기슭의 절골로 1.5㎞ 지점의 태실봉[해발 462.3m] 남사면 해발 330~345m 지점에 있다.

[변천]

통일 신라 시대 말에 국사 혜철(惠徹)이 건립하였으며, 절 주위에 잣나무가 많아서 백지사(柏旨寺)라 하였다고 한다. 그 뒤 1546년(명종 1)에 인종의 태실을 팔공산에 경영하면서 이 암자를 수호 사찰로 삼고 크게 중수하고 백흥암으로 개칭하였다. 1651년(효종 2)에 중건하였으며, 1677년(숙종 3)에 중수하였다.

백흥암의 주 불전인 극락전은 1546년(명종 1)에 건립되고 1685년(숙종 1)에 중건한 다포계 팔작집이다. 1730년(영조 6)에는 보화루를 중건하였고, 1858년(철종 9)에는 청봉(靑峰)이 영산전을 중수하였다. 이 절은 한때 수백명이 수도하였다고 하며, 규모도 암자로서는 매우 큰 편이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을 중심으로 진영각(眞影閣)·영산전(靈山殿)·명부전(冥府殿)·문루인 보화루(寶華樓)·산신각(山神閣)·선실(禪室)·원주실(院主室)·요사채 등이 있다. 특히 백흥암 극락전 내 수미단은 조각 수법이 매우 뛰어나 보물 제486호로 지정되어 있다.

[형태]

영천 은해사 백흥암 극락전은 태실봉 남사면에 남서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중심 영역의 건물 배치 구성은 전면에 문루인 보화루가 한 단 낮게 있고, 그 뒤 좁은 중정을 중심으로 진영각과 심검당이 마주한다. 중정 북쪽으로 한 단 더 높은 자연석 기단 위에 극락전이 남서향한다.

백흥암 중심 영역의 건물 배치 구성은 조선 시대 전형적인 4동 중정식(中庭式) 산지 가람을 취하고 있다.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에 구조는 다포계 팔작집이다. 기단은 자연석으로 높게 쌓은 것이고, 초석은 자연석 초석이다. 극락전 전면 기단 중앙에는 소맷돌을 갖춘 석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구체부는 자연석 초석 위에 두리 기둥을 세우고 창호와 벽체로 마감했다.

창호는 전면에 각 칸, 양 측면은 좌측면 각 칸, 우측면 앞 협칸, 후면에는 양 협칸에 달았다. 전면 창호는 어칸만 상하 둔테에 정자살+솟을살을 세트로 조합한 4짝 안여닫이문이고, 양 협칸은 정자살의 3분합문이다. 좌측면 어칸에는 쌍여닫이 굽널세살문, 양 협칸 및 후면에는 각기 외여닫이 굽널세살문을 달아 이용하고 있다. 특히 후면 어칸과 우측면 어칸, 후면 협칸의 벽은 인방과 띠장을 댄 판벽으로 마감된 것이 특징이다.

주상부는 창방과 평방을 결구하고 평방 위에 외3출목, 내3출목의 다포계 공포를 올렸다. 공간포는 전·후면에는 공히 2조씩, 양 측면에는 각 1조씩을 배열했다. 특히 공포에서 주목할 것은 내·외 출목수가 동일한 점 외에 제공 내·외단형태가 첨차와 동일한 간결한 교두형(翹頭形)이란 점이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제공 형태는 앙서에 연꽃·연봉 조각이 첨가된 매우 화려한 장식성이 돋보이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인 양상이다.

내부 상부 가구는 1고주 후퇴 7량가이다. 대량은 전면 공포의 4제공 위에서 얹힌 뒤 내고주 상부에서 후퇴량과 합보로 처리되어 있다. 그리고 양 측면에서 만곡된 충량 2개가 대량과 직교해 등 위에 얹혀진다. 중대공은 대량 등 위에 주두+첨차+뜬창방 또는 원형화반+주두+뜬창방으로 받았고, 종대공은 각재의 동자대공이다.

내부 바닥은 우물 마루를 깔았고, 어칸에 이주법(移柱法)의 내고주에 후불벽을 만들고 앞쪽에 화려한 조각 수법이 뛰어나 보물 제486호로 지정된 불단인 수미단이 배치되어 있다. 불단 위 천장에는 보개(寶蓋)가 설치되어 있는데, 중앙에는 조각 수법이 뛰어난 용이 매달려 있다. 천장은 3단의 소란 반자로 화려하게 꾸몄다. 지붕은 겹처마 팔작 기와집이다.

[현황]

은해사 백흥암은 현재 극락전·진영각·심검당·보화루·명부전·산신각·영산전·요사채 등 10여 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중심 영역의 배치 구성은 조선 시대 전형적인 4동 중정식 산지 가람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영천 은해사 백흥암 극락전은 1984년 7월 5일 보물 제790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은해사 백흥암 극락전은 조선 시대 산지 가람의 배치 구성뿐만 아니라 공포 구성, 상부 가구 등에서 조선 시대 전·후기에 걸친 시기적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공포 및 내부 가구에서 장식화 경향과 새로운 구조 기법의 시도가 두드러지는 조선 후기와 달리 고졸한 형태 및 구조 기법이 잘 남아 있는 불전이다.

[참고문헌]